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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Nov 28. 2021

프렌치 미투(French Metoo)-<하>

각 나라마다 오랜 시간을 거치며 면면히 흘러 내려온 고유의 역사와 문화가 있기에 우리는 어떤 나라 국민은 어떻다는 추론이나 단정을 하곤 합니다. 그들 국민의 DNA에 알게 모르게 다르되 공통적인 그것들이 유전적으로 녹아있다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고서야 근본적으로 인간의 본능과 욕망은 다 같은데 국가마다 국민성이라고 불리는 동질적인 요소들이 다 다를 리가 없습니다. 같은 인간의 본성에 다른 자연환경, 정치, 종교, 관습, 교육, 법규 등이 더해지며 특정 국가나 민족의 공통성이나 동질성이 규정되는 것이겠지요. 저는 역사학도도 아니고 사회학도도 아니지만 위와 같은 다름을 보이는 프랑스인들의 특이성은 1789년에 시작된 프랑스혁명에서부터 비롯됐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 혁명기에 제정된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삼색기

프랑스 국기입니다. 혁명이 터지자마자 등장한 이 삼색기는 이듬해인 1790년 프랑스의 국기로 제정됩니다. 삼색의 파랑은 자유, 하양은 평등, 빨강은 박애를 상징합니다. 이 기는 왕정이 이어지며 사라졌다가 1830년 7월혁명때 다시 출현해 1848년 2월혁명 시 공화제가 들어서며 오늘날과 같이 완전하게 프랑스를 상징하는 국기가 되었습니다. 패션을 선도하는 프랑스답게 이탈리아와 아일랜드를 비롯한 과거 프랑스 식민지 국가들이 삼색기를 모방하여 월드컵이나 올림픽을 볼 때면 유사품이 넘쳐나 혼란스럽지만 오리지널인 프랑스 국기의 컬러와 상징 키워드만은 대부분 정확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태극기의 빨강, 파랑 태극과 건이감곤의 검은 4괘의 의미는 잘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말입니다. 프랑스 국기 마케팅의 승리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자유, 평등, 박애를 달달 외우며 딱 떨어지는 좋은 말을 다 갖다 썼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성장해서 이 단어들의 의미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자리에 함께 놓여있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자유는 보수의 가치이고 평등은 진보의 가치인데 그들은 230여 년 전부터 함께 가자고 국가의 모토로 설정해 국기에 담은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보수와 진보의 편가르기 갈등에서 보듯 자유와 평등 이 두 가치가 함께하기란 참으로 힘들어 보입니다. 그리고 서로 반대 진영의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조차도 인색하게 굽니다. 당시 프랑스인들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유와 평등이 함께 가게 하기 위해 한 가지를 더 추가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박애가 세 번째로 등장하고 자유와 평등을 상징하는 파란색과 하얀색 다음에 러브 마크와 같은 빨간색 박애를 넣어 삼색기가 완성되었습니다. 양립하기 힘든 자유와 평등을 박애로 포용하자는 것이겠죠. We are the world, 모두 다 사랑하리입니다. 사실 이 박애라는 표현은 번역상 사랑보다는 연대(solidarity)와 형제애(brotherhood)에 더 가깝습니다. 자유도 평등도 하나다라는 것이지요.


혁명기에 다양한 목소리가 분출하는 가운데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페미니즘도 출현합니다. 프랑스혁명에 여성 혁명까지 올리고자 했던 페미니스트의 선구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바로 그녀입니다. 영국인인 그녀는 프랑스에서 혁명이 터지자 희망을 안고 바다를 건넙니다. 영국에서는 이룰 수 없는 그녀의 이상을 혁명의 불길이 치솟는 프랑스에서는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겠죠. 그녀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에서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고 주장하였습니다. '여성의 권리 옹호'는 페미니즘을 주창한 그녀의 대표작입니다.


하지만 공적 영역인 정치 참여와 사회 진출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해지는 것은 급진적인 혁명기라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혁명 안에 여성을 위한 요소는 거의 없었으니까요. 그래서인가 사적 영역인 결혼과 가정에서의 그녀의 주장은 더욱 선명해집니다. 전통적인 결혼은 합법적인 매춘이다라고 주장하며 기존의 성 관념에 도전한 것입니다. 여성이 남성 욕정의 대상인 감각적 존재에서 벗어나 독립적 존재가 되어야 한다라고 그녀는 주장했습니다. 즉 자유, 평등의 혁명 정신이 여성의 결혼, 가족, 일에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고. 처음 읽는 정치철학사, 그레임 개러드 / 제임스 버나드 머피 지음, 다산북스)   


프랑스혁명에 뛰어든 페미니즘의 선구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1759~1797)

혁명기를 배경으로 빅토르 위고의 대표작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은 고작 빵 하나를 훔치고도 그것으로 인해 19년 동안 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7명의 굶주리는 조카들을 위해 저지른 경미한 범죄가 그렇게 큰 형벌로 바뀐 것입니다. 탈옥도 남겨진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서 저지른 일이었습니다. 이것에 관용은 없었습니다. 법대로 한 것이지요. 그러나 그가 출감 후 만난 미리엘 신부는 은접시를 훔쳐간 장발장에게 그의 절도를 부인하고 오히려 은촛대를 두고 갔다며 그것까지 쥐어 보내줬습니다.


이것은 관용입니다. 전과자인 그의 상황을 알기에 그것을 포용하고 너그러움을 베푼 것이지요. 이러한 미리엘 신부 덕에 장발장은 참회하고 많은 돈을 벌어 다른 사람을 도우며 사는 사람이 됩니다. 관용의 힘이 발휘된 것입니다. 이러한 관용은 똘레랑스(tolerance)로 불리며 오늘날 프랑스를 규정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레미제라블의 대표 이미지, 빅토르 위고(1802~1885), 1862

자유, 평등, 박애, 페미니즘, 똘레랑스.. 가치는 현상에 투영되곤 합니다. 위에서 열거한 프랑스 여배우들의 거침없는 미투 운동 반대 성명이나 대통령까지도 개의치 않고 누리는 자유분방한 사생활,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흔들리지 않는 시선엔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인간은 누구든지 본성에 기초한 개인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여기에 타인이 가타부타 개입할 이유도, 따질 권리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생활은 사적 영역의 자유이니 개인 사유지처럼 외부인이 들어가선 안 된다는 것이지요. 거기엔 그만한 이유들이 있다는 것도 인정하는 것일 겁니다. 물론 위법성은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어떤 이슈성 높은 사안이 발생했을 때 그 정오와 시비를 냉정하고 신중하게 가려야 혹여 생길지도 모를 개인이나 소수의 손해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설사 잘못이 드러나더라도 때론 똘레랑스를 베푸는 것이 개인은 물론 사회 총량적으로 봤을 때 이익이라면 그쪽을 선택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저는 프랑스가 지구상에서 가장 진보적인 국가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꼭 좋거나 옳다는 것을 떠나서 말입니다.


2019년 LPGA 에비앙클래식 우승 세레모니

위 사진은 2019년 프랑스에서 열렸던 LPGA 대회인 에비앙 클래식의 우승자인 한국의 고진영 선수입니다. 우승을 축하하는 세레모니 중의 하나로 두 남자에게 동시에 볼 키스 세례를 받고 있습니다. 이 남자들은 협회나 스폰서 등의 대회 관계자들일 것입니다. 이 키스를 고진영 우승자는 허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적어도 21세기엔 볼 수 없는 장면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같은 서구 사회인 미국이나 영국에서도 이런 장면은 보기 힘듭니다.


하지만 저 키스는 프랑스에선 비쥬(bisou)라 불리는 남녀 간에 애정을 표현하는 일상의 인사법입니다. 카메라 앞이라선가 이벤트성으로 즉흥적인 쇼를 연출한 듯싶습니다. 역사와 사회문화적 관점을 떠나 이만큼 남녀의 일상적 신체 접촉의 출발점이 한참 앞에 있는 프랑스이기에 그 나라에선 미투의 영역도 우리보다는 한정되고 좁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 윗 글은 뉴스버스 2021 1128 1249에도 게재되었습니다.


https://www.newsverse.kr/news/articleView.html?idxno=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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