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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캣 Nov 25. 2018

그 날, 그의 손은 따뜻했다

for Wayne Sterling

   그 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겨울이구나 싶었다. 


밴쿠버의 겨울은 비로 시작해 비로 끝난다. 봄 여름에도 가끔 비는 내리지만 겨울비는 확연히 다르다. 봄여름 비가 부슬부슬 살포시 내려앉는 비라면 겨울비는 주룩주룩 소리가 나도록 줄기가 굵은 데다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그치지 않고 쏟아져 내린다. 정도와 강도를 합쳐 10점 만점 점수를 매긴다면 봄여름 비는 1이나 2, 하지만 겨울 비는 단연코 9 아니면 10이다. 그리고 만점 가까운 그 점수엔 몇 달이고 계속되는 징그러운 지속성이 한몫한다. 차갑고 습한 날씨는 아이들의 볼을 빨갏게 물들이고 노인들은 고질병인 관절통이 심해져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비를 고스란히 맞고 다닌다. 우산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기껏해야 후드 점퍼를 입거나 챙 넓은 모자를 쓰는 정도다. 마치 이 땅에 사는 이상 그 비는 받아들여야 할 숙명인 듯 그런 담담함이 이곳 사람들의 겨울비를 대하는 자세다. 

   

오전 일곱 시, 빗줄기는 거셌고 난 초록색 겨울 점퍼를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우산을 쓸까 했지만 어차피 차로 이동할 거고 거기다 노인네 마냥 구는 것 같아 그만뒀다. 내가 가야 할 곳은 ‘Cottage’라는 따뜻한 이름의 호스피스 케어 시설이었고 난 그곳에서 노인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날은 그곳에서 내가 일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비록 코타지는 우리 집에서 1시간이나 걸리는 밴쿠버 북쪽 해안에 있지만 동화에 나오는 그림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모두 친절하고 특히 스테프들은 공짜로 먹을 수 있는 그곳 음식이 맘에 들어 난 굳이 그곳을 1년이나 다녔었다. 하지만 결국 시간과 체력을 절약하기 위해 집 근처 시설로 옮기게 된 것이다. 


"신발이랑 양말도 좀 사야 하고. 아, 머리 자를 때도 됐는데. 오늘 다 할 수 있을까?"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곳으로 옮기는 건 복잡한 감정을 동반하는 과정이다. 그동안 내 모든 것이었던 양 꽉꽉 채워왔던 마음속 방 하나를 순식간에 말끔히 비워내야 하니 허전하고 동시에 새로 받은 방을 채워나갈 기대감과 걱정으로 분주하기도 하다. 머릿속도 복잡한데, 비 때문인지, 코타지로 향하는 나이트 스트리트까지 막혀 안 그래도 뒤숭숭한 기분이 더욱 언짢아졌다. 그곳에서 일을 시작할 무렵, 케어 리더인 비비안이 “너 정말 여기까지 올 수 있겠어? 너무 먼데... 일단, 해 봐”라며 못 미더운 듯 말했던 게 생각났다. 꼭 그 말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난 그동안 늦지 않으려고 각별히 노력했고 결국 무지각 기록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마지막 날, 까딱하단 애써 쌓아 올린 기록을 무너뜨릴 위기에 처한 것이었다. 그럴 순 없다. 난 언제나 정확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살아왔는데, 마지막 날 무너질 순 없지. 그럴 줄 알았다며 이죽거리는 비비안의 얼굴을 마지막 날 보고 싶진 않았다. 

'가까운 곳으로 옮기길 잘했어. 자, 오늘만 잘 달려보자.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가는 거야?'

차선을 이리저리 바꾸고, 오렌지색 불일 때는 더 가속페달을 밟아 지뢰밭을 통과하는 탱크처럼 차를 몰았다. 덕분에 코타지가 보이는 언덕 위에 차를 세웠을 땐 8시 27분. 환자들의 아침은 8시 30분부터 시작되므로 아슬아슬했다. 난 서둘러 비를 맞으며 뛰어 들어갔다.  

    

"하이 유카!"

"왔어?"   

"응, 겨우 도착했네. 와~ 냄새 좋은데? 오늘 메뉴는 뭐야?"

"생선."  


유카는 그렇게 딱 한 단어로 끊고는 총총 사라졌다. 살짝 늦어 미안한 마음에 너스레를 떤 것도 있는데, 민망했지만 그건 늦은 내 잘못이지 그 바쁜 시간에 내 말에 길고 다정하게 대답하지 않은 그녀 탓은 아니니까. 


"우와~ 생선! 콜린! 소스는 뭐예요? 빵은? 후식은 뭔데?"

"후후! 그게 뭐든 소피가 좋아하는 거!"


콜린은 경력 30년 차인 베테랑 요리사였다. 코타지에서 일하기 전에는 노숙자 여성들을 위한 무료 쉼터에서 일했다는데, 배고프고 영양결핍에 시달리는 가엾은 여자들을 위해 냉동 푸드와 캔 대신 신선한 재료로 뭐든 직접 만들어 먹이기 시작했고 그 노력과 실력을 인정받아 이곳으로 스카우트돼 온 중년의 여자였다. 손 빠르고, 잘 웃는 콜린은 코타지의 아이콘적 인물이었고 유카와는 상반되는 그녀의 캐릭터는 환자들과 환자 가족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 귀찮을 텐데도 내 말에 유쾌하게 맞장구를 치는 그녀를 보자 내 마음도 편안해졌다. 

'오케이! 오늘은 마지막 날! 신나게 일하고 깔끔하게 굿바이 하는 거야!'

총 10개의 병실이 있는 코타지는 백 년도 더 된 낡은 거물인데, 보수유지가 잘 돼 아직까지도 반들반들했다. 예전엔 고아원이었다는데, 식품 저장고와 스테프를 위한 락커룸이 있는 지하실에선 종종 귀신들이 나온다고도 했다. 그럴 만도 하지.라고 난 늘 생각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노인들이 떠나가는 곳이 아닌가. 그들 중 누군가는 죽지 않기 위해 마지막 생의 한 자락을 붙잡고 처절하게 전투를 벌이가 떠나갔겠지. 미련이 많은 영혼들은 훨훨 날아가지 못한다고 들었다. 난 슬쩍 어두침침한 조명등이 켜 있는 지하실 계단을 쳐다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뭐라도 있었다 한들 콜린이 만들어내는 생기 가득한 요리가 쫓아내 줄 것이었다.  


옷을 갈아 입고 올라오니 유카는 이미 6번 방을 체크하고 있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손을 소독한 후 환자들을 체크하는 것이다. 밤 사이에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경우가 많아 가끔은 어제까지 밥 잘 먹고 멀쩡했던 노인이 아침에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되는 일도 있었다. 혹은 밤새 잠을 못 잔 노인들은 얼굴과 온몸 가득 독기를 품은 채 죽일 듯이 우리를 기다리곤 했다. 그들에게 우리는 물리쳐 이겨야 할 적군이거나 혹은 자신을 향해 덤벼드는 무장강도로 보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침시간 그곳에는 늘 묘한 긴장감이 맴돌곤 했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있으려나?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우린 감당해 내야 했고 난 그래서 그 일이 좋았다. 노인들과 간호사 사이에 흐르는 팽팽한 기싸움이랄까. 결국은 우리의 승리로 끝날 수밖에 없는 일방적인 싸움일지라도 그들은 그 싸움에 언제나 최선을 다했고 우린 묵묵히 그들을 받아냈다. 노인들은 절대 우리를 이길 수 없었다. 늙고 병든 그들이 가진 건 생에 대한 집착과 한 줌도 안 되는 가느다란 에너지. 이성도, 논리도, 심지어 기억마저도 사라진 그들의 뇌엔 오로지 살아야겠다는 마지막 본능만이 남아 자신만의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이제는 아무것도 할 일 없는 자신들이 해내야 할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임무인 양 말이다. 


사이보그. 모두들 그녀를 그렇게 불렀다. 남 일본 나가사끼 출신인 유카는 캐나다로 오기 전 응급실 간호사였다. 수많은 죽음과 터지고 잘려나간 육체, 바닥이 흥건하도록 피와 온갖 분비물로 범벅이 된 응급실에서 그녀는 보지 않아도 될 것들까지 모두 보았노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일을 왜 또 하는 건데? 내가 물었을 때 그녀의 대답은 간단했다.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 그게 그녀의 답이었다. 난 굳이 더 이상 묻지 않았었다. 그 누군가가 왜 하필 너냐고. 무슨 이유가 있겠지. 

어떤 상황에서든 착착 순서대로 일을 처리하는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잘 프로그래밍된 로봇을 보는 느낌이 든다고 다들 입을 모아 말했고 그래서 유카는 사이보그가 됐다. 심지어 감정이 메말랐다는 둥, 오래 일을 하다 보니 일하는 기계가 됐다는 둥 말과 평이 난무했지만 정작 유카는 묵묵히 자기 일을 할 뿐이었다. 덕분에 일처리 솜씨도 좋고 한눈에 환자들 상태를 파악하는 눈썰미까지 있어 난 유카와 일하는 걸 좋아했다. 모든 일에 감성이 먼저고 눈물부터 쏟고 마는 나와는 달리 유카는 어떤 상황에서도 눈썹 하나 흔들리지 않는 지독히도 '이성적'인 성격이라 이 일을 하기엔 제격이었다. 난 손을 씻으며 내 대신 아침 체크를 마친 유카에게 물었다.      


“미안해. 비 너무 많이 오는 거 있지? 차가 많이 막히더라고. 뭐 특별한 거 없어?”

“없어. 아무도 안 일어났어.”    

 

비 때문이겠지. 나이를 먹어 몸에 이상이 오면 나타나는 두드러진 증상 중에 ‘Sun Downing’이라는 것이 있다. 해가 지면 증상이 심해져 환각이나 이명으로 발작을 일으키거나 불안과 공포, 고립감으로 인해 공격적 성향을 보이는 건데. 이 증상은 비가 줄기차게 내리는 밴쿠버 겨울에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Rain Downing’은 몸과 마음을 무기력하게 만들지만 역설적이게도 노인들을 돌보는 우리 같은 간호사들에게는 나쁘지만은 않다. 그 예가 바로 그날 아침 같은 경우였다. 평소라면 다들 일어나 있을 시간인데.      


“자! 숙녀분들! 누구부터 시작해야 해?”     


주방에서 콜린이 고개를 삐죽 내밀고 소리치며 물었다. 일어난 사람 순서대로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까닭이었다.  

    

“2번, 4번 먼저 부탁해요. 그다음 5번, 6번.”  

   

유카의 말에 콜린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흔들고는 주방 안으로 다시 사라졌다. 

     

“1번은?”

“안 먹는데.”

“여전히 거부?”

“응.”     


우리는 환자들의 이름을 가능한 사용하지 않는다. 환자의 증상과 선호도에 맞춰 모든 케어를 달리해야 하는 까닭에 자칫 이름을 사용했다가 서로 싸인이 안 맞을 경우 생길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특히나 호스피스 케어에서의 식사는 환자 개개인마다 모두 다른 건 물론, 혹시라도 뒤바뀔 경우 곧바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중요한 변수라 각별히 주의를 해야 했다. 영양사와 요리사들은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환자의 상태에 맞춰 조리법을 조절하고 거기에 그들이 원하는 메뉴를 매칭해서 준비하느라 분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중엔 그렇게도 열심히 준비한 식사를 손도 대지 않고 내보내는 환자들이 있었고 그 경우 우리는 그들에게 더욱 집중해서 케어해야만 했다.    

     

“며칠 째야?”

“삼일. 오늘은 물도 거부.”

“물도? 그럼 안되잖아?”

“나 7번부터 체크 좀 할 테니까 자기가 2번, 4번 아침 좀 챙겨 줘.”     


유카는 내 말엔 대답도 않은 채 다시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주방에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오트밀 수프와 잘 구운 토스트, 그리고 딸기와 키위를 잘게 썬 과일 샐러드까지. 콜린이 준비한 아침밥이 번호가 매겨진 트레이에 차곡차곡 올라오고 있었다. 2번 트레이를 집어 드는데 아무것도 없는 텅 빈 1번 트레이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 3일 째라니.      


“앤, 아침이에요. 토스트에 딸기 잼 바를 건데 괜찮아요?” 

    

2번 방에 들어가 트레이를 내려놓자 실내에서도 늘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앤 할머니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말했다.      


“뭐라고? 잘 못 들었는데 다시 한번 말해줄래?”

“딸기잼 토스트, 괜찮아요?”

“뭐? 미안해. 내가 보청기를 어디 둔지 몰라서. 안 들려. 그런데 넌 누구니?”

“난 소피예요. 앤, 딸기 잼이 좋아요? 아님 땅콩잼?”

“그래 소피, 잼을 고르기 전에 잠깐, 여기가 어딘지 말해줄래? 그런데, 넌 누구지?” 

    

앤 할머니는 몇 분 간격으로 기억이 리셋되는 치매 말기 환자였다. 거기에 대장암과 심각한 골관절염까지 앓고 있지만 여전히 품위를 잃지 않고 있는 노부인이었다. 난 부드러운 크림색 퍼 모포를 치우고 할머니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앤, 여긴 당신 집이에요. 그리고 난 소피예요.”

“그래, 소피. 종이에 네 이름을 적어줄 수 있겠니? 내가 자꾸만 잊어버린다.” 

    

할머니가 선글라스를 쓰는 이유는 두려움으로 가득한 눈을 가리고 싶어서는 아닐까. 노화로 인해 몸이 뒤틀리고 암이 생기는 것 이상으로 그들을 힘들게 하는 건 ‘잊어버리는 것’이다. 사랑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행복했던 순간들을, 그리고 결국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리는 병, 치매. 떨리는 손으로 토스트를 집어 드는 앤 할머니의 테이블에 내 이름이 적힌 종이를 놓고 나는 조용히 그 방을 나왔다.  

    

“소피, 1번 방 모닝케어 들어갈 건데. 시간 돼?”

“응.”     


모닝케어는 아침식사를 마친 환자들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상태를 체크하는 모든 과정을 말한다. 그렇다면? 1번 방 환자는 결국 아무것도 먹지 않은 거구나.      


“굿모닝! 웨인.”

“굿모닝.”     


문을 열자 서늘한 바람이 훅 불어 나왔다. 노인 환자들을 위한 넉넉한 난방과 이침 일찍부터 시작된 조리로 코타지 안은 늘 훈훈함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하지만 1번 방은 늘 서늘했다. 난방조차도 거부하는 건가? 하얀 시트로 하체를 가린 채 어깨가 드러난 푸른색 환자용 가운을 입은 창백한 얼굴을 한 그가 앉아 우리를 반겼다. 토르소. 난 그를 볼 때마다 늘 상반신만 있는 토르소 같다고 느꼈었다. 심각한 전립선 종양이 뼛속 깊은 곳까지 전이돼 하반신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그는 늘 침대에 앉아 있었다. 거기에 척수까지 번진 암세포로 그의 아래쪽 육체는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반면, 그의 상체는 멀쩡했다.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깔끔한 얼굴에 짧게 깎은 머리는 늘 단정했고 피부 상태도 좋았다. 두 손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서 음식을 먹을 때나 책을 읽고 싶거나 텔레비전 리모컨을 누를 때도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았다. 마치, 그는 태어날 때부터 하반신이 없이, 상체만 가지고 있었던 듯 상체만으로 생활하는 데 능숙했고 심지어 전혀 불편해 보이지도 않았다. 답답한 건 싫다,며 우리를 볼 때마다 창문을 열어달라는 부탁 외엔 그는 철저히 독립적인, 그곳에선 보기 드문 환자였다. 선 다우닝도, 레인 다우닝도 없는 그가 원하는 건 오직 하나, 바람이 잘 통하는 방. 그것뿐이었다. 


그날도 역시 서늘한 기운이 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가 있는 1번 방은 복도 맨 끝에 있어 다르 방에 비해 창문이 더 많았다. 그래서 보통은 한쪽 창문만 열어두곤 했었는데, 그날은 다른 날과는 달리 모든 창문이 열려 있었다. 무슨 일이지? 간호사들에게 늘 친절한 그의 방문을 열고 그에게 다가가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자 심지어 나에겐 작은 기쁨이었는지라, 난 냉큼 그의 곁으로 다가가 그를 살폈다. 수염이 듬성듬성 나 있는 그의 볼엔 찬 기운으로 인한 자잘한 소름이 돋아 있었다. 

'유카는 왜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한 거지? 이 남자 수염도 깎아야 하고, 무엇보다 뭐 좀 먹여야 하는 거 아냐? 억지로라도?'

유카에게 단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건 너무 기계적이라는 거? 난 내심 그런 그녀를 질타하듯 흘깃 쳐다보고는 웨인에게 물었다. 

    

“안 추워요? 창문 일부러 열어 놓은 거예요?”  

“바람을 좀 쐬고 싶어서요.”  

 

내가 그와 대화하는 사이, 유카는 타월이며 깨끗한 옷, 클렌저와 페리 와이퍼 등을 가지러 욕실로 들어갔다. 2인 1조로 일하는 경우 한 사람이 도구를 챙기는 사이, 다른 사람은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는 데 우리의 룰이다. 난 유카가 욕실로 사라지자 그의 귀에 바싹 다가가 다정하게 물었다. 


“그래도 감기 걸릴 텐데. 아침은 안 먹어도 돼요?”

“네.”  

"주스라도 한 잔 가지고 올까요? 뭐라도 좀 마셔야죠."

"괜찮습니다."

   

웨인은 창 밖 너머 어딘가를 바라보며 조용히 대답했다. 간결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간곡함이 담긴 목소리였다. 늘 환자의 가족과 친구들로 붐비는 그곳에서 그의 방은 유일하게 조용한 곳이었다. 가족이라곤 남동생 하나뿐이라는 그를 찾아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비가 와서 우울한 건 아닐까. 난 뭐라도 그와 얘기를 나누고 싶어 그의 시선을 따라 방 밖을 보았지만 그곳엔 온통 회색빛 비 내리는 하늘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뭘 보고 있는 거지?’

내가 다시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을 때 하늘을 닮은 그의 청회색 눈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미소도, 찡그림도 없는 그 눈은 담담하고 편안해 보였다. 며칠 전만 해도 외롭다고, 동생이 찾아오질 않는다고 나에게 말하던 그때의 그 외로운 눈이 아니었다. 간밤에 동생이 다녀갔나 보네. 난 나를 계속 쳐다보는 그를 향해 빙긋 웃은 뒤 스르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불편하기도 했고 밥도, 물도 거부하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뭔가 거리를 찾고 싶었다. 

그 방엔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옷장과 서랍장, 그리고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은 테이블. 심지어 바닥엔 실내용 슬리퍼조차 없었다. 가족들이 가져다 놓은 꽃과 사랑한다는 말이 적힌 카드, 그리고 쿠키와 초콜릿 등 온갖 것들로 가득 차 있는 다른 방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공허함만이 그곳에 있을 뿐이었다.  

    

"저기 비 내리는 거 보여요? 오늘 저 비 때문에 지각할 뻔했어요. 차가 너무 막혔거든요."

"..."

"오늘 콜린이 죽이는 브로콜리 수프 만들었는데, 좀 가지고 올까요? 뭐라도 먹고 힘을 내야죠."

“소피.”

“네 웨인.”     


어수선하게 이 말 저 말을 하는데 그가 내 이름을 조용히 불렀다. 그런 순간이 제일 불편했다. 상대는 분명히 나와의 대화를 불편해하는 데, 난 직업상 어쩔 수없이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불편한 예감에 난 그를 쳐다봤다. 모닝케어도 거부하고 싶은 건가? 그럼 어떻게 하지? 다행히도 그때 유카가 준비물을 챙겨 들고 방으로 들어와 테이블 세팅을 시작했다. 유카한테 말해야 하나? 잠시 멈추라고?  

   

“오늘이 마지막 날이죠?”     


하지만 그의 입에선 의외의 말이 나왔다. 다행이었다. 손 빠른 유카는 이미 1회용 장갑을 끼고 뜨거운 스팀 타월을 만들고 있었으니까. 혹시라도 환자가 모닝케어를 거부할 경우 난 유카가 모든 준비를 마치기 전에 그녀에게 알렸어야 했다. 그게 내 임무. 난 나지막이 안도하며 유카와 함께 그의 환자용 가운을 벗기기 시작했다.     

 

“웨인, 얼굴부터 닦을게요. 괜찮죠?”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을 감았다. 난 따뜻란 물수건으로 그의 감은 눈과 코, 그리고 입 주위를 부드럽게 닦기 시작했다. 나이를 먹어도 참 고운 얼굴이었다. 분명 점잖은 삶을 살아온 사람이리라. 참기 힘든 진통의 흔적이 남아 있는 터진 그의 입술을 닦고 있는데 그가 손을 내밀어 타월을 잡고는 다시 말했다. 아 맞다, 웨인은 자기가 직접 얼굴을 닦는데. 그만 깜빡했네.       


“오늘이 마지막 날, 맞죠?”

“네? 아, 맞아요. 어떻게 알았어요? 오늘이 마지막 근무라는 거.”    

 

나는 그의 손에 깨끗한 타월을 건네주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타월을 그대로 내게 건네주며 대답했다. 역시, 오늘은 아무 의욕도 없는 건가. 

   

“나도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순간, 말없이 기계적으로 그의 환부를 닦던 유카의 손이 멈췄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녀의 행동에 난 긴장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왜 저러지? 그리고 또, 나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건 무슨 말이야? 어디 다른 데로 옮기나? 난 유카와, 의미 모를 말을 하는 웨인을 번갈아보며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잠시 퍼즈모드였던 유카가 작업을 계속하며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이, 그 상황과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대답이었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당신한테 많이 배웠습니다.” 

    

유카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건조하고 담백했다. 일본 사람들은 다 저러나? 싶을 정도로 절도 있고 불필요한 장식이라곤 없는 그녀의 목소리가 텅 빈 그 방을 조용히 울렸고, 순간 내 마음 한 귀퉁이에 있던 작은 탑이 와르르 무너졌다. 오늘은 그의 마지막 날, 내일이 그 날인 것이다. 아, 젠장. 내일 죽을 사람한테 도대체 난 무슨 짓을 한 거야? 음식을 권하고 주스를 마시라고 너스레를 떨었으니, 나 호스피스 간호사 맞아? 

  

"..."

"..."

"..."


우리 셋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카와 난 욕창과 피멍, 고름과 온갖 튜브로 뒤덮인 그의 몸을 천천히, 그리고 꼼꼼하게 닦았다. 울컥 눈물이 솟구쳤다. 그의 몸에선 더 이상 피가 흐르지도, 분비물도 없었다. 그는 분명 저렇게 살아 있는데, 파랗고 맑은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데. 그의 몸은 이미 죽음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자발적 죽음. 난 그제야 왜 그가 3일 전부터 음식을 거부했는지, 그리고 오늘부터 물까지도 마시지 않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몸속을 비우고 있었던 거다. 우리 몸에 들어간 음식물은 소화가 이루어질 때까지 몸속에 마무르다가 결국은 배설물이 되어 배출된다. 그는 그게 싫었던 것이다. 죽은 몸 안에 담겨 있는 미처 배출되지 못한 삶의 찌꺼기들. 그래서 이다지도 방은 휑한 건가. 음식을 먹지 않은 그의 몸은 차가웠고 예전보다 더 딱딱했고 이미 치워진 그의 방과 완벽하게 어울렸다. 마치, 잘 마무리된 토르소 조각을 손질하듯 우리는 그의 몸을 닦은 다음 깨끗한 옷을 입히고 침대 시트와 침구 일체를 모두 교환했다. 


"고마워요."

"..."


마지막까지도 존엄을 잃지 않는 그의 말에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슬픔이 차 올라 고개를 푹 숙인 채 그곳을 나오는 내 귀에 유카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진통제가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괜찮습니다."

"내일 아침 9시입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약물의존에 의한 존엄사. 그것이 웨인이 택한 죽음이었다. 더 이상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 중 극히 일부만이 선택하는 죽음의 방식. 본인의 의지와 의사의 진단서, 그리고 지인 두 명의  입회하에 마무리되는 죽음 신청은 그로부터 1주일에서 열흘 이내, 신청자의 변심이 없는 한 실행된다. 그리고 내일 아침이면 전문 간호사가 나타날 것이고 그의 몸에 세 개의 주사약을 주입할 것이다. 스르르. 잠들 듯 죽는다고 했다. 아무 고통 없이, 드디어 온갖 육신의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이라 했다. 하지만. 하지만.         

   

난 1번 방 앞을 떠날 수가 없었다. 비 내리는 밴쿠버 항에는 관광객을 가득 실은 커다란 여객선이 오가고 있었고 바로 옆 버라드 뷰 공원에서는 젊은 여자가 진한 갈색 코코스파니엘을 산책시키고 있었다. 우산도 비옷도 입지 않아 비에 젖은 여자의 얼굴은 건강함으로 가득했고 검은색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그녀의 다리는 울퉁불퉁한 공원 언덕을 개와 함께 거뜬히 뛰어다닐 만큼 건장해 보였다. 그리고 난, 내일이면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다시 일을 시작할 테지. 오늘 비비안은 콜린에게 특별히 부탁해서 나를 위한 케이크를 굽도록 했다. 그동안 짓궂게 굴었던 게 미안한 건가. 아무렴 어때. 자기만족일 테지. 내일 아침이면 죽을 한 남자의 바로 앞에서도 난 여전히 내게 일어날 일들로 머릿속이 가득했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그렇게 그저 인생의 또 다른 하루인 오늘을 소비하고 있는 지금, 1번 방의 사나이는 조용히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삶이란 결국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외로운 여정이라지만. 그래서 난 더더욱 그렇게 그를 떠나보낼 수가 없었다. 그와 나, 우리 둘은 마지막 날을 보내고 있었고 그 마지막 날에 난 그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었다. 난 다시 1번 방의 문을 열었다. 2번 방의 콜벨이 울리고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앤 할머니보다는 웨인과 함께 있고 싶었다.    


“웨인.”

“소피.”     


여전히 날 환하게 맞아주는 그의 옆으로 가 잠시 그를 쳐다보았다.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과 표정으로. 그것이 우리 호스피스 간호사들이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대해야 하는 자세다. 난 울지 않으려고 일부러 더 환하게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웨인, 나 당신 안아도 돼요?”

“그럼요.”     


난 그를 꼭 껴안았다. 그도 나를 마주 안았다. 그의 팔에선 약하지만 여전히 힘이 느껴졌고 비록 그에게서 서늘한 죽음의 기운이 느껴진다 해도, 그는 여전히 따뜻했다.   

   

“웨인, 그거 알아요? 당신 진짜 멋진 사람이에요. 젠틀하고, 다정하고.”

“고마워요. 소피도 좋은 사람이에요. 그동안 잘 대해줘서 고마웠어요. 다른 곳에서도 소피는 사랑받을 거예요.”     

사람이 어쩌면 이렇게도 담담할 수 있지?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본 참수 직전의 미국인 포로의 얼굴이 떠올랐다. 죽음 직전, 그의 얼굴은 다 비워냄. 그것이었고 난 그가 현생한 부처는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날, 내 앞에 있는 웨인에게서 나는 또다시 그 포로의 얼굴을 보았다. 그렇다. 우린 모두 결국은 무언가의 칼에 의해 죽어야 할 운명들이다. 암이든, 사고든, 자살이든. 심지어 아무도 모른다.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인지.  

   

“잘 가요. 그리고 다시 만나요.”

“그래요. 꼭 다시 만나요.”

“어딘가에서.”

“언젠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그에게 죽는 거, 그거 별 거 아니야. 고달픈 육체의 감옥에서 벗어나면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어.라는 얄팍한 위로의 말을 해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순간,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나는 진심을 담아 그의 볼에 키스했다. 그의 메마른 입술이 내 볼에 닿자 까칠한 그의 수염이 느껴졌고, 난 면도를 잊어버렸다는 생각이 났다. 지금이라도 해줄까? 

‘아니야. 이 남자에겐 이 수염이 잘 어울려. 성자 같잖아.’

포옹을 끝낸 후에도 우린 꼭 잡은 손을 놓지 못했다. 아니 내가 그의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늘 차갑고 식은땀으로 축축했던 손이었다. 그 손으로 그는 자신의 죽음에 서명을 했을 것이다. 천천히, 하지만 망설임 없이. 

     

“웨인, 오늘은 손이 참 따뜻하네요.”

“당신 때문이에요.”

“...”     


뒤돌아 그곳을 나오는 데 그가 손짓을 하는 게 보였다. 아니 그랬던 것 같다. 나는 후다닥 뒤돌아 그를 쳐다보았고 그러자 그는 가만히 내게 손을 흔들었다. 어떤 리액션이 필요한가? 이럴 땐? 하지만 난 그저 그를 향해 손을 흔든 후 그곳을 나왔다. 아무 일 없이, 평소처럼, 곧 다시 만날 사이처럼. 난 감정이 차고 넘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유카처럼 한 다는 건 너무도 힘들었다. 하지만 결국 해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을 툭툭 털어내고 이 세상에서 마지막 하루를 편안하고 가볍게 보내고 있는 그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은, 아무렇지 않게 그를 보내주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집으로 오는 내내 잿빛 하늘엔 온통 그의 창백한 파란 눈이었다. 내가 보낸 오늘과 그가 보낸 하루는 얼마나 다른가. 누구에게나, 어느 상황에나 마지막은 있지만. 그의 마지막 날은 진짜 마지막이다. 끝. 마침표. 평생을 손에 꼭 쥐고 살았을 수많은 것들을 고스란히 내려놓은 채 텅 빈 손으로 보냈을 그의 하루. 그런데도 그는 내 손을 잡으며 맑게 웃었다. 어떻게 그렇게 담담할 수 있지? 난 그럴 수 있을까? 내 죽음을 내가 택하고, 그 앞에서 담담할 수 있을까? 평생을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에 둘러싸여 사는가. 사람들, 물건들, 걱정거리와 꿈, 좌절과 고통... 하지만 죽을 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모든 것을 비워낸 담담한 마음만이 필요할 뿐이다. 아무것도 없던 텅 빈 그의 방처럼, 간결하고 소박하게. 그저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시원한 바람 한 줄기뿐. 그렇게 바람이 되어 돌아가는 것일 테니. 


“웨인, 나도 당신처럼 용감할 수 있을까요. 그 순간이 오면.”   


모르겠다. 난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할 것이고, 매일매일 용감해지려고 담담하려고 노력하지만.  과연 웨인처럼 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 누가 그랬지. 우리 삶은 초지성 생명체가 만들어 놓은 시뮬레이션이라고. 그렇다면 그는 잔인하고 또 잔인하다. 웨인에게 저렇게도 잔인한 프로그램을 입력했으니. 존재하지도 않을 초지성 창조주를 향한 비난을 하는 그 순간에도 내 옆자리에선 콜린의 케이크와 동료들의 선물, 그리고 새로 산 근무용 신발이 차가 움직일 때마다 쓸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가 내게 입력한 프로그램의 마지막은 어떤 걸까? 그렇게 또 하나의 하루가 내 뒤로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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