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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Dec 10. 2022

와이너리 & 갤러리

                      

(출처, stephane ABOUDARAM / WE ARE CONTENT(S))

   

브라보! 멋진 건축물입니다. 흡사 이 모습은 과학을 비웃고 있는 듯해 보입니다. 중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튼이 보면 기가 막혀할 것입니다. 건물에 최면을 건 것도 아닐 텐데 하늘에 건물이 떠있습니다. 과학을 비웃는 듯해 보인다 했지만 과학의 발달로 이런 건축물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건물의 아래 4각 중 땅에 닿은 부분은 2각에 불과합니다. 땅에 강력한 지지 핀을 박았겠지요. 그래도 그런 상태론 평평하게 띄울 수 없으니 대신 그 위쪽 지붕으로 꺾이는 부분을 케이블로 잡아당겨 땅에다 박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비탈이지만 건물은 수평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치 남해대교와 같은 현수교 건축 시 하단의 교각 부재로 지지력을 잃은 다리 상판을 철탑 위 케이블이 당겨서 고정시키듯이 그런 첨단 건축 기법을 일반 건축물에 적용한 것이겠지요. 그래도 이런 발상과 그 결과물이 놀랍습니다.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탄생했고 사람들에게 볼 것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과연 건축은 계속해서 진화하는 위대한 아트입니다.

    

흔히 피렌체 두오모라 불리는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지붕인 두오모는 건축 시 세계 최대의 난제였습니다. 두오모는 영어의 돔으로 성당의 반구형 지붕을 뜻하지만 이탈리아에선 그냥 대성당으로도 통합니다. 그만큼 두오모가 주는 상징성이 커서도 그럴 것입니다. 난제의 시작은 성당의 제단을 너무 크게 만들어 당시로선 그 천정을 우아하게 메꿀 두오모를 제작할 기술이 없었기에 그랬습니다. 그래서 1296년 착공한 그 성당은 다른 공사는 마쳤지만 정작 두오모는 없이 뻥 뚫린 채로 50년 넘게 방치되어오고 있었습니다. 그 방치를 막은 자는 그 무렵 도시의 지도자로 올라서는 코시모 메디치였습니다. 그는 이후 국부라 불릴 정도로 메디치 가문을 피렌체의 정상으로 끌어올린 자였습니다. 그는 메디치 가문을 교황청의 주거래 은행으로 만들어 세상에 알린 아버지 조반니에 이어 피렌체 시민들에게 무언가 한 방을 보여줘야만 했습니다. 당시 돈을 만지는 업은 종교적으로 죄악시했기에 많은 헌금이나 기부를 통해서도 속죄를 하였는데 그는 그 일환으로서도 그 성당을 완공해야 했습니다.  

   

코시모는 두오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것을 해결할 건축가부터 공모를 통해 찾았습니다. 큰돈을 걸었겠지요. 그리고 다행히 그 앞에 구세주가 나타났습니다. 로마에서 공부한 브루넬레스키라는 건축가였습니다. 그는 석재 돔으로는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기록인 지상 최대의 지름 42미터의 돔을 벽돌로 차곡차곡 위로, 안으로 계속 쌓아 올려 착공 16년 만인 1436년 드디어 완성했습니다.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는 모르지만 과학과 건축의 승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렇듯 르네상스의 선구자인 코시모 메디치와 브루넬레스키라는 천재 건축가의 합작으로 오늘날까지 우리는 그 거대하고 멋진 피렌체의 랜드마크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후에 미켈란젤로가 감독한 바티칸의 베드로 대성당 돔도 이 브루넬레스키의 공법을 따랐다고 합니다. 이렇듯 세상은 대개 천재와 그를 알아보는 힘 있는 자에 의해 진화하곤 합니다.

        

코시모 메디치와 브루넬레스키의 합작으로 완성된 아름답고 거대한 피렌체 두오모 (출처, pixabay)

  

맨 위의 비탈에 떠있는 건축물은 금세기 최고의 건축가로 꼽히는 영국의 리처드 로저스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그는 2007년 건축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 수상자로 20세기의 가장 파격적인 건축물이라고 하는 파리의 퐁피두 센터를 설계한 아티스트입니다. 어린 시절 그 건축물의 사진을 잡지에서 처음 보았을 때 황당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제 머릿속 건물은 각진 사각형으로만 정의되어 있었으니까요. 이렇게 그는 작년 12월 사망 전까지 지구촌 곳곳에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킨 여러 건축물에 관여를 하였습니다. 2020년 우여곡절 끝에 오픈한 우리나라 여의도의 파크원도 그의 작품입니다. 멀리서 봐도, 밤에 봐도 외벽 빨간 철골 파이프가 눈에 띄는 세련되고 아름다운 복합 건축물입니다.     


맨 위 중력을 거스른 건축물에도 용도는 다를지 몰라도 건물을 둘러싼 빨간 파이프가 눈에 띕니다. 내부를 넓게 쓰기 위해 건물 안에 들어갈 시설물들을 위부로 뺀다는 리처드 로저스의 건축 철학이 역시나 보이고 있습니다. 파리의 퐁피두 센터도 그렇게, 마치 내장과도 같은 파이프들이 밖으로 다 쏟아져 나와 있습니다. 여의도의 파크원엔 페어몬트 호텔과 현대백화점 그리고 초고층 사무용 건물이 두 동 들어서 있습니다. 이 건물은 아름다운 모습과 혁신성으로 2020년 대한민국 토목건축기술대상에서 건축부문 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런데 파크원도 리처드 로저스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하는데 위의 건축물과는 누가 더 라스트인지 모르겠네요.         

리처드 로저스가 설계한 여의도의 파크원 (출처, 파크원 홈페이지)

   

비탈에 떠있는 건축물의 정체는 '리처드 로저스 드로잉 갤러리(Richard Rogers Drawing Gallery)'라는 이름을 가진 갤러리입니다. 그런데 갤러리가 위치한 장소가 좀 특이합니다. 와이너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샤또 라 코스테(Chateau Ra Coste)라 불리는 와이너리 안에 지어진 신축 갤러리입니다. 저는 작년 2월 이 사진을 뉴스를 통해 처음 보았을 때 매우 놀랐습니다. 건축물의 파격성에도 놀랐지만 내용을 읽어보니 이 와이너리를 제가 가본 적이 있기에도 그랬습니다. 세상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와이너리가 있고, 그중에서 제가 가본 곳이라곤 딸랑 2개뿐인데, 그중 하나가 어느 날 아침에 배달된 우리나라 유력 신문에 등장했으니 제가 어찌 안 놀랐겠습니까! 제가 그곳을 투어한 것은 2018년 가을 추석 연휴를 낀 남프랑스 프로방스 여행 때였습니다. 지금 전 그날을 회고하며 이렇게 당시 써놓았던 글을 꺼내 보고, 꺼낸 김에 내용을 전면 수정하며 새로 쓰듯 써내려 가고 있습니다. 제 주변의 한 지인께서 내년에 프로방스 여행과 그곳 와이너리 투어를 구상 중에 있다고 해서 이곳을 추천드리면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세잔의 도시 엑상프로방스에서 북으로 20여분 가면 이 샤또 라 코스테 와이너리가 나옵니다. 저는 처음에 우리에게 익숙한 그 악어 심벌 티셔츠와 상관있는 곳인가 했더니 그건 아니었습니다. 스포츠 의류 사업을 했던 프랑스의 유명 테니스 선수 라코스테의 브랜드와 혼동해서 들은 생각이었습니다. 이 와이너리는 부동산 개발과 와인, 그리고 예술에 관심 있는 아일랜드 출신의 남매가 운영하는 곳이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며 놀란 것은 한마디로 현대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통념 속에 있는 프랑스의 와이너리는 샤또가 성이듯 고풍스러움인데 이곳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입구부터 모던하다 했더니 들어가서 투어한 모든 것이 모던 아이덴티티로 일관성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포도 껍질과 과육을 같이 으깨서 만드는 로제 와인으로 유명한 와이너리입니다. 핑크빛이 감도는 그 모던한 느낌의 와인 말입니다.   

  

제가 리처드 로저스의 위 갤러리 뉴스를 접하고 놀라움과 반가움을 가졌지만 그때 한가지 더 들었던 감정은 바로 공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샤또 라 코스테엔 이미 유명한 갤러리와 예술품이 즐비하기에 그랬습니다. 그때도 그곳을 감상하며 오너인 아일랜드 출신 남매의 예술에 대한 열정에 놀랐었는데 한마디로 그럴만한 와이너리에서 또 하나 큰 사고를 쳤구나라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이곳 와이너리와 갤러리는 일본의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전체적인 콘셉트를 정하고 설계를 담당했습니다. 아래 사진의 갤러리는 바로 그가 설계한 작품입니다. 첨단의 역동성과 혁신성을 지닌 위의 리처드 로저스의 갤러리와는 달리 자연에 최대한 순응하듯 그 속에 평안하게 자리 잡은 야트막한 갤러리입니다.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샤또 라 코스테 와이너리의 갤러리

  

갤러리 앞에 조성한 인공 연못의 수상엔 독보적인 모빌 작가 칼더의 작품이 흔들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설치 미술가인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미 작품도 물 위에서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웅크리고 앉아 있습니다. 이들 이외에도 많은 예술품들을 그곳에서 볼 수 있었는데 한마디로 그 와이너리는 와인과 음식 이외에 보너스로 예술작품까지 모두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이런 그곳의 예술품 목록에 또 하나의 걸작인 리처드 로저스의 건축물인 갤러리가 추가된 것입니다. 저처럼 이미 가봤기에 혹시 버킷 리스트에서 이 와이너리를 삭제한 여행자들이 있다면 그곳을 한 번 더 가고 싶게 만드는, 그 자체로 예술품인 명품 갤러리일 것입니다.     

   

<스몰 크링클리(Small Crinkly)>, 알렉산더 칼더, 1976
<거미(Crouching Spider)>, 루이스 부르주아, 2003

       

아래 사진은 샤또 라 코스테의 와인 저장고입니다. 오크통이 아닌 스테인리스 통에 와인을 저장하고 있습니다. 이 저장고는 투어하면서 제 상식과 달라 의아함을 주는 장소였습니다. 와인은 통상 까브(cave)라 불리는 어두침침한 동굴 속에 가지런히 놓인 오크통 속에서 자라나는데 이곳은 그런 전통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지 않기에 그렇습니다. 이곳의 가이드는 스테인리스는 오크통과 기능은 같으면서도 훨씬 위생적이라 이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과연 모던한 와이너리의 콘셉트에 맞게 저장과 숙성마저도 모던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나 봅니다. 세상의 모든 변화가 그러하듯 좀 지나면 와인의 숙성도 인공지능(AI)이 알아서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테인리스 통을 사용하고 있는 현대적인 와인 까브, 샤또 라 코스테

  

아래 보이는 사진은 오크통에 전통적인 방식으로 와인을 숙성시키는 까브의 모습입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 보이는 검게 그을린 동굴인 까브에 포도들이 온전한 와인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갈 날을 기약하며 통 속에서 잠들어 있습니다. 이들이 태어날 그날까지 이렇게 조용히 있는 곳을 엄마의 자궁이라고 치면 위의 스테인리스 저장고는 마치 세련되고 현대적인 엄마의 그곳처럼 보이고, 아래 오크통은 마치 단아하고 전통적인 엄마의 그곳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태아에게 엄마의 자궁은 누구이든 간에 세상에서 가장 안락하고 편안한 곳일 것입니다. 와인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오크통을 사용하고 있는 전통적인 와인 까브, 샤또 드 라 가르딘


이 오크통이 있는 와이너리는 그날 저와 일행이 한 군데 더 방문한 샤또 드 라 가르딘(Chateau de la Gardine)이라는 곳입니다. 같은 프로방스 지역으로 교황의 와인이라 불리는 샤또 네프 드 빠프(Chateauneuf du Pape)에 소재한 와이너리입니다. 샤또 네프 드 빠프는 14세기 아비뇽 유수 사건 시 교황청이 아비뇽으로 강제로 이주되며 그 근처에 새로 조성된 와인 마을인데 그곳의 와인도 지칭합니다. 과연 그곳은 교황의 와인답게 전통적인 방법으로 와인을 저장하고 숙성시키고 있었습니다. 물론 와이너리의 모습도 머릿속에 상상되는 고풍스러운 샤또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엔 입은 검정 드레스만큼이나 길고 검은 생머리의 한국인 소믈리에가 근무하고 있어 한층 더 편하게 투어를 진행하였습니다. 이렇든 전 생애 첫 와이너리 투어에 가장 모던하고, 가장 전통적인 와이너리 두 곳을 오전과 오후에 번갈아 보게 되었습니다.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아래 포도밭 저 멀리 보이는 강은 알프스에서 발원해 프로방스 지방을 관통해 지중해로 빠지는 론강입니다. 그래서 이 지방의 와인을 통칭 론 와인이라 부릅니다. 서쪽 보르도와 북쪽 부르고뉴에 이어 프랑스의 3대 와인으로 명성이 높은 곳입니다. 이곳 바로 아래 남쪽이 지중해 바다이니 저 멀리 북쪽 알프스부터 달려온 그 강물은 그들의 종착지를 얼마 안 남겨두고 그들이 줄 수 있는 힘찬 에너지를 론강 남과 북의 포도밭에 지금도 아낌없이 뿌려주고 있을 것입니다.         


멀리 론강이 보이는 샤또 네프 드 빠프에 소재한 와이너리

    

와이너리에 갤러리가 있다는 것은 서로 간 상관성이 높기에 그럴 것입니다. 와인이 상품으로는 마시는 술에 불과하지만 가치로 보면 예술품에 견줄만하기에 그런 것이겠지요. 와인을 잘 모르는 우리 상식과 관념으로도 술 중에서 예술과 가장 상관성이 높은 술을 하나 뽑으라 하면 대다수는 와인을 가리킬 것입니다. 예술을 하자는데 소주나 고량주, 그리고 위스키 등이 연상되지는 않을 테니까요.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서 묘약으로 등장하는 술은 강력해서 효과 만점인 보드카가 아니라 와인이었습니다. 모든 예술가들이 추종하는 예술과 축제의 아버지인 디오니소스를 취하게 한 술도 역시 와인이었습니다. 와인으로 그는 주신으로 올라선 것입니다. 가격으로 봐도 술 중에서 가장 비싼 술이 있는 주종은 와인이니 좋은 와인은 예술품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와이너리엔 와인과 미각의 마리아주를 위한 고급 레스토랑에 이어 시각의 마리아주를 위한 갤러리도 들어서나 봅니다. 와이너리와 갤러리, 확실하게 상관성이 있습니다.        


           

위의 작품은 모스크바의 푸시킨 갤러리에 걸려있는 와이너리의 모습입니다. 정확한 와이너리의 이름은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바로 지금 이 글에서 보고 있는 와이너리가 있는 근처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비운의 화가 고흐가 프로방스의 아를에 거주할 때 그린 그림이기에 그렇습니다. 작품명도 <아를의 붉은 포도밭(Red Vineyard at Arles)>입니다. 엑상프로방스, 아비뇽, 아를은 프로방스를 대표하는 도시로 모두 가까이 위치해있습니다. 이 그림은 고흐 생애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팔린 유일한 작품인데 그나마 그것도 친구의 누나가 그를 불쌍히 여겨 사주었습니다. 만약 그 여인이 없었다면 고흐는 생전 단 한 점의 그림도 팔지 못한 채 그 한 번의 기쁨도 없이 생을 마감했을 뻔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판매 후 흥분된 어조로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쓸 정도로 감격해했으니까요.   

        

1888년에 그린 이 그림은 그 해 400프랑에 그렇게 팔린 후 1906년 러시아의 화상에게 1만 루블에 넘어갔지만 1917년 러시아 혁명 시 압수되어 국가에 귀속되었습니다. 이런 스토리가 있기에 만약 이 작품이 경매에 나온다면 다작 화가인 고흐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 최고가를 기록할 확률이 높다고 평해지는 그림입니다. 그림에선 프로방스에서 황색시대를 연 고흐의 작품답게 작열하는 노란 태양 아래 농부들이 열심히 와이너리에서 김매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포도를 따고 있는 것인가요? 지금과 다르지 않은 모습입니다. 포도나무 색이 붉은 것은 당시 유럽의 와인을 초토화시켜 와인의 흑사병으로 불리는 필록세라 균의 영향이라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맨 위 사진인 와이너리 안 <리처드 로저스 드로잉 갤러리>의 전면 출입구 모습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 건축물은 자연의 법칙에 최대한 순응하고 있는 듯 세상 편해 보입니다. 위대한 건축 예술의 힘입니다.   


(출처, ABITARE 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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