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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Nov 17. 2020

플란더스의 개와 파랑새

우리가 어린 시절 만화책이나 만화영화로 일찍이 듣고 봐 온 이 개와 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벨기에.. 모두 저 멀리 유럽의 벨기에산입니다. 플란더스는 벨기에의 북부 플랑드르 지방의 영어 지명이고, 파랑새는 벨기에의 유명 작가인 마테를 링크의 동화극이기에 그렇습니다. 20세기 아시아 먼 동방에 위치한 한반도에서 자란 어린이들이 접했던 문화 수입품들 중 유명했던 이 두 작품이 역사적으로 그렇게 강국의 것이 아닌 벨기에와 관련 있다고 하니 일단 그 점도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벨기에라는 공통점과 달리 이 두 작품은 커다란 상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파랑새는 행복을 상징하는 파랑새를 결국은 는 해피 엔딩이지만 플란더스의 개는 주인공이 애처롭게 죽음으로 끝나는 새드 엔딩이기에 그렇습니다.

관련해서 우리가 어릴 적 자라면서 가장 먼저 듣는 서양화가는 누구였을까요? 피카소, 고흐였을 수도 있지만 잘 생각해보면 루벤스였을지 모릅니다. 적어도 게는 그러했습니다. 플란더스의 개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장해비로소 제대로 알게 된 이 유명 화가 루벤스는 만화영화 플란더스의 개에 실명으로 등장하는 벨기에 사람이기에 그렇습니다.

플란더스의 개의 원작은 소설입니다. 작가는 벨기에 사람이 아닌 영국의 라 라메라는 여류 소설가로 그녀는 위다라는 필명으로 이 책을 썼니다. 그녀 플랑드르 지방을 여행하며 이 동네 저 동네에서 들은 이야기들을 묶어 정리해 1872년 소설을 출간했는데 이 책이 플란더스의 개입니다. 설화나 구전으로 떠돌던 동네의 이야기가 유명 작품이 된 것이지요. 이렇게 설화나 구전이 유명 작품으로 재탄생한 사례는  많이 습니다. 일단 플랑드르 옆 동네 백설공주만 해도 북구에서 떠도는 이야기들을 독일의 그림 형제가 동화로 펴낸 것이니까요.


하지만 라 라메의 소설이 오늘날처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역시 우리도 그렇게 알게 된 것처럼 TV 만화영화 덕이었습니다. 1970년대 일본 후지TV는 세계명작동화라는 타이틀세계 유명 동화들을 만화영화 시리즈로 제작하여 송출하였는데 플란더스의 개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플란더스의 개는 오늘날 비영어권 국가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확인하긴 힘들지만 당시 벨기에 정부가 만화영화만든 일본인 TV 제작자에게 큰 훈장을 줘도 됐음직한 큰 일을 해낸 것이었습니다.



https://youtu.be/g-E6_fS-h98


플란더스의 개에는 네로라는 화가 지망생 소년 주인공과 그를 부양하는 할아버지, 그리고 제목에서 보이는 또 하나의 주인공 파트라슈라는 가 등장해서 스토리를 이어갑니다. 주인이 버려 죽음 속에서 구출된 파트라슈가 끄는 우유를 배달하며 가난했지만 소소한 행복 속에 네로네는 살고 있었습니다. 그를 좋아하는 부잣집 딸 아로아도 그의 행복 리스트 안있었을 겁니다.


이런 네로는 벨기에 최고 인기 화가인 루벤스를 꿈꾸는 화가 지망생이었는데 그의 소원은 근처 도시 성당에 전시된 루벤스의 그림을 한번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은 커튼으로 가려져있고 돈을 내야만 볼 수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가난했던 네로는 돈을 낼 수 없어 그 그림을 볼 수 없었습니다. 결국 불행의 여러 경로를 거친 후 사지에 몰린 죽음에 이르기 직전에야 네로는 그의 충견이자 절친인 파트라슈와 함께  그림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그림 앞에서 껴안고 얼어 죽은 둘의 모습이 발견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막을 내립니다. 참으로 슬픈 결말이지요.


엄마는 네로가 애기일 때 죽고, 그를 보살피던 할아버지도 먼저 죽고, 미술대회에선 낙선하고, 여자 친구 아로아 그녀 아버지의 모함으로 헤어지, 결국 방화범으로 몰려 마을에서 쫓겨나고.. 이렇게 플란더스의 개는 희망찬 동심이 가득해야 할 만화영화치곤 흔치 않게 철저하게 비극으로 결말을 맺는 슬픈 줄거리로 끝을 맺습니다. 우리 어릴 때 파트라슈를 팥들었수라고 부르 등 이런 개그 소재로 삼기엔 그 슬픔의 깊이가 꽤나 되는 플란더스의 개입니다.

주인공 네로가 죽는 순간까지 그렇게 보고파했던 성당의 커튼 뒤에 가려진 루벤스의 그림 두 편, 우리는 지금 이렇게 쉽게 공짜로 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올려지는 예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가 바로 그것들입니다. 아래 만화영화 영상  그림의 실물은 지금도 네로가 죽은 그 성당에 전시되어 관광객들을 맞고 있습니다. 바로 벨기에 플랑드르 지방의 안트베르펜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 이 그림들이 제단화로 있습니다. 만화영화 속에서 보이는 성당과 같은 성당입니다. 금과 다이아몬드 시장으로 유명한 안트베르펜은 영어로 앤트워프라 불리는 도시로 올림픽이 열리기도 했던 벨기에도시입니다.


https://youtu.be/DlwAOv_4R2w


그런데 이런 명작을 벨기에 사람들은 우리가 알고 평가하는 만큼 그렇게 높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본국보다는 해외에서 더 유명세를 타고 있다는 것인데요 그중 아시아권인 우리나라 일본 중국인들에게 인기가 높아 안트베르펜 성당 루벤스 그림 앞 관광객들도 동양인이 주류를 이룬다고 합니다. 그러하다고 하니 저의 생각이 맞을지는 모르지만 다음과 같은 해석을 해봅니다. 어디까지나 근거 희박한 저의 생각입니다.


일단 그 작품의 배경은 벨기에이지만 외국인들의 손으로만 세상에 알려지게 돼서 그런 건 아닐는지요. 영국인이 소설로 쓰고, 일본인이 만화영화로 제작하여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었으 드는 생각입니다. 메이드 인 벨기에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또한 동화임에도 줄거리가 너무 슬프고 동심에 못을 박는 나쁜 벨기에 어른들이 등장하니 그런 면에서도 떨떠름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로아의 아버지와 동네 사람들 모두 네로와 파트라슈를 죽게 만드는데 일조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롯이 그들의 동심 명작인 파랑새를 더 높게 평가하고 더 많이 알리고파 할지 모릅니다. 틸틸과 미틸 남매의 행복 찾기 여정을 그린 동화극인 파랑새에서 그들은 결국 여행지 어디에서도 찾지 못한 파랑새를 여행 후 돌아온 집안에 있는 새장 속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지요. 정통 동화스러운 완벽한 해피 엔딩입니다. 등장 인물도 관객도 독자도 모두 후련하고 행복합니다. 동화임에도 슬픔과 애처로만 남는 플란더스의 개와는 전적으로 다릅니다. 물론 우리 곁 행복 파랑새, 날아가지 않도록 조심해서 다루어야겠지요.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마테를 링크는 1911년 노벨상까지 수상하는 벨기에의 국민 작가가 됩니다.




벨기에는 이외에도 우리가 들으면 아하! 하며 그것도? 할만한 자산이 많은 각종 강국입니다. 일단 초콜릿 산업의 최강국으로 초콜릿의 대명사인 고디바를 비롯하여 길리안 노이하우스 레오니다스 등이 벨기에산입니다. 그리고 맥주 산업은 독일에 버금가는 강국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잘 알려진 스텔라아투아 호가든 듀벨 레페 등을 비롯하여 200여 종의 브랜드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스머프 탱탱 등 유명 만화 캐릭터를 보유한 만화 강국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맛있는 와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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