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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캣 Feb 02. 2019

그 날 아침의 조용한 소멸

for Rosan Mithar

로잔 할머니가 먹고 마시기를 거부한 지 두 주가 지났다. 보통은 환자가 그런 상태가 되면 우린 가족에게 연락을 한다. 때때로 그 거부의 의사가 가족들을 향한 항변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발 날 좀 찾아오란 말이야. 보고 싶다고. 노인들은 그렇게라도 해서 자식들을, 손자들을 만나길 원하고 그 방법은 썩 효과가 좋아 그동안 무심했던 가족들도 부랴부랴 꽃이며 사진, 먹을 것들을 들고 찾아온다. 하지만 로잔 할머니를 찾아오는 이는 없었다. 혈액과 골수에 종양이 있어 극심한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외로운 할머니를 걱정하는 건 우리뿐이었다. 


"가족들은 아직이야?"

"아들한테 연락했는데 멕시코 여행 가서 한 달이나 있어야 돌아온데."

"다른 가족은, 없어?"

"손자들이 있긴 한데 전화번호가 바뀌었데. 하긴, 저 할머니 지금 아들 손자 얼굴 보자고 저러는 건 아니니까." 


우린 알고 있었다. 할머니의 음식 거부는 가족들을 향한 외침이 아니라는 걸. 그건 말 그대로 죽음을 앞당기기 위한 본인의 선택이라는 걸, 옆에서 늘 지켜보는 우리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움직이기조차 힘든 할머니의 몸은 무엇을 거부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간호사는 할머니에게 하루 다섯 번 고영양 액체 음료를 마시도록 했고 할머니를 돌보는 스텝들은 굳게 앙다물어진 할머니의 고집스러운 입술 사이에 빨대를 끼워 억지로 음료를 마시게 했고, 생명유지에 꼭 필요한 영양소를 농축한 그 음료만으로도 할머니의 몸은 신진대사를 이어갔다. 마시고, 자고, 배변하고, 다시 마시고, 자고... 


"제발 날 죽게 내버려 둬. 제발..."


언제부턴가 로잔 할머니의 눈과 떨리는 손끝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난 그 간절한 요청을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 잘 드셔야 해요. 그래야 힘내서 다시 식사도 하시고, 가족들도 만나죠."


내 말에 할머니는 고개를 힘없이 가로저으며 차가운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90도로 꺾인 채 더 이상 올라오지 않는 할머니의 목덜미는 잿빛으로 변해있었고 더 이상 피가 흐르지 않는 듯 보이는 혈관은 말라붙은 풀줄기처럼 검푸른 색을 띤 채 희미하게 피부 아래에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로잔 할머니 상태 체크 꼼꼼히 부착해."


두꺼운 솜이불을 살며시 들추자 잔뜩 웅크린 채 오들오들 떨고 있는 할머니의 작은 몸뚱이가 드러났다. 한쪽으로 꺾인 목과 오그라든 손과 발, 검은 피부. 난 따뜻한 물수건을 만들어 할머니의 얼굴과 차가운 손과 발을 닦았다. 할머니의 구부러진 목은 좀처럼 펴지질 않아서 이를 케어가 쉽지가 않았지만 난 꼼꼼히 구석구석까지 닦았다. 모닝 리포트 때 담당 간호사인 아만다가 내게 한 말 때문만은 아니었다. 할머니의 몸은 유난히 차가웠고 난 조금이라도 할머니를 따뜻하게 해드리고 싶었다.  


"할머니. 이젠 패드 갈 거니까 저쪽으로 잠시만 돌아 누우셔야 해요."

"...."


숨 쉴 기운조차 없어 보였지만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할머니는 침대의 사이드 레일을 붙잡았다. 할머니의 패드엔 피가 흥건했다. 검은색의 피. 이미 상당히 진행된 허리 아래 욕창의 괴사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걸까? 하지만 그 피는 상처가 아닌 할머니의 몸 안에서 나온 것이었다. 차가운 예감이 내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난 아무 내색도 않고 할머니의 아침 단장을 마쳤다. 얼마 남지 않은 은색의 기 머리를 빗기고,  환자용 가운을 벗기고는 할머니가 좋아하는 붉은색 드레스를 입혀 드렸다. 부드러운 털실 양말도 신기고, 그리고 따뜻한 스웨터를 걸친 다음 휠체어를 밀고 아래층으로 갔다. 


"한나 언니, 할머니 음료 좀 마시게 도와주세요."

"걱정 마. 조금이라도 드시도록 할게."


난 할머니를 1층 담당 한나 언니에게 맡기고 2층으로 올라와 할머니의 방을 말끔하게 정리했다. 저녁에 입을 옷과 깨끗한 타월, 그리고 침대엔 주름 하나 없이 깨끗한 새 시트를 깔았다. 환기가 되도록 창문을 연 다음 커튼은 걷어 햇볕이 잘 들어오도록 했다.  아침식사 시간이 끝나면 할머니를 방으로 모시고 와야 하니, 조금이라도 밝고 따뜻한 기운을 방 안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였다. 


아침식사 시간이 끝나고 난 아래층으로 내랴갔다. 대형 텔레비전이 있는 리빙룸 휠체어에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는 할머니가 보였다. 아만다가 체온계와 혈압계를 들고 환자들을 돌면서 체크를 하고 있었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자는 헨리 할아버지 옆에서 그나마 걸을 수 있는 챙 할아버지가 워커에 의지해 일어서려 애쓰는 게 보였다. 치매 3기인 사만다 할머니는 허공을 보며 누군가와 얘기를 하고 있었고, 배에 커다란 대변 주머니를 매단 릴리안 할머니는 커다랗고 낡은 여행 가방을 손에 들고 집으로 가야 한다며 리셉션니스트인 안나와 입씨름 중이었다. 


모든 게 익숙한 여느 아침의 풍경 그대로였다. 밖이 내다보이는 전면 창으로는 환한 겨울 햇살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수십 명 노인들의 얼굴과 몸에 내려앉아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아침 뉴스가 방송 중이었고, 점심 준비를 시작한 주방 쪽에선 프라이드 휘시 냄새가 흘러나왔다. 


배가 고팠다. 2층으로 로잔 할머니를 옮겨다 드리면 아침 겸 점심을 먹는 30분 브레이크를 가질 수 있었다. 난 서둘러 할머니를 향해 걸어갔다. 아만다는 어느새 로잔 할머니 옆에서 체온과 혈압을 재고 있었다. 아만다가 할 일을 마치면 난 할머니를 2층으로 옮기고 휴게실로 갈 수가 있었다. 어깨도 뻐근했고 피곤함도 몰려왔다. 전쟁 같은 아침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간식으로 싸온 시나몬 롤에 바닐라 커피를 내려 먹어야지. 아, 과일을 안 챙겨 왔다는 게 생각났다. 최근 들어 자꾸 뭘 까먹더니, 이젠 먹는 것도 제대로 안 챙긴다.  


"소피."


갑자가 아만다가 낮고 작은 목소리로 화급히 나를 불렀다.  


"응? 왜?"

"이리 와봐. 빨리."

"?"


아만다가 눈짓으로 로잔 할머니를 쳐다보곤 나를 향해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난 황급히 할머니의 목동맥에 손을 짚어 보았다. 움직임이 없었다. 코에 댄 손가락에도 호흡의 징후가 보이지 않았다. 


"가신 거지?"

"... 그런 것 같아."

"어떻게 해? 어떻게 하지?"

"일단 2층으로 옮기자."


조용한 아침 휴식을 즐기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난 아무 일 없다는 듯, 할머니의 휠체어를 끌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리곤 할머니의 방으로 들어가 신속히 할머니를 실링 리프트로 옮겨 침대에 눕혔다. 그 사이 아만다는 수간호사인 데려왔고 킴은 차분하게 할머니를 체크했다. 


"로잔 미타스. 사망시간 09시 15분."

"..."

"아만다는 장례팀에 연락하고 소피는 뒷정리 부탁해요."

"네."


킴과 아만다가 방을 나가자 그곳엔 할머니와 나만 남았다. 난 할머니의 옷을 벗기고 다시 환자용 가운으로 갈아입혔다. 할머니의 몸은 차가웠고, 여전히 목은 구부러진 채였다. 


"할머니, 잠깐만요."


난 두 손으로 할머니의 머리를 잡아 천천히 곧게 폈다. 아침 케어를 할 때만 해도 뻣뻣하던 할머니의 목이 스르르 펴지더니 제 자리를 찾았다. 


"됐어요. 이젠 편안히 누우실 수  있겠네요."


할머니의 몸에선 여전히 검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속도와 양은 현저히 줄어들어 있었다. 난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피를 한 번 더 닦아낸 다음 깨끗한 패드를 입혔다. 그리고 얇은 시트로 할머니를 덮었다. 더 이상 두꺼운 솜이불은 필요 없었다. 할머니는 더 이상 떨고 있지 않았고 고통으로 인해 앙다물었던 입은 편안하게 다물어 있었다. 난 마지막으로 손을 뻗어 가만히 할머니의 이마를 만졌다. 차갑고 매끄러웠다. 하지만 고통이나 괴로움, 외로움 따윈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었다는 듯 편안한 차가움이었다. 


방을 나오려는데, 갑자기 사람이 죽으면 얼마 간은 들을 수도, 느낄 수도 있다는 말이 기억났다. 난 천천히 다시 돌아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창문으로 들어온 아침햇살이 할머니의 얼굴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그 얼굴이 어찌나 편안해 보이던지 난 잠시 할머니가 웃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이젠 아프지 마세요. 외로워하지도 마세요.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으니까 이젠 좀 푹 쉬세요. 따뜻한 곳에서." 




결국 할머니를 찾은 건 장례 담당 회사 직원이었다. 아들은 가족 동의 없이 장례를 치르라고 했고 손자들은 마지막까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우리는 할머니의 사진을 거실 입구에 세워두고 할머니의 죽음 모둥게 알렸다. 다음 날, 누군가가 꽃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보내왔지만 그게 누군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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