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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음부터 잘 키우자 Oct 19. 2023

환청이라니 드디어 내가 미쳤구나.

70대까지 40대의 몸으로 살길 바라는 아줌마의 필라테스 이야기 16

오늘은 좀 멀리 강의를 하러 가는 날이다. 아침부터 마음이 산란하다. 강의야 늘 하는 것이고, 강의 내용도 부모들을 만나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니 내 마음이 산란할 일이 없다. 문제는 바로 운전이다. 인간 본연의 속도와 완전 다른 이 자동차라는 물건에 내 몸과 정신을 싣고 다녀와야 하는데 20년이 넘는 운전 경력에도 여전히 긴장이 된다. 고속도로를 함께 공유하는 차들은 어쩜 그리도 빨리 달리는지, 나는 또 네비의 안내가 왜 이리 알쏭달쏭한지. 절로 핸들을 움켜쥐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자연스럽게 어깨가 올라가고 호흡이 가빠진다.


"어깨 내리고 호흡하세요. 긴장 풀고."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여긴 분명 강의를 하러 가는 고속도로 위고 난 분명 혼자다. 그런데 뜬금없는 목소리가 들린다. 바로 필라테스 선생님의 목소리다. 분명 이건 환청이다. 환청이라니 드디어 내가 미쳤구나. 그런데 신기하게도 코로 숨을 마시고 입으로 뱉고, 어깨가 내려가고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며 자세가 안정을 찾았다. 이렇게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다니.  


나랑 양육코칭을 하는 부모님들은 집에서 아이랑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신기하게 내 목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그리고 덕분에 이야기도 잘했다고 했다. 그게 이런 거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스며들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거라는 강한 통찰이 왔다. 내가 정말 필라테스의 세계에 빠져들고 있구나. 무언가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게 얼마만인지 반갑고 신기하다. 운동 그게 뭐니라는 생각으로 살던 나를 운동에 빠져들게 하다니 필라테스의 매력은 참 대단한 것 같다.


피겨의 여왕 김연아 선수도 은퇴 이후에는 살려고 운동을 한다고 했다. 아마도 나도 살려고 운동을 하나보다. 살기 위한 운동이니 그만큼 치열하고 중요한 것이겠지. 필라테스와 살겠다는 나의 의지가 시실과 날실로 만났으니 이런 게 바로 운명이라는 것인가 보다. 아니 어쩜 운명이라는 단어에 나의 의지를 단단히 묶어두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뭔들 어떠랴. 필라테스 열심히 재밌게 하고 70대까지 원피스에 힐 신고 다니면 되는 거지.


어깨 내리고 호흡하며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강의 시작 전에 또 한 번 어깨 내리고 호흡을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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