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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멘첼의 두 그림

by 마하

아돌프 멘첼은 독일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그는 독일이 유럽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18세기 이후 통일기의 여러 모습을 그의 화폭에 담았습니다. 프로이센 왕국과 독일제국의 모습들입니다. 그래서 그는 비스마르크와 히틀러가 좋아했던 화가이기도 했습니다. 아마 프리드리히 대왕이 살아있어서 그의 그림을 봤더라면 그 역시 좋아했을 것입니다.


베를린 도심엔 박물관이 모여있는 한 섬이 있습니다. 도시를 흐르는 슈프레강에 인공섬을 조성해 5개의 주요 박물관과 종교개혁으로 인해 개신교 교회로 바뀐 베를린 돔이 위치해 있는 섬입니다. 우리 서울의 여의도와 같지만 강폭이 좁아 그렇게 섬처럼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그 섬에 있는 구국립미술관(Alte Nationalgalerie)엔 계몽군주이자 독일 역사상 유일하게 대왕으로 존경받는 프리드리히 대왕(1712~1786)이 모델로 등장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아돌프 멘첼의 <상수시 궁전에서 플루트를 연주하는 프리드리히 대왕>이란 그림입니다. 대왕은 그가 건축한 상수시 궁전에 사람들을 초대해 그들 앞에서 직접 플루트를 연주할 정도로 예술에도 조예가 깊은 군주였습니다. 그림에선 당시 프로이센 왕국의 풍요로운 상류사회의 모습이 보여집니다. 플루트 솔로에 맞춰 반주를 하고 있는 악단의 피아니스트는 음악의 아버지인 바흐의 아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전 시대의 모습이므로 상상으로 그린 역사화입니다.


<상수시 궁전에서 플루트를 연주하고 있는 프리드리히 대왕> 142×205cm


이 그림 맞은편엔 당시 하층민인 도시 노동자의 삶을 묘사한 아돌프 멘첼의 다른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시차는 있지만 독일 근대화기 최상과 최하를 묘사한 그림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것입니다. 농업에서 공업화로 가고 있는 독일제국의 모습이 보여지는 작품으로 <제철공장>이란 그림입니다. 화가는 공장을 방문한 후 이 작품을 그렸습니다. 그림에선 마치 시뻘건 용광로와 사투를 벌이는 듯한 노동자들의 모습이 보여집니다. 공장의 시끄러운 소음까지도 밖으로 새어 나오는 듯한 사실적인 그림입니다. 그 난리판에서도 오른편 하단의 노동자는 허겁지겁 밥을 먹고 있습니다. 식사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작업 환경이었을 것입니다.


<제철공장> 158×254cm


상수시 궁전의 샹들리에가 쏟아내는 불빛과 제철공장 용광로에서 튀어나오는 불빛은 똑같이 환한 불빛이지만 그 속엔 많은 것이 내포되어 있을 것입니다. 화려함과 격렬함, 이것은 그 어떤 뛰어난 군주나 재상도 해결할 수 없는 시대의 간극일 것입니다. 화가는, 아돌프 멘첼은 이 복잡한 시대상들을 단 한 컷의 그림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역사가라면 꽤나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을 내용들입니다.


이 두 그림이 전시된 동선도 흥미롭습니다. 미술관에서 아돌프 멘첼의 방에 들어서면 무조건 <상수시 궁전에서 플루트를 연주하는 프리드리히 대왕>의 그림이 보입니다. 그리고 뒤로 돌아서야 그다음 그림으로 <제철공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미술관 측에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걸어놨을 것입니다. 보듯이 그림 사이즈도 비슷합니다. 좀 더 생각하며 머무르게 하는 효과, 미술관의 의도대로 한동안 두 그림 사이에 서서 번갈아 고개를 돌리며 감상을 했습니다.


베를린 구국립미술관엔 아돌프 멘첼의 이 그림들 이외에도 독일의 낭만주의 대표하는 화가인 캐스퍼 프리드리히의 그림을 비롯하여 모네, 마네, 르노와르 등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이 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베를린 박물관섬에 위치한 구국립갤러리
독일 사실주의의 대가 아돌프 멘첼 (1815~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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