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하 Dec 15. 2020

동심 크리스마스 트리

12/25 vs 05/01

방금 전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식을 끝냈습니다. 과거 해마다 전방 철책선에서 북한을 자극하느마느했던 애기봉의 거창한 점등식이 아닌 우리 집 거실 플라스틱 전나무의 식을 말함입니다. 15년쯤 전 인터넷에서 2만 원을 주고 샀는데 올해도 여전히 형형색색 오색찬란한 화려함을 제 손을 거쳐 뽐내고 있습니다.

전 이런 트리가 좋습니다. 첨단 기기의 결합으로 더 화려해지거나, 오히려 거꾸로 미니멀해진 신식 트리가 쏟아져 나오지만 70년대 신부 화장같은 이런 촌스런 구식 트리가 좋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 집에서 트리 보기가 힘든 시절 성탄절에 예배당에 가면 볼 수 있었던 화려한 불빛을 휘감은 그런 트리입니다. 그 시절 조명이라곤 일자형 형광등과 30촉 60촉 백열전구가 다였던 때였으니 충분히 그럴만했습니다. 하물며 어린아이의 눈에야..



여전히 제 앞 트리의 불빛은 기차처럼 빠르게 달려가고, 때론 교대로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며 그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 불빛을 보노라면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가 떠오릅니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있느니 없느니, 선물을 양말에 넣느니 마느니, 그가 굴뚝으로 오느니 마느니 옥신각신했던 시절입니다. 아마 성탄절 바로 전 까지는 아기는 어떻게 생기고 어디서 나오냐를 가지고 자못 심각하게 논쟁을 벌였던 시기였을 겁니다.


아, 그래서 제가 이런 구식 트리를 좋아하나 봅니다. 동심, 크리스마스 트리 속엔 저의 사라진 어린이가 숨어 있습니다. 트리에서 밝혀지는 그 불빛 하나 하나는 마치 동심의 열매마냥 저를 그 시절 세계로 안내하곤 합니다. 그땐 많이 추웠지만 이 앞에서 만큼은 더없이 따스했던 크리스마스 트리의 형형색색 불빛들.. 어쩌면 이따 한밤중 아무도 없을 때면 성냥팔이 소녀가 추위를 피해 이 트리 뒤로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슬프고 가엾은 그녀, 이젠 그녀도 따스해야 할 텐데..

그녀의 슬픈 이야기는 언젠가 읽었던 신문 글(by 석영중 고려대 교수) 도스토옙스키의 '그리스도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받은 꼬마'라는 동화로 이어집니다.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면서 찬란한 크리스마스 트리와 인형같은 아이들이 보였다. 이날이 되면 예수님은 크리스마스 트리가 없는 아이들을 위해 파티를 열어주셔." 그들은 모두 크리스마스 이브에 얼어 죽어 천국에 올라간 꼬마들입니다. 그리스도가 아이들에게 축복을 해주고 있고 다른 쪽엔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엄마들이 울면서 서 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장면엔 천사가 된 아이들이 우는 엄마에게 다가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며 여기는 너무 좋은 곳이니 이제는 울지 말라고 달래주었다."로 끝을 맺습니다. 차암 도스토옙스키 그사람..



크리스마스 트리가 등장하는 팝송 중에 우리에게 특히 익숙한 노래가 있습니다. 바로 비지스의 'First of May'입니다. 제목은 5월의 첫날이지만 이 노래의 메시지를 관통하는 오브제는 12월의 크리스마스 트리입니다. 곡에서 비지스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아이와 어른의 세계를 구분하는 경계선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키(높이)가 그렇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트리보다 키가 작았을 땐 아이의 세계이고, 그보다 키가 크면 어른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오로지 따스하고 풍성한 추억만이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 그것보다 키가 작았을 때는 세상 모르고 사는 꿈 많고 행복한 동심이지만 그 높이를 추월하는 순간부턴 만만치 않은 인생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산같이 생긴 그 트리 아래서 보호받고 살다가 이후엔 거친 세상에 던져진다는 것이죠. 부모의 무릎 아래에서 살던 아이가 희로애락 오욕칠정 쓴맛단맛을 경험하며 세상을 알아간다는 것입니다. 노래에서 트리 아래에서 손가락을 걸었던  첫사랑은 역시나 깨집니다. 찬란해야 할 5월의 첫날은 이렇게 아픈 날로 기억됩니다.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이 노래가 유독 더 의미 있는 것은 도 그렇게 깨진 첫사랑 때문이 아니라 First of May가 3년 넘게 변하지 않는 제 핸드폰 컬러링이기에도 그렇습니다. 그만큼 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곡이라 할 수 있겠지요. 3형제로 구성된 비지스는 적어도 제가 생각하기엔 우리 한국인의 정서에 가장 가까운 팝송을 부르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70년대 말 토요일 밤의 열기 속 디스코 풍의 곡으로 넘어가기 전까진 감미로운 음성으로 슬로 풍의 서정적인 팝송들을 계속해서 불러댔던 그들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비틀스보다 더 많은 비지스의 노래를 들어오며 자란 우리 세대였습니다.

크리스마스 트리보다 훌쩍 커버린 지금 당신의 동심 크리스마스 트리는 마음 속 어디에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요? "내가 어렸을 때 난 크리스마스 트리보다 키가 작았고 그 아래 세상에 살았습니다. 어느 날 내 키는 크리스마스 트리보다 커졌고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눈 앞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마스 트리, 바로 우리가 끝까지 잡고픈 동심의 나무입니다.

Merry Christmas!


https://youtu.be/yGxDx8ftX1I



작가의 이전글 If or If no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