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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Jan 13. 2024

츠타야서점 vs 성품서점

서점을 만드는 사람들

지난 2023년 추석 연휴 기간을 이용하여 가족과 함께 일본 여행을 하였습니다. 여행의 종착지는 수도 도쿄였습니다. 일본은 이런저런 일로 수차례 방문하였지만 도쿄는 1992년 당시 재직하던 광고회사 오리콤에서 연수로 간 이후 31년 만에 처음으로 간 것이었습니다. 그땐 우리나라와 일본이 모든 면에서 상당한 격차를 보였던 시기였기에 당시 30여 명의 연수단인 입사 동기들은 저를 포함하여 마치 촌사람이 서울에 상경하듯 경이감을 안고 도쿄에 입성하였습니다. 일단 우리나라에서 해외여행 자유화가 1989년 처음으로 실시되었으니 거의 모든 멤버들의 첫 외국행이었습니다.


그때 대한민국의 신참 광고인들이 연수지로 도착한 곳은 당시 오리콤과 업무 협약을 맺고 있던 그때나 지금이나 세계 최대의 단일 광고회사인 덴츠였습니다. 한마디로 세계 2위의 광고 대국 일본의 세계 1위 광고 회사 본사로 연수를 간 것입니다. 그때 덴츠 본사는 일본 최고의 번화가인 긴자 지구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우리 서울처럼 펑퍼짐한 사각의 빌딩들이 아니라 좁고 뾰족한 고층 건물들이 가로수처럼 빽빽이 줄지어 서있던 긴자 거리가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그 거리엔 웬 외국인들이 그리도 많은지요? 서울에서 외국인을 보기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31년 만에 도쿄를 방문하고 긴자를 가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과거 연수는 불과 3일이었지만 매일 덴츠로 출근하여 하루종일 충실하게 교육을 받았습니다. 우선 덴츠 사옥부터 찾아봤습니다. 하지만 지금 긴자에 덴츠는 있지 않습니다. 신흥 비즈니스 타운인 미나토구의 시오도메로 사옥이 이전을 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기업 덴츠의 사옥 이전은 긴자 지구의 쇠락과 상관성이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버블 경제로 일본 경제가 하락하며 긴자가 쇠퇴한 것도 이유가 되어 이전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후 코로나까지 이어져 긴자의 불경기는 긴 터널 속에 오랫동안 갇혀 있었는데 지금 그 긴자가 터널을 빠져나와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과거 덴츠 사옥 길 건너 맞은편에 새로 들어선 6번가의 한 건물이 힘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7년 오픈한 신개념 명품 백화점인 긴자식스(GINZASIX)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긴자에 그런 팬시한 건물이 들어서고 제가 그곳에 들어가도 31년 전 도쿄를 방문했을 때처럼 놀라고 주눅 들 일은 이젠 없지만 긴자식스를 방문했을 때 제가 놀란 공간이 하나 있습니다. 13층인 그 건물은 6층까지가 쇼핑몰이고 7층부터는 오피스인데 긴자식스의 6층에 입점해 있는 어떤 브랜드 숍이 저를 놀라게 한 것입니다. 서점입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서점 체인인 츠타야가 에스컬레이터로 6층에 올라가자마자 나타났습니다. 평당 10억 원을 호가하는 긴자의 2천8백여 평(9077.49m2)에 달하는 대지에 건축비만 8천억 넘게 들어간 긴자식스의 가장 상징적인 층이라고 할 6층을 츠타야서점에 내어준 것입니다.


도쿄의 신흥 명물인 긴자식스 6층에 입점해 있는 츠타야서점


게다가 츠타야는 6층 플로어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어 입점해 있는 브랜드들 중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현재 긴자식스는 세계적인 명품을 비롯하여 242개의 고급 브랜드가 입점해 있고 그들 중 100여 개는 일본의 본점일 정도로 핫한 건물입니다. 과연 그렇게 명품으로 가득 채워진 만큼 설계도 일본의 최고 건축가인 다니구치 요시오가 맡아서 진행했습니다. 그런 명품 건축물의 최고 명당자리에서 책과 문구류를 팔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압구정동의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에 교보문고가 입점해 있는 것과 유사한 꼴이라 하겠습니다.


한편 지난 12월 대만의 한 서점 뉴스가 우리나라에까지 전해왔습니다. 그만큼 뉴스밸류가 있기에 외국의 일개 서점 뉴스가 우리에게까지 알려졌을 것입니다. 대만을 대표하는 서점 체인인 성품서점 신의점의 폐점 뉴스였습니다. 일본의 츠타야와도 같은 그 대형 서점은 타이베이의 중심가에 위치하며 2006년 오픈 때부터 24시간 오픈하는 서점으로 알려져 대만을 찾는 전 세계인의 핫스팟으로 알려진 곳이었습니다. 성품서점은 24시간 문을 여니 한밤중에 가도 책은 물론 먹거리와 즐길 거리도 있는 복합 문화 장소였습니다.


그런 명소가 임대 기간이 종료되어서 문을 닫은 것인데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워서 그랬을 것입니다. 그로 인해 대만과 타이베이는 이제 그 나라와 도시를 대표하는 문화 상품을 하나 잃었고 그곳을 사랑하는 전 세계의 많은 팬을 잃었습니다. 2006년 이후 올림픽의 성화와도 같이 꺼지지 않았던 그곳의 불은 지금 까맣게 꺼져 있을 것입니다. 성품서점 신의점은 예수님이 태어난 12월 24일 사망을 하였는데 지금 그 24시간 서점은 장소를 옮겨 다른 곳에서 오픈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지켜볼 일입니다.


2023년 12월 24일 폐점한 타이베이의 명물 성품서점 신의점


도쿄의 중심가 긴자의 긴자식스에 태어난 츠타야서점과 타이베이의 중심가 신의지구에서 죽은 성품서점의 뉴스는 서점이라는 상품과 서점 경영이라는 마케팅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도쿄에서 가장 비싼 건물에 입주해 있는 츠타야서점은 그 임대료를 어떻게 감당할까요? 일본이라고 해서 책을 읽는 사람이 늘어나지는 않을 텐데요. 그곳에서 아무리 책과 문구류를 많이 판다고 해도 그 임대료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츠타야서점의 모기업은 CCC(culture convenience club)로 사명처럼 서점을 비롯하여 모든 문화적인 편의를 제공하는 것을 비즈니스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서점의 미래를 보여주는 츠타야로 서점의 역할을 소비자의 생활 속에서 최대로 확대하고 확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변화와 비전만으로 서점이 지속되고 영위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만의 성품서점 신의점도 이미 그렇게 변신하고 다양한 편의를 소비자에게 제공해오고 있었지만 문을 닫았습니다. 2021년 문을 닫은 우리나라의 반디앤루니스도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었지만 역시 부도를 면치 못했습니다. 현재 국내 최대의 서점인 교보문고도 그런 생존 전략을 구사하고 있을 것입니다. 주지하다시피 서점, 특히 오프라인 서점의 경영은 전 세계적으로 계속해서 악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의 경우 주요 서점 4사의 2022년 기준 영업이익 합계는 199억으로 전년 대비 33.3% 감소했으며, 교보문고의 2023년 도서 판매량은 전년 대비 4.5% 감소했습니다. 그중 오프라인 판매 점유율은 38.2%로 2023년의 40.2%보다 또 줄었습니다. 대형 서점이 이러할진대 개인이 운영하는 골목길 서점들의 어려움은 불을 보듯 뻔할 것입니다. (데이터 출처, 한국경제 2024. 1. 3)


서점이 존재하려면 책을 쓰는 작가와 책을 만드는 출판사, 그리고 책을 파는 서점과 그 책을 구매하는 독자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위의 츠타야서점과 성품서점의 생존과 사망에서 보면 그 4요소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그런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 서점을 임대하는 건축주, 또는 건물주입니다. 서점을 끌고 가는 서점주의 철학 이외에 건물주의 철학까지 있어야 서점이 존속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긴자식스의 건물주는 디오르나 롤렉스, 까띠에르 등의 명품 브랜드 매장과 츠타야서점과의 임대료를 다른 계산법으로 적용할 것입니다. 이렇듯 건물주의 서점에 대한 이해도가 함께 할 때 서점은 지속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대신 서점은 모자라는 임대료를 그 건물을 지적이고 문화적으로 빛나게 해주는 방법으로 보상하고 있을 것입니다. 문화는 그런 방식으로 돈으로 환산되는 것이니까요. 인간의 행복과 맞닿아 있는 부분입니다.


통상 우리나라에서도 건물주들은 임차인으로 스타벅스를 비롯한 예쁜 카페를 유치하고자 애를 씁니다. 그 건물의 가치를 올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서점도 충분히 그런 역할을 하는 문화 상품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긴자식스의 츠타야서점이 대기업의 대형 서점이라서 그렇게 큰 건물에서 그 역할을 하고 있듯이 사이즈를 축소하면 일반 건물을 임차해서 운영하는 개인 서점주의 서점들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건물주의 이해도가 우선되어야겠지만 서점주의 입장을 고려해서 충분히 모자라는 부분을 문화적인 방식으로 채워서 서로가 윈윈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신 일반 서점들도 변화에 맞추어 문화상품으로 변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선릉역 근교에 위치한 아름다운 서점 최인아책방


만약에 지금과 같은 오프라인 서점의 하락 추세가 계속되어 서점이 사라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인류에게 재앙일 것입니다. 온라인 서점을 통해서 책을 사고, 그곳에서 못 사는 책은 도서관에 가서 읽거나, 대출해서 읽으면 되니까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서점은 인류가 오랫동안 누려왔던 문화적인 장소이기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림을 감상하러 갤러리를 가고, 연주회를 감상하러 음악당을 가듯이 책을 감상하고 소유하러 서점을 가는 것입니다. 마에스트로의 음악도, 대가의 그림도 유튜브를 통해서 얼마든지 무료로 감상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돈을 내고 몸을 움직여 갤러리나 음악당을 가듯이 서점도 작가의 지적인 요소를 충전하고 그의 생각과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서점이 존속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인간에겐 그런 문화적인 욕망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 읽고 싶은 책을 사러 서점에 갈 때의 설렘을 생각해 보십시오. 똑같은 책이 비치되어 있는 도서관에 갈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서점에 들어설 때 쌓여있는 새 책에서 그윽이 풍겨오는 나는 책향기도 기억해 보십시오. 서점이 없다면 그런 추억적인 요소까지 사라지고 상실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프라인 서점이 사라지고 감소하는 것은 단순히 서점주만의 비극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런 최악의 시대가 온다면 서점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나서려나요? 우리가 선진국으로 가며 지자체마다 많은 공공 도서관이 생겨난 것처럼 지자체가 서점주를 지원하는 공공 서점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서관이나 서점이나 책을 사랑하는 마음은 같고 단지 소유와 임대만이 차이가 있는 것이니까요.


지난 목요일인 1월 11일 저녁 저는 한 서점을 방문했습니다.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서점임에도 우리나라에서 위의 츠타야서점과도 같이 문화적인 편의와 효용까지 제공하고 있는 서점입니다. 바로 강남 선릉역 근처에 있는 최인아책방입니다. 그날 저녁 그 서점에선 2023년 제가 출간한 <TAKEOUT 유럽예술문화>와 <TAKEOUT 유럽역사문명>의 북토크가 열렸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최인아책방의 서점주가 서점의 미래에 대한 철학이 가장 분명한 분들이라고 생각해서 그곳에서 북토크를 연 것입니다. 이제 겨우 3년 차에 불과한 햇병아리 작가임에도 추운 겨울밤 많은 분들이 오셔서 서점의 부가적인 문화 기능을 즐기고 돌아갔습니다. 저의 인문학 강연 이외에 제 책에도 등장하는 프렌즈오브뮤직의 구자은 피아니스트와 홍채원 첼리스트의 연주까지 감상하였으니까요. 이 글을 통해 참여하고 참석한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나저나 강남의 역삼역 랜드마크인 GFC(강남파이낸스센터) 1층에도 있는 최인아책방 2호점의 경우는 어떤 형태로 입점해 있는지 모르겠네요. 서점을 사랑하는 서점주와 건물주의 선전을 기대합니다.


최인아책방에서 열린 <TAKEOUT 유럽예술문화>, <TAKEOUT 유럽역사문명>의 작가 북토크 (2024.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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