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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Aug 14. 2021

도서관을 사랑한 사람들


오늘도 도서관입니다. 그런데 양재천 옆 양재도서관은 제가 처음 온 후 언제 와도 비교적 좌석 여유가 있었는데 오늘은 달랐습니다. 문 여는 시간인 아침 9시에 칼같이 맞춰 왔음에도 불구하고 출입구 앞에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지난주까지는 안 그랬습니다. 처리할 일들이 좀 있어 이번 주는 목요일인 오늘 처음 이곳에 왔는데 이런 뜻밖의 전경이 펼쳐져있는 것이었습니다. 웬일일까요?


학교가 방학을 해서 그런 걸까요? 엄마, 아빠와 손잡고 온 어린이들이 줄에 많이 보였습니다. 마치 그들은 동네 도서관으로 가족 소풍을 온 것처럼 정겨워 보였습니다. 그리고 대학생인지 취준생인지 구분이 안 가는 젊은 친구들이 가장 많이 보였고, 끝으로 저 같은 시니어층들이 듬성듬성 보이는 기다란 줄의 경이었습니다. 이른 시간임에도 오늘도 예외 없이 날은 무척이나 더웠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이렇게 많은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도서관은 시원하니까요.


백화점의 오픈런을 하듯 자리를 겨우 잡았습니다. 제가 평소 앉았던 좋아하는 자리는 아닙니다. 아쉽게도 지난번 제가 글에서 극찬했던 감동의 도서관이 이렇게 문턱이 높아져가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목도했듯 좋은 곳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이 도서관 상품 시장에서도 예외 없이 보이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도 가격이 없으니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행복할 것입니다. 공공 도서관이니 나의 세금으로 만든 것이고, 그래서 이것은 공짜가 아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논쟁은 밑도 끝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 역시 방금 아쉬움을 표했는데 이것도 본질이 아니라 수요 폭증으로 좋은 자리를 놓친 저의 이기심의 발로에 불과할 것입니다. 좀 더 부지런하면 되니까요. 본질적으로 도서관에 이렇게 일반 시민이 몰리는 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공공을 위한 설립 목적에도 부합되지만 그 자체로 선진적이고 미래적인 현상이니까요. 설사 위의 어느 가족이 아이를 데리고 이곳을 견학차 진짜 소풍을 왔더라도 말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3층 테라스 테이블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이 다양한 만큼이나 오는 목적도 역시 그럴 것입니다. 제가 갑자기 계획에 없던 도서관에 대한 글을 두 꼭지나 쓰고 있네요. 결과적으로 저는 도서관 글을 쓰기 위해서 도서관을 찾은 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도 도서관의 역할은 충분하다 할 것입니다. 저로 하여금 전에는 없던 생각을 하게 하고 글을 쓰게 하는 발전적 동기를 부여해 주었으니까요. 제가 도서관에 안 오고 집에 있거나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면 이런 글은 제 글 목록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저뿐만 아니라 도서관에 온 다른 사람, 그리고 밖에 있는 모든 인간으로 확장해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자기 계발과 발전을 위해 사람들은 도서관을 찾는 것이니까요. 그러니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때부터 도서관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이 모여사는 문명의 장소라면 어디든 존재했습니다. 인간이 가진 여러 가지 속성 중 호모 아카데미쿠스(Homo Academicus)가 발현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사실 제가 이 도서관을 찾은 최초 목적은 그렇게 순수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저의 신분이 백수라 그렇습니다. 지난 6월 말까지 그간 속했던 광고 회사를 마치고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이곳을 찾는 각이 딱 유추될 것입니다. 저도 아침에 제 앞에 줄 서있던 몇몇 시니어분들에 대해 자연스레 그렇게 유추했습니다. 그분들도 저를 보고 그렇게 유추했을지 모릅니다. 백수일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래도 회사에선 고문(Advisor) 신분을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고문은 참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직급입니다. 대부분은 기업 조직의 마지막 직급으로 명함은 있어도 직무와 직책은 없는 백수와 거의 동격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물론 정확한 직무가 있는 고문도 있고, 때론 조직에서 어떤 일이 생기게 하기 위해, 또는 어떤 일이 안 생기게 하기 위해 외부에서 영입하는 고문도 있습니다. 그들에겐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는데 때론 성과가 없어도 보상은 주어집니다. 소속된 존재만으로도 보험과 같은 가치가 있어 고문료를 지급하는 것입니다.


현업을 끝낸 일반 고문의 임기는 한정되어 있기에 고문은 임기 중 다른 일을 찾으려 애를 쓰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그렇게 고문받다가 다른 일을 찾으면 다시 살아나는 것이고, 못 찾으면 고문으로 완전하게 죽는 은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나 긴 샐러리맨의 종착역입니다. 그래서 대개는 고문 임기 중 타사나 타기관에 취업을 해도 원 조직에서는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습니다. 즉, 고문은 생명 연장의 부활이냐 죽음의 은퇴를 결정짓는 유예 기간이라 할 것입니다. 물론 일할 나이가 지난 고령의 시니어라면, 또는 노동력이 살아 있음에도 더 이상 경제 활동에 가치를 두지 않는 고문이라면 그는 바로 은퇴로 직행할 것입니다.


저는 올봄에 어찌어찌 책을 한 권 출간하여 작가로 불러주는 사람도 주변에 생겼는데 그 호칭이 제겐 영 어색하고 쑥스럽기만 합니다.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아무튼 그러한 연으로 이렇게 계속 글을 쓰고는 있습니다만 학교 졸업 후 긴 시간 샐러리를 받고 광고만 한 저로서는 지금 저의 신분이 고문이고 작가라고는 하지만 이도저도 아닌 백수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고문의 공통적인 특징은 회사에 책상과 의자가 여전히 있음에도 잘 안 가거나, 또는 아예 안 나간다는 것입니다. 저도 그런 공통적인 현상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회사를 나오기 전 주변에 앉을만한 자리를 알아봤는데 도서관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남자는 원시시대 때부터 들판을 뛰어다니며 멧돼지나 티라노사우루스를 사냥했던 DNA가 지금도 흐르고 있어 집안 책상에는 잘 앉아지지 않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이브에게 전해 먹은 아담 남자에게 대대손손 벌한 육체의 노동이라는 것도 집안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백수가 되어도 밖으로 나갑니다. 이것은 배우자의 애티튜드(또는 바가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다행히 사무실에 빈 책상이 있으니 편하게 오고 싶을 때 오라고 하는 광고업계의 선후배님들이 계셨지만 이 도서관을 보고 저는 마음을 굳혔습니다. 이곳이 나의 자리이고 사냥터라고.. 그래서 이렇게 앉아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유는 선택지 중 이곳이 가장 좋은 자리였기에 그렇습니다.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지만요.   


도서관을 사랑한 사람들, 아니 사랑할 수밖에 없는 백수들 중에 영화 '올드보이'로 유명한 박찬욱 감독이 있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영화의 꿈을 키우며 활동했던 그는 졸업 후 참혹한 무명의 시절을 10여 년간 겪게 됩니다. 그 기간 중 그는 영화에 대한 열정 하나로 버티며 시나리오를 쓰고, 실패하면 또 쓰고를 반복하며 제작사를 찾아다녔습니다. 말이 영화인이지 수입은 보잘것없는 백수와 같은 신세로 그 기간을 보낸 것입니다. 더구나 동기들은 이미 다 번듯하게 취업한 상태였을 테니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초조함과 자괴감은 더해갔을 것입니다.


이때 그가 영화 공부를 하며 시나리오를 쓴 책상이 있는 장소는 그의 모교 도서관이었습니다. 서강대 철학과를 졸업한 그였기에 그는 졸업생 신분으로 모교의 '로욜라도서관'을 사무실 삼아 10여 년간 출퇴근하며 그곳에서 결국 꿈을 이루었습니다. 두 번의 실패 끝에 그의 첫 출세작 '공동경비구역 JSA'가 도서관에서 탄생했으니 말입니다. 이후 그는 승승장구하며 성공가도를 달려 대표작 올드보이로 2004년 칸느 영화제의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박찬욱 감독의 첫 출세작 영화 포스터

도서관을 떠올리게 하는 세계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물로는 카를 마르크스가 손꼽힐 것입니다. 그는 런던의 '대영도서관(British Library)'에서 오늘날 인간계를 두 세계로 쪼갠 '자본론'을 1867년 완성했습니다. 백수 신분으로 완성한 대작입니다. 그는 조국 독일에서 프랑스로, 벨기에로, 다시 독일로, 또 프랑스로 돌다가 마침내 바다 건너 영국으로 망명하여 런던에서 죽을 때까지 34년을 살았습니다. 망명 전까지는 가는 곳마다 불순분자로 찍혀 주거가 불분명할 수밖에 없던 그였습니다.


영국에서 그의 자리는 분명했습니다. 거주지도 그랬고 일터도 그랬습니다. 마르크스는 런던 삶의 대부분인 30여 년간 대영도서관을 출입하며 문 연 시간부터 문 닫는 시간까지 그의 지정석처럼 사용한 G-8 좌석에 앉아 도서관에 비치된 수많은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며 우리에겐 자본론이라 알려진 '자본(Capital)'을 저술했습니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바이블인 자본론이 당시 자본주의의 심장인 영국의 국립 도서관에서 쓰인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할 것입니다. 그가 런던에서 생계 수단으로 당시 자본주의의 떠오르는 총아인 미국의 뉴욕 데일리 트리뷴지의 특파원 기자 생활을 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후 그 직업마저도 잃어 완벽한 백수가 된 그는 도서관에 살다시피 하며 저술활동에 더욱 매진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불멸의 저서가 완성이 됩니다. 당시 사상적 문제아인 그에게 30여 년간 도서관 자리를 내준 대영도서관의 포용력도 한편 놀랍습니다.

   

마르크스와 그의 동료이자 후원자 엥겔스가 출간한 자본론 초판

이처럼 도서관에서 세상의 발전과 진보를 이루어낸 결과물을 만든 인물들은 차고도 넘칠 것입니다. 특히 인터넷은 물론 신문도 없던 과거로 갈수록 지식과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곳은 도서관이 거의 유일하였기에 그 의존도는 더욱 컸을 것입니다. 오늘 저는 이 양재도서관 안에서 도서관을 사랑한 또 한 명의 도서관 스타를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바로 글감으로 콱 물어 이렇게 그분도 소개드립니다. 저로선 생각하지 못한 행운입니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어서도 그렇지만 그 사실이 이 글의 결론으로 활용되어서도입니다. 써 내려가며 어떻게 결론을 맺을까 고민하던 터였는데 말입니다.


아래 사진입니다. 양재도서관 3층 계단 입구에 있는 커다란 사진, 그간 이 앞을 오가면서도 시선이 따라가기 힘든 아래쪽에 설명 패널이 부착되어 별생각 없이 그냥 지나치곤 했는데 눈높이를 한참 낮추어 읽어보니 아래와 같은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그런데 괴테는 백수는 아니었네요.


제목 :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2019)

작가 : 임영균 www.limyoungkyun.org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작가인 독일 대문호 요한 볼프강 괴테가 1797년부터 1832년 행복한 여생을 마칠 때까지 35년간 도서관장으로 재직한 곳이다. 괴테는 26세에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초청으로 이곳에 와서 '파우스트',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등의 인류문화유산을 저작했으며, 남부의 변방인 이곳 바이마르를 독일 고전주의의 본산으로 만들었다. - 임하준 가족 기증(양재동 주민)


※ 위의 글은 뉴스버스 2021. 08. 14. 09:03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www.newsverse.kr/news/articleView.html?idxno=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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