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용대전, 그리고 류블랴나

by 마하

1982년 3월 27일, 지금은 동대문디자인프플라자(DDP)가 들어선 동대문 야구장에서 역사적인 야구 경기가 열렸습니다. 국내 최초의 프로야구 개막전으로 서울을 연고로 한 MBC 청룡과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였습니다. 프로야구는 5공화국 정부 들어서 실시한 3S 정책의 대표주자였습니다. 사실 국내에 프로스포츠를 가장 먼저 연 종목을 대부분은 프로야구라고 알고 있지만 이보다 훨씬 이른 1968년에 출범한 한국프로골프협회(KPGA)가 그것의 효시입니다. 물론 극소수의 프로 골퍼와 아마 골퍼만 있던 시대였습니다. 갤러리라 불린 관중은 글쎄요.. 얼마나 있었을까요? 하지만 80년대에 들어서자마자 프로야구를 필두로 프로스포츠 대중화 시대를 연 우리나라는 프로야구 출범 다음 해인 1983년 프로축구인 K리그도 출범시켰습니다. 우리 안마당에서 열리는 굵직한 국제 스포츠 이벤트인 86아시게임과 88올림픽을 흥분하며 기다리던 시대였습니다.


당시 프로야구의 개막전은 MBC 청룡이 이겼습니다. 상상의 동물인 용이 백수의 왕인 사자를 이긴 것입니다. 그 경기는 과연 개막전답게 MBC 청룡 이종도 선수의 끝내기 만루 홈런이 터져 프로야구를 처음 보는 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용 중에서도 비늘에 푸른빛이 감도는 청룡을 브랜드로 선택한 구단에서 그가 미스터 청룡으로 우뚝 선 첫날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열화 속에 프로야구의 첫발을 떼고 흥행을 이어갔는데 이것엔 직전인 1981년 전 방송 컬러 송출이 시작된 컬러 TV도 크게 일조하였습니다.


MBC 청룡 프로야구단의 마스코트인 동양의 용, 1982~1989 (86년에 오른편 용으로 변경)


동양에서 고래로 용은 상상의 동물을 대표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용은 곧 임금이었으니까요. 대통령제인 지금은 동양에서 용에 버금가는 상상의 동물인 봉황이 유사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실에서 문장으로 봉황을 사용하지만 그것은 대통령을 상징할 뿐이지 대통령 본인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용은 그 자체로 일인지상이 없는 왕이나 황제와 동격이었습니다. 이씨 조선의 세종은 그의 아버지 태종을 비롯하여 왕이 아니었던 6대의 선조까지 하늘을 나는 용에 비유하며 그들을 기리는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지었습니다. 한글 창제 후 첫 작품으로 용의 노래를 선택한 것입니다.


하지만 노래 속이 아닌 평소에도 임금의 얼굴은 용안(龍顔)이 되고 그가 앉는 높은 의자는 용상(龍牀)이라 불렸습니다. 왕의 뜻을 거스르는 역린(逆鱗)은 용의 턱 아래에 난 거꾸로 난 비늘로 그것을 건드리면 용이 크게 분노한다는 것에 비할 정도로 용은 곧 왕이었습니다. 용의 후손이라고까지 하는 중국인의 역사에선 우리가 보듯이 그들의 명절이나 국가적인 이벤트엔 꼭 용춤이 단골로 등장합니다. 청나라의 국기인 황룡기엔 용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을 정도로 그들은 용을 받들고 숭배했습니다.

이렇듯 용은 동양에서 최고지존의 동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프로야구에서 그렇게 첫 경기부터 하늘을 날았던 MBC 청룡은 1990년 해체되어 LG 트윈스가 되었습니다. 영생불사하는 용이 8년 만에 사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2000년에 그 용은 부활했습니다. 이번엔 서울이 아니라 그 서쪽 인천에서 출몰한 것인데 SK그룹의 와이번스가 바로 그 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용은 우리가 알고 있던 과거 MBC 청룡의 그 용이 아니었습니다. 용(Dragon)이지만 이름도 와이번스(Wyverns)로 달랐고 외모도 우리가 알고 있는 용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등에는 2개의 날개가 달렸고 발은 땅을 딛고 서있어서 종자가 전혀 다른 용으로 보였습니다.


SK 와이번스 프로야구단의 마스코트인 서양의 용, 2000~2005


이렇듯 우리말과 한자로는 같은 용이지만 위의 두 용은 다릅니다. 그래서 사실 서양의 용은 동양의 용과 원천적으로 다른데 최초에 용으로 잘못 번역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동양의 용은 뿔과 수염이 달린 근엄한 면상에 뱀처럼 긴 몸통에 네 다리는 있지만 짧아서 서있지 못해 물속에 있거나, 또는 날개가 없음에도 떠있거나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으로 주로 묘사되었습니다. 반면에 와이번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나타난 서양의 용은 외모가 뱀보다는 공룡에 가깝고, 등에 두 개의 날개가 있는 비룡이지만 나는 모습보다는 주로 두 발로 땅에 서있는 전투적인 모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신화를 소재로 한 영화나 판타지물에 우리가 주로 봐온 그 용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프로야구단 SK 와이번스의 용은 MBC 청룡의 용보다는 NC 다이노스의 공룡을 더 닮아 보였습니다.


동양의 용은 위에서 보듯이 상서로운 동물로 인간을 지키고 다스리는 영웅과 일체화되었지만, 서양의 용은 인간을 괴롭히는 동물로 누군가 그 용을 죽임으로써 그가 영웅이 되었습니다. 영웅은 선이요, 용은 악으로 등장했던 것입니다. 한가지 공통점은 구사하는 주력 무기인데 그 둘은 입에서 화염방사기와도 같은 무서운 불을 뿜어내어 상대방을 제압했습니다.


그러나 SK 와이번스의 브랜드이자 귀여운 마스코트였던 용은 국내에선 21년만 생존하고 2021년 사라졌습니다. 신세계그룹에 매각되어 랜더스(Landers)로 문패가 바뀐 것입니다. 그 이전 MBC 청룡을 이어받은 LG 트윈스(Twins)에서 보듯이 용은 이렇게 모두 사람으로 환생했습니다. 이렇듯 우리나라 프로야구판을 흔들던 동서양의 용은 상상과 신화 속 동물답게 한 시대를 풍미하고 어느 날 모두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아, 동양의 봉황에 비견되는 서양의 동물로는 불사조라 번역되는 피닉스(Phoenix)로 봐야겠네요.


고대 영문학의 최고봉인 <베오울프> 서사시엔 영웅 베오울프가 마지막 전투에서 용과 싸우다 치명상을 입어 죽게 됩니다. 바그너의 가극에 영향을 준 중세 독문학의 최고봉인 <니벨룽겐의 노래> 서사시에서 영웅 지그프리드는 용을 물리치고 영물인 그의 핏물에 몸을 담가 그의 몸을 천하무적으로 만듭니다. 바람에 날아온 나뭇잎이 그의 몸에 붙어 용의 핏물이 묻지 않은 그곳이 급소가 된 것을 빼곤 말입니다. 흡사 그리스 신화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급소인 뒷발꿈치를 연상케 하는 지그프리드의 신화입니다. 남부 그리스나, 북부 게르만이나 비슷한 스토리를 가진 유럽의 신화입니다. 사람들이 오가며 말을 전하고 퍼뜨리니 그랬을 것입니다.


또한 동화가 원작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영화인 <잠자는 숲 속의 공주>에서도 용은 등장합니다. 역시나 비슷한 롤 플레이로 왕자가 공주를 구할 때 나쁜 용과 한판 승부를 벌인 것입니다. 공주에게 저주를 건 마녀 말레피센트가 용으로 변신하여 왕자와 대적했습니다. 결국 백마 탄 왕자가 아닌 용을 물리친 왕자는 오로라만큼이나 아름다운 오로라 공주를 죽음보다도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해 그녀와 눈맞춤을 합니다. 아, 그 사이 입맞춤이 먼저였습니다.


이렇듯 서양의 고대 신화와 중세 문학엔 용이 심심찮게 등장했습니다. 그때마다 그 용의 역할은 악역으로 비슷했고 외모 또한 공룡과 비슷했습니다. 포유류가 출현하기 전 지구를 지배하고 인간을 괴롭혔던 공룡과의 나쁜 기억이 진화 과정을 거치며 사피엔스가 되고 만물의 영장까지 된 인간의 뇌 속에 잠재적으로 남아있어서 그런 것일까요? 그렇게 인간에게 해를 끼쳤던 용은 지금도 유럽의 곳곳에 살고 있습니다. 2천 년대 초반 제가 방문했던 폴란드의 고도 크라쿠프에도 용이 살고 있었고, 최근인 지난 2021년 9월 아드리아해와 발칸반도 여행 시 갔던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에도 용이 살고 있었습니다.


용의 도시 류블랴나를 대표하는 용 (출처, pixabay)


그 용들은 과거 어느 상상의 시기엔 왕성하게 활동했으나 지금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져 도시 어딘가에 깊숙이 숨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직도 영웅이 찾지 못한 도시의 보물을 지키면서 말입니다. 아니 그를 죽여야 진정한 영웅으로 올라서는데 이젠 그런 영웅이 필요 없는 시대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누군가 지하에서 잠자는 그의 코털을 건드리면 그 용은 분노하여 다시 깨어날 것입니다. 움츠린 날개를 퍼덕이고 입에서 불을 뿜으며 기지개를 켜겠지요. 아, 파충류와 가까워 보이니 그 용에 털은 없겠네요


류블랴나의 거리는 온통 용 천지였습니다. 상점, 주점, 식당, 어디를 가도 용을 보거나 살 수 있었고 심지어 도시의 바닥인 맨홀 뚜껑에도 크고 작은 용들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용 마케팅을 하며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는 류블랴나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 도시의 용은 이제 인간을 괴롭히고 해치는 게 아니라 인간에게 유익하고 도움을 주는 선한 용으로 거듭난 듯합니다. 과거 도시에서 지진이 일어날 때면 사람들은 땅 속의 그 용이 움직여서 일어난 현상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오늘날 도시를 대표하는 용은 이름도 드래곤 브릿지라 불리는 다리 입구에 늠름하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마치 이젠 도시의 수호신이 되어 도시를 지키는 기사처럼 용맹스럽게 앉아있습니다.


류블랴나 시내 바닥 맨홀 뚜껑 위에 새겨진 용


하지만 류블랴나는 용 말고도 볼 것이 많은 도시입니다. 사실 이 글은 작년 9월에 제가 방문했던 구 유고슬라비아 여행기의 마지막인 류블랴나를 소재로 쓰는 글인데 용의 출현으로 본의 아니게 서두가 길어졌습니다. 마치 두 편의 글처럼 말입니다. 부디 용두사미가 아니라 용두류미(龍頭류블랴나尾)가 되기를 바랍니다.


류블랴나(Ljubljana)는 용의 도시이지만 사랑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도시 이름에 대놓고 그 사랑이 나와 있습니다. 슬로베니아어로 영어의 love는 ljubezen인데 류블랴나는 보듯이 그 어근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의 지대'라고나 할까요? 그래서인가 이 도시엔 가슴 아픈 사랑의 스토리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프란체 프레셰렌(France Prešeren)이라는 변호사이자 낭만주의 시인의 러브 스토리입니다. 그는 1844년 오늘날 슬로베니아의 국가가 된 시를 쓴 인물입니다. 프랑스혁명에 영향을 받은 그가 <축배(A Toast)>라는 8절의 연시를 썼는데 그중 7절이 오늘날 슬로베니아 국가의 가사가 되었습니다. 당시 그의 조국 슬로베니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아서 그런 시가 나올 수 있었습니다. <축배>는 함께 손잡고 나아가 싸워 평화를 이루고 모두 축배를 들자는 내용입니다.


이 시인이 류블랴나에 사는 한 여인을 사랑했습니다. 상대는 부유한 상인의 딸이었던 율리아 프리믹(Julija Primic)이란 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상되듯이 그녀와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녀를 향해 열렬히 시는 썼지만 그의 마음을 직접 드러낼 용기가 없던 프레셰렌이었습니다. 결국 그의 사랑은 짝사랑으로 끝났고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이런 시인의 사랑을 가슴 아파한 후대의 시민들은 시내 중앙 광장을 프레세롄 광장이라 이름 짓고 그곳에 그의 동상까지 세워주었습니다. 그리고 세심하게도 프레셰렌 동상의 시선을 실제 프리믹의 생가였던 광장의 끝 2층집 창문에 맞춰놓았습니다. 압권인 것은 그녀 집 창문 바로 옆엔 마치 그녀가 생존 시 창밖을 내다보듯이 그녀의 흉상 부조를 부착해 놓았습니다. 생전에 그토록 사랑하던 여인이었으니 죽어서라도 하루종일 밤낮없이 그녀만을 바라보라고 그렇게 설계하고 제작한 것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죽어서는 불멸의 연인이 되었습니다. 프레셰렌은 1849년 침상에서 죽어가며 평생 단 한순간도 프리믹을 잊은 적이 없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위) 류블랴나 시내 프레셰렌 광장에 세워진 프란체 프레셰렌 (1800~1849), 아래) 프레셰렌 동상의 시선 끝에 위치한 그의 필생의 여인 율리아 프리믹


여기에 반전이 있습니다. 정작 프레셰렌의 아이를 세 명이나 낳은 배우자는 아무도 기억을 못 하는데 그가 짝사랑한 프리믹은 이렇게 훗날 호사를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사랑의 도시답게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는(?) 류블랴나 시민들입니다. 그 광장에 서서 눈길로만 멀리 연결되어 있는 프레셰렌과 프리믹을 번갈아 보며 문학사에 등장한 비련의 커플들이 생각났습니다. 피렌체에서 한 동네에 살며 마주치기만 한 베아트리체에게 끝내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던 단테와, 평생 모드 곤 한 여자만을 사랑하고 노골적으로 사랑시를 써댄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가 그들입니다. 베로나의 한 동네에 살았던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극으로 끝났지만 그래도 원하던 사랑은 이루었으니 이들 셋보다는 낫다고 해야 할까요?

류블랴나가 속한 이 땅은 로마 시대 일리리아라 불리던 속주의 한 지역이었습니다. 기원전 15년 로마인이 일리리아에 개척한 에모나가 오늘날 류블랴나가 되었으니 꽤나 역사가 깊은 도시입니다. 긴 역사만큼이나 유서 깊은 이 도시는 고대와 중세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중앙엔 시민의 젖줄인 류블랴나 강이 관통하여 여러 예쁜 다리로 이어져 있고, 로마 시대 에모나 군사 기지가 있던 고지대엔 근사한 류블랴나 성이 세워져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과거 공산권 국가의 도시였지만 그러한 느낌을 조금도 받기 힘든 도시입니다.


아름다운 류블랴나 시내 정경, 왼편은 류블랴냐 강, 오른편은 류블랴나 성 (출처, pixabay)


이것은 류블랴나가 속한 국가인 슬로베니아가 구 유고 연방의 6개 국가들 중 유일하게 서방 국가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그들 중 가장 먼저 서방 카톨릭과 서구 문명을 받아들인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슬로베니아는 유럽연합(EU)도 일찍이 2004년 가입하고 유로가 공용 화폐인 국가가 되었습니다. 인접한 크로아티아는 2013년 유럽연합에 가입했으나 제가 여행했던 2022년에도 유로화는 통용되지 않았습니다. 뉴스를 보니 아주 최근인 2023년인 올해 1월 유로존 가입이 승인되었네요.


이런 선진 행보에서 보듯이 슬로베니아는 오늘날 구 유고 연방 중 가장 잘 사는 국가일 뿐만 아니라, 현재 공산주의 국가 포함 과거 공산주의권 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잘 사는 1등 국가입니다. 1인당 연간 국민소득이 3만 불에 육박하는데 이것은 다른 구 유고 연방 국가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크로아티아는 그 절반 수준인 1만 7천 불이고, 나머지 국가들은 1만 불도 되지 않으니까요. 1990년대 구 유고 연방 해체 시 내전의 피해가 거의 없었던 것도 이 나라가 경제 발전에 주력할 수 있었던 이유가 될 것입니다.


슬로베니아 최고의 관광지인 블레드 호수와 블레드 성


프로야구가 개막하고 올림픽이 열렸던 1980년대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만, 홍콩, 싱가포르를 서구에서 아시아의 4마리 용으로 부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4개 국가 모두 아시아에서 경제적으로 고도성장을 이루던 시절이라 그렇게 불린 것입니다. 지난 여행 시 류블랴나 거리의 용을 보며, 그리고 슬로베니아라는 나라가 작지만 그 정도로 큰 경제력을 지닌 국가라는 사실을 알고서 새삼 떠올렸던 우리의 과거였습니다. 지금은 성장률이 둔화되어 두 국가 모두 과거만큼의 고도성장은 어렵겠지만 계속해서 모두 다 더 잘 사는 세상으로 나아가길 기원합니다. 과거 제가 <Peace.. 우크라이나!>라는 글을 쓰며 당시 우크라이나의 민족 시인이 쓴 그 국가의 가사를 끝에 올렸는데 오늘도 슬로베니아의 민족 시인 프레셰렌이 쓴 그 국가의 가사를 끝으로 올립니다.


모든 국민에게 축복이 있으리라

그날을 기다리는 모든 이들에게

태양이 비추는 모든 곳에서

전쟁도, 갈등도 사라지는 그날

모든 동포가 자유롭게 되어

더 이상 적이 아닌 이웃만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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