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가족 일로 남양을 다녀왔습니다. 귀경길 차밖 온도는 정오가 되어도 영하 8.5도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서울이 한낮에 이렇게 추운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추운 오늘입니다. 그래도 태양이 쨍쨍해서인가 시각적인 분위기는 온도만큼 춥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와중에 겨울햇살이 고마운 오늘입니다.
이렇듯 이 정도 추위 속에서도 인간은 고통스럽습니다. 제가 살면서 경험했던 최고의 추위는 바로 군 복무 시절이었습니다. 철원 산속에서 보냈던 20대 초반 제 젊은 날의 살벌했던 겨울.. 막사 마당 끝 비닐하우스 세면장에서 페치카 위에 얹어 덥혀진 양동이 물로 머리를 감고 수건으로 물기를 턴 후 전속력으로 막사를 향해 달려가 문을 열고 온기 있는 실내로 들어오면, 그 짧은 순간임에도 짧은 군인의 머리카락은 얼어서 밤송이처럼 빳빳하고 날카롭게 서있었습니다. 불과 10여 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였는데 말입니다. 그 겨울 철원의 최저 온도는 영하 27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정도 추위는 추위도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몇 년 전 뉴스에 극한의 추위를 뚫고 등교하는 러시아 초등학생들의 모습이 소개되었습니다. 뉴스 영상 속 희뿌연 눈보라 속 어린아이들은 그 추위 속에서도 재잘거리며 등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날씨와 상관없이 이렇게 친구들과 떠들면서 학교 가는 어린이들 모습은 세계공통일 것입니다. 그런데 춥고 시야가 가려서 그런지 그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 톤이 꽤나 높게 들렸습니다. 다른 나라 뉴스에도 소개될 정도이니 얼마나 춥기에 그랬을까요? 그날 러시아 동부 동토 사하 공화국 소도시 오이먀콘 길거리 온도계에 찍힌 온도는 영하 50도였습니다.
영하 52도가 돼야 학교가 문을 닫는데 거기에 2도 모자라니 아이들은 여느 때와 같이 학교를 가야 했습니다. 최저 온도 최고 기록으로 영하 71.2도를 기록한 적도 있다고 하니 극한의 추위 지대입니다. 그곳 오이먀콘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TV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화창한 햇살 아래 웃통을 벗고 일광욕을 하는 중년 남자의 모습이 나왔습니다. 인터뷰에서 그 남자는 겨울치곤 따뜻한 날이라 그러고 있다고 했는데 그날 온도는 영하 25도였습니다. 제가 철원에서 하도 추워 이런 날이면 얼어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까지 들던 날에 그는 일광욕을 즐기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대단한 러시아의 겨울이고, 그 겨울의 러시안입니다.
나폴레옹은 결과적으로 세 명의 적장 때문에 그의 시대를 마감했습니다. 그가 경제봉쇄령을 내린 영국 해군의 넬슨 제독과 육군의 웰링턴 공작, 그리고 동쪽 러시아의 공군(?) 스노우 장군 때문에 망친 것입니다. 스노우 장군(General Snow)은 동장군을 가리킵니다. 당시 서방의 언론과 만화에서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실패를 그렇게 묘사했습니다. 추위가 나폴레옹과 프랑스군을 물리쳤기 때문입니다.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을 떠나기 전 착각을 했습니다. 러시아를 너무 몰랐던 것입니다. 1812년 5월에 파리에서 출발해 6월 24일 그의 60만 대군은 러시아의 국경인 네만강을 건넜습니다. 러시아 정벌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9월 14일 모스크바에 입성했습니다. 정교회의 중심, 제 3의 로마라 칭한 모스크바를 손에 넣었으니 러시아 정복은 성공한 것입니다. 하지만 도시는 텅 비어있었습니다. 청야전술이라 불리는 러시아군의 작전은 가는 곳마다 모든 식량을 불태우고 우물도 메꾸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폴레옹이 모스크바에 도착했을 때 그 도시는 이미 죽음의 도시와도 같았습니다.
입고 있던 군복은 여름옷이었습니다. 바로 승리할 줄 알았으니까요. 현지 보급이 안 되는 상태에서 파리부터 모스크바까지의 장장거리 보급은 언감생심이었습니다. 그리고 9~10월임에도 이른 추위가 찾아왔습니다. 영하 20~30도, 그런 열악한 환경의 프랑스 연합군에게 스노우 장군이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 것입니다. 경험해보지 못한 추위였습니다. 병사들은 그 추위 속에 얼어 죽거나, 굶어 죽거나, 병들어 죽어야 했습니다.
결국 나폴레옹은 10월 19일 철수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파리까지 죽음의 행진을 하며 돌아갔습니다. 이어진 추위 속에서 병사들은 계속해서 죽어나갔습니다. 60만 대군 중에서 최종 살아남은 병사는 5만 정도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동장군이 거둔 러시아의 대승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나폴레옹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훗날 차이코프스키는 이 승리를 기념해 대포로 축포를 날리는 <1812년> 서곡을 썼습니다. 프랑스의 국가인 <라 마르셰예즈>까지 넣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