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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음부터 잘 키우자 Jul 24. 2024

빛나는 졸업장은 없었다.

그래도 너무 좋다.

빛나는 졸업장은 없었다. 그 흔한 꽃다발조차 없었다.


애초에 누군가의 허락이나 허가를 받고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정규 과정이라고 정해진 것도 없으니 그 시작과 끝도 정해진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졸업식, 졸업장, 꽃다발은 이 세계에 있을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졸업을 했다. 빛나는 졸업장이 없어도 화사한 꽃다발 따위가 없어도 나는 분명 졸업을 했다. 부모라는 세계에서...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양육하는 부모의 세계로부터 안녕을 고했다.




'엄마.'


먼저 강당에 도착해 있던 햇살이가 나와 짝꿍을 발견하고 다가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입는 거라며 단정히 입고 간 교복 위에 어깨에 빨간색이 덧대어진 까만 졸업식 가운을 입고 갈색이 도는 빨간색 팔각 졸업 모자를 쓰고 걸어오고 있었다. 졸업 모자 아래로 보이는 노랗게 물들인 찰랑이는 머리카락이 오늘의 졸업식의 의미가 그동안의 졸업식과 사뭇 다르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어린이집 졸업식을 시작으로, 펑펑 울던 선생님에게 '선생님 왜 울어요?'라고 해맑은 질문을 던지던 유치원 졸업식, 사춘기의 감성을 팍팍 풍기던 초등학교 졸업식, 코로나로 부모조차 참석하지 못한 중학교 졸업식.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그리고 당연하게 치르던 의식이지만 그때마다의 생경한 감동과 기쁨이 가슴을 가득 채웠었다. 그리고 그 감동과 기쁨의 끝에는 또 다른 햇살이의 시작을 다짐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너의 인생은 너의 것이고 나의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말은 해도 나도 어쩔 수 없는 부모고 학부모라 굳이 행동으로 무언가를 하지는 않지만 앞으로 펼쳐질 학교 생활이나 학업 등에 대해 최소한의 마음의 준비라도 다짐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햇살이의 시작을 다짐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시작을 다짐하고 있었고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었다. 나의 이런 머릿속 생각을 전혀 알지 못하는 햇살이는 해리포터에 나오는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아이 같은 모습으로, 아주 많이 들뜬 표정으로 내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내가 건넨 꽃다발을 들고 점잖은 척 친구들을 나와 짝꿍에게 소개해 주었다.  


잠시 후 졸업식이 시작되었다. 빠른 시간에 순식간에 지나가긴 했지만 300명 정도 되는 졸업생들을 한 명 한 명 모두 강당의 무대 위로 올라오게 하여 선생님들이 직접 졸업장을 수여했다. 졸업장을 받고 뒤돌아 내려오는 햇살이의 얼굴에 유치원 졸업식 때의 그 여린 햇살이의 모습이 콕 박혀있어 계속 참고 있었던 눈물이 슬그머니 스며 나와 눈앞이 뿌예졌다. 어쩜 재잘재잘 쫑알쫑알 대던 입술과 반짝이며 한없이 커지던 눈망울이 그대로였다. 몸만 커져있을 뿐이었다. 여전히 귀엽다. 고등학교까지의 의무교육을 무사히 마쳤음을 증명하는 졸업장을 받은 햇살이의 얼굴에 차오르는 의기양양함과 기세등등함과 이제는 스스로 성인이라고 생각하는 머릿속 생각들이 전광판에 나오는 광고처럼 빠르게 스치는 것이 보였다. 햇살이는 이 졸업장의 의미를 알기는 할까.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의 무게인지 가끔은 아주 매운맛으로 알게 될 것이다.


교장 선생님을 필두로 담임 선생님들의 축사와 졸업생들을 위한 당부의 말들이 이어졌다. 모두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라는 말들이었다. 교복을 입고 교실에 앉아 있는 동안 하지 말라고 한 게 너무 많아 미안했던 사람들처럼. 그리고 한 없는 자유 뒤에 무한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도 함께 들려왔다. 시작을 시작으로, 자유라는 과정을 지나 마지막에 책임이라는 마침표가 콱 찍혔다. 역시 공짜 자유는 없는 것이었다. 이 정당하고 명백한 개념이 햇살이를 비롯한 모든 졸업생들의 걸음에 무게를 실어주길 바라고 또 바랐다. 그리고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외쳤던 '새로운 시작, 축하, 자유'는 내게 오는 말 같았다. 나는 양육부모의 세계를 졸업하고 앞으로 펼쳐질 명예부모로서의 자유를 충분히 누리겠다는 다짐에 느낌표를 더한 마침표를 아주 세게 찍었다. 또한 나의 자유는 절대로 공짜가 아니며 가불도 아님을 명확히 했다. 나의 이 자유는 임신과 출산과 양육의 그 긴 터널을 지나며 치렀던 많은 인내와 노력과 책임의 대가임을, 이미 나는 값을 치른 자유를 마음껏 꺼내어 쓸 것임을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졸업생들이 교가를 부르고 드디어 졸업 모자를 높이 높이 던졌다. 주변에서 박수 소리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래. 이제 나도 졸업이다. 진짜 좋다. 정말 좋다. 너~~~무 좋다.'


던져지는 졸업 모자와 강당에 울리는 함성들이 나에게 양육 부모가 아닌 명예부모로서의 책임과 의무에 선명하게 선을 그어도 된다는, 충분히 그래도 된다는 확신의 메아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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