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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음부터 잘 키우자 Aug 22. 2023

키스할 때만 눈을 감는 것이 아니었다.

70대까지 40대의 몸으로 살길 바라는 아줌마의 필라테스 이야기 15

시선이 느껴진다.


다가온다.


긴장된다.


떨린다.


호흡이 가빠진다.


사르르 눈을 감는다.



이어지는 것은 키스의 달콤함이 아니라 온몸에 전해지는 고통이었다.

키스할 때만 눈을 감는 것이 아니었다.

필라테스를 할 때에도 눈을 감을 때가 있다.


선생님이 매트에 편히 누우라고 했다. 그 순간 나는 '편하게 시작해서 힘들어진다는 말이지요?'라고 말했다. 물론 마음속으로만. 이렇게 선생님의 말에 토를 다는 버릇이 어느 순간 생겨버렸다. 이건 삐뚤어질 테야라는 마음은 절대 아니고 나 스스로에게 앞으로의 놀라운 고통과 한없이 느리게 가는 시간에 대해 미리 알려주는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다. 나는 절대로 편하지 않은 마음으로 매트에 누웠다. 그리고 선생님의 동작 지시에 따라 다리를 올렸다 내렸다 뻗었다 굽혔다를 반복했다. 다리가 덜덜 떨린다. 그리고 온몸이 벌써 땀범벅이다. 더운 여름날에도 땀을 잘 흘리지 않는 나인데 필라테스 시간에는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한 바가지 흐른다. 좋은 건가 나쁜 건가 생각하다가 좋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선생님은 다리 동작과 함께 '컬업'을 외쳤다. 컬업은 배에 힘을 잔뜩 주고 상체를 일으키는 것이다. 내가 제일 힘들어하는 컬업이다. 뭔들 안 힘들겠느냐만은 컬업을 할 때 등은 바닥에서 안 떨어지고 엉뚱하게 목에 힘이 들어가 목이 꺾이고 아프다. 반면 선생님은 한껏 여유롭고 아름답게 다리와 상체가 모두 두둥실 떠서 매트 위에서 완벽한 V자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몸은 여전히, 아직도, 계속 V가 되고 싶은 기우뚱거리는 L이다. 이 순간 나는 눈을 감는다. 학창 시절 칠판 앞으로 불려 나가 수학 문제를 풀게 되는 일만은 피하고 싶은 마음과 똑같다. 그러나 절대로 수학 선생님은 나를 포기하지도 모른 척하지도 않았다. 지금의 필라테스 선생님도 그렇다. 조용히 매트에서 일어나 사뿐히 걷는 선생님의 발소리가 들린다. 발소리가 나를 곧장 향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그렇다. 나는 시력보다 청력이 더 잘 발달한 사람이다.


선생님의 터치 한 번에 다리가 더 올라가고, 터치 한 번에 등이 펴지는 마법이 시작되었다. 온몸에 땀이 샘 쏟고 고통이 강해진다. 그래도 잘 버텨보려 노력한다. 열심히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내가 동작을 잘할 때까지 선생님은 계속 나를 지도해 줄 것이고, 그동안 옆 회원들도 모두 같은 동작을 하고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다른 회원들의 고통을 선생님이 모르지 않을 텐데 어떨 때는 일부러 이러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합법적으로 더 운동을 시키기 위해. 다행히 회원들은 서로를 원망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고통과 떨림과 한없는 기다림을 나눠주기 때문이다. 다만 선생님의 선처를 바라며 버텨 볼 뿐이다. 이윽고 '저번 보다 훨씬 좋아요.'라는 선생님의 말 한마디를 듣고 나를 포함한 모든 회원들이 고통에서 해제된다. 그리고 말없이 서로에게 수고했다는 눈빛을 주고받는다. 우리는 오늘도 몸쓸 몸 때문에 연대감을 향상해 나가고 있다.


매트에 누워 온몸의 긴장을 풀어본다. 그리고 잘 버텼다는 만족감과 뿌듯함을 느껴본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키스 후에 느끼는 충만함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키스도 필라테스도 사람을 성숙하게 만드나 보다. 아픈 만큼 성숙하고 가끔은 눈을 감을지도 모르는 필라테스. 같이 하실래요? ㅎ



#필라테스 #다이어트 #키스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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