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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Nov 24. 2020

고흐의 황색시대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 간 고흐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가왕 조용필 씨는 그의 노래 속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고독한 남자를 고흐로 단정하고 이렇게 표범처럼 포효하며 읊조리고 있습니다. 불행한 남자로 치면 역사상 세계 1등이 고흐이고 2등이 킬리만자로의 표범 노래 속 주인공이란 이야기겠죠. 노래를 부른 가수 조용필 씨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노래 속에 등장하는 어떤 남자의 말을 글로 쓴 작사가 양인자 씨의 생각이겠죠.

참으로 가난하고 고독에 치를 떨며 살다 간 불행한 남자.. 그러나 그가 죽은 지 채 1세기도 안 되어서부터 그를 보기 위해 매 해 150만 명 이상이 그의 고국 암스테르담에 있는 그의 미술관을 찾아오고, 그가 잠시라도 거주했던 곳이면 파리, 아를, 생레미, 오베르 등 그의 흔적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관광지와는 별도로 기꺼이 발품을 팔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멀리 떨어진 극동의 아시아 끝 나라대중가요에도 등장하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살아서 가장 가난하고 불행했던 남자가 죽어서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행복한 남자가 된 것입니다.

화단에서 외면당하고, 아버지에게 장자의 자격을 박탈당하고, 화우에게 소질이 없으니 그만두라는 충고를 듣고, 동거하던 창녀에게 돈이 없다는 이유로 쫓겨나고, 작품세계를 서로 인정했던 고갱도 떠나고, 그로 인해 광기에 휩싸여 귀를 잘라 정신병원에 감금조치당하고, 누가 뭐래도 유일하게 그를 인정하고 후원해줬던 동생 테오도 가정사 때문에 떠나고, 떠나고떠나고떠나고.. 유일하게 그림만이 그를 떠나지 않았기에 그럴수록 그는 그림에 집착하였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37세 짧은 인생 중 붓을 잡은 10여 년간 무려 2천여 점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이 중 완성된 유화만도 900여 점에 달합니다. 이틀에 한 작품 이상 그려댄 엄청난 노동의 다작이지요.

알려진 대로 고흐는 살아생전 딱 한 점의 그림만을 팔았습니다. 아니, 팔렸습니다. 당시 인상파 화가로 활동했던 안나 보흐란 여성이 1888년 사준 것인데 400프랑을 지급했습니다. 이 돈은 당시 그의 한 달 생활비 수준의 값으로 첫 판매작치곤 비교적 비싸게 팔린 것인데 그의 딱한 사정을 잘 아는 그녀가 도움 차 후하게 지불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아를에서 알게 된 외젠 보쉬라는 친구의 누나였으니까요. 400 프랑이 고흐가 그림으로 번 평생 수입입니다.


그래도 그림 판매에 고무되선가 고흐는 그의 평생 도우미인 동생 테오에게 이 무렵 "지금까지 보면 판매된 예술작품은 작가가 죽으면 작품값이 오르더구나"라는 편지를 보냅니다. 그래선가 이 그림은 고흐 사후 16년 후인 1906년 10,000 프랑에 러시아 콜렉터에게 판매됩니다. 그사이 25배가 올랐으니 고흐의 예언이 멋지게 적중했습니다(?). 이후 이 그림은 볼셰비키 혁명기 레닌이 몰수해 그때부터 지금까지 모스크바 푸쉬킨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만약 시장에 나온다면 현재 가격은? 글쎄요, 거기에 0을 몇 개를 붙여야 할지..



'아를의 붉은 포도밭(Red vineyard at Arles)'이 바로 그 작품입니다. 아를은 로마시대 갈리아 속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지금도 원형경기장이 생생히 보존된 유서 깊은 도시입니다. 고흐는 파리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와 남불 프로방스 지방의 밝고 강렬한 태양 아래 펼쳐지는 많은 풍경들을 그의 화폭으로 옮겼습니다. 이 시기에 그의 그림은 감자 먹는 사람들로 대표되는 파리의 어두컴컴했던 그림과는 화사한 노란색이 주가 되는 밝디밝은 그림들을 그렸습니다. 피카소에게 청색시대가 있다면 가히 이때는 고흐의 황색시대입니다. 고갱과의 짧으나 강렬했던 인연도 이곳에서 맺어집니다.


별이 빛나는  아래 론강이 유유히 흐르는 아를은 지금도 강 따라 주변에 많은 유명한 와이너리가 있습니다. 지공다스, 샤또네프뒤파프 등으로 대표되는 남부 론 와인이 그것들입니다. 고흐가 그린 이 포도밭도 론 와인 생산지일 것입니다. 강렬한 태양 아래 인부들이 태양빛만큼이나 생동감 있게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포도나무의 색상이 제목처럼 붉습니다. 정상적이지 않은 이 색은 당시 19세기 말 유럽의 포도나무를 초토화시킨 와인의 페스트라 불리는 필록세라 균에 전염되어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그 분석에 동의하는 것은 빛과 광선에 상관없이 본래 그 색은 그런거야라며 일률적인 색으로만 표현됐던 기존의 색상론에서 자유로운 후기인상파 고흐의 붓으로 칠해진 색이라 아닐 수도 있겠지만 당시 유럽의 포도나무가 절멸한 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그리고 고유 컬러의 고정관념을 깬 고흐가 제목에서 보이 특정 사물에 굳이 Red를 특정한 것도 저의 이런 심증을 굳게 만듭니다.



이 그림이 팔리고 2년 후 고흐는 죽습니다. 권총 자살로 그의 짧은 생애 대비 많은 한을 품은 채 생을 마감한 것이지요. 천재는 인정받기 힘듭니다. 적어도 당대엔 그렇습니다. 고흐처럼 이전에 세상에 없던 새로운 걸 내놓는 사람들이니까요. 사람들은 못 보던 것이니 생경하고, 안 쓰던 것이니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룰과 기준은 존재하는 것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니 새로운 것은 평가할 기준도 없고 값도 매길 수가 없습니다. 해가 뜬 하늘색은 파라야 하는데 노란색을 칠해놨고, 밤하늘은 검은색인데 파랗고 하얗고 노란색을 칠해놨으니 이거 환장할 일이지요. 그래도 그런 천재가 있으니 우린 얼마나 행복합니까. 노란 낮하늘과 파란 밤하늘도 구경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고흐 그가 하늘을, 아니 세상을 그렇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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