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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May 01. 2022

First of May가 가기 전에

First of May, 바로 5월 1일 오늘을 가리키는 이 날은 전 세계 근로자들의 날인 May Day입니다. 하지만 올해 우리나라 근로자는 이 날이 오늘처럼 일요일이라 별도의 휴일 혜택을 누리지 못 했습니다. 대체 휴일도 적용 안 되는 휴일이라 금쪽같은 휴일 하루를 날린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내년 2023년은 어떤가 달력을 넘겨 봤더니 월요일이라 토요일부터 3일 황금연휴가 조성되네요. 다행입니다. 사실 올해부터 전 그런 전속 노동자가 아니기에 근로자의 날이 제 신상과 상관없음에도 옛 관성으로 살짝 관심을 보여 봤네요. 그렇듯 저는 지금 그것이 아닌 다른 5월 1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이 가기 전에 말입니다.


<First of May>를 제목으로 하는 노래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오스트레일리아의 3형제 팝송 가수인 비지스의 대표곡인 그 노래입니다. 아마도 제목을 듣는 순간 유려한 첼로 소리로 시작되는 그 노래의 멜로디가 귀에 울리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저는 지금 그렇게 오디오가 지원이 되고 있네요. 이 노래는 제가 전에 이곳에서 크리스마스 트리와 동심을 연결한 글에 간략하게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땐 글을 쓴 시점이 겨울인 12월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는데 이번엔 1년의 절반인 6개월 후인 꽃이 만개한 5월의 첫날로 바뀌었습니다. 아울러 글의 포인트도 크리스마스 트리 스토리에서 봄날 스토리로 바뀌게 됩니다. 하지만 12월의 그날 분위기와 5월의 그날 분위는 사뭇 다릅니다.


<First of May>가 수록된 비지스의 6집 더블 앨범 <Odessa>, 1969


제목으로만 보면 <First of May>는 5월 하루의 노래 같지만 실은 1년 사시사철이 다 들어가 있고 인생 전체가 들어가 있는 노래입니다. 그리고 그것의 발단은 우리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 트리로부터 시작됩니다. 곡에서 비지스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아이와 어른의 세계를 구분하는 경계선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키가 그렇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트리보다 키가 작았을 땐 아이의 세계이고, 그것보다 키가 크면 어른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오로지 따스하고 화려한 오색등으로 빛나는 추억만이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 그것보다 키가 작았을 때는 세상 모르고 사는 꿈 많고 행복한 동심이지만 그 높이를 추월하는 순간부턴 만만치 않은 인생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산처럼 생긴 그 트리가 보호막인 것처럼 그 아래서 아이는 보호받고 살다가 이후 보호막 없는 세상에 던져진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아이는 어른이 되어 인생의 희로애락, 오욕칠정, 쓴맛단맛을 다 경험하며 세상을 살아가게 됩니다. 결국 그 트리 아래서 손가락을 걸며 약속했던 아이와의 첫사랑도 깨지게 됩니다. 바로 그날, 그래서 매년 그 슬픔에 눈물짓는 날이 바로 5월 1일입니다.


우리에게도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진 5월을 안타까워하며 노래한 시인이 있었습니다. 김윤식이라는 본명보다 영랑이라는 아호로 더 알려진 그의 대표작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그는 그렇게 탄식하였습니다.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모란은 뚝뚝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린 그날,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동시에 뻗쳐 오르던 보람까지 서운하게 무너졌다"고 하며 "모란이 진 그날 하루 때문에 한 해가 다 가서 1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하게 운다"고 하였습니다.


전남 강진 영랑 생가와 그곳에 핀 모란


영랑이 슬퍼한 그날이 바로 비지스가 노래한 5월 1일일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서 어린 시절부터 고이고이 아름답게 키워왔던 사랑이 모란처럼 바닥에 떨구어진 날이 하필이면 1년 중 가장 찬란한 5월의 어느 날이 된 것입니다. 대개의 연인들은 계절의 왕이라고 하는 5월에 사랑의 결실을 맺어 결혼 행진곡을 울리는데 말입니다. 영랑이 개입해 역설적인 이별이 되어버린 비지스의 <First of May>입니다.


미국의 유명 듀오 사이먼 & 가펑클은 이 노래보다 한 달 앞선 4월에 그녀가 올 것이라며 제목도 그렇게 <April Come She Will>이라고 지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봄비로 시냇물이 풍성하게 넘쳐흐르는 4월에 그녀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4월에 온 그녀는 5월엔 그의 품에 안겨 다시 머무를 것이라고 하였는데, 비지스의 그녀는 5월이 되자마자 부리나케 떠나간 것입니다. 그렇게 떠나간 그녀는 언제 돌아올까요? 4월이든, 5월이든 다시 돌아는 올까요? 돌아선 여자가 돌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요. 현실도 그러할 진대 문학이나 예술이라면 더욱 그러하겠지요. 하지만 영랑은 모란이 피기까지는 언제까지고 그 봄을 기다리겠다고 하였습니다.


오늘이 가기 전에 <First of May>를 참을 수 없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이 노래가 제가 가장 애정하는 팝송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전 저의 핸드폰 컬러링으로 처음부터 교체 없이 지금까지 이 노래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정작 저는 지 못하면서 그렇게 저의 시그널 송으로 누군가 걸면 들리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지금까지 이 컬러링을 구박하는 송신자는 한 명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의미가 있는 퍼스트 오브 메이인 오늘 유감스럽게도 전화벨은 스팸을 제외하곤 통만 울렸습니다. 엄마의 전화였습니다.


3형제로 구성된 비지스는 팝송 가수 중 우리 한국인의 정서에 가장 가까운 노래를 부른 가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디스코 열풍에 맞춰 <Saturday Night Fever>를 필두로 한 그들의 곡이 그 장르로 넘어가기 전까진 감미로운 음성과 화음으로 슬로 풍의 서정적인 발라드를 주로 불렀던 그들이었습니다. <Massachusetts>, <Holiday>, <To Love Somebody>, <Don't Forget to Remember>, <Words> 등 요즘은 올드팝으로 여겨지는 이런 주옥같은 노래들로 사실 비틀스보다 더 많은 비지스의 노래를 들어오며 자란 우리 세대였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난 크리스마스 트리보다 키가 작았고 그 아래 세상에 살았습니다. 어느 날 내 키는 크리스마스 트리보다 커졌고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마치 아이의 일기처럼 들리는 <First of May>의 써머리입니다. 당신은 당신을 기쁘게  크리스마스 트리보다 언제 키가 더 커졌는지요? 그리고 당신을 슬프게 한 당신의 퍼스트 오브 메이는 언제인지요? 오늘이 왔기에 오늘이 가기 전에 그때를 생각해봅니다.


https://youtu.be/IMICiiaf4V4


First of May 청명한 양재천의 아침, 2022.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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