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기본형 부부
언제부터인지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퇴근 후 초저녁부터 졸음이 밀려오고 감기 기운이 있는 듯 없는 듯 자꾸만 몸이 무겁고 속도 울렁거렸다. 평소 감기 몸살을 달고 살고 위염도 자주 겪던 나라서 짝꿍과 나는 설마 아니겠지, 그렇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라는 생각에 임신테스트를 해 보았다. 보통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선명하게 2개의 선이 나타나던데 우리가 한 테스트기에는 너무나 약한 선이 2개가 나타났다. 임신 같기는 한데 테스트기가 불량 같기도 한 임신인 듯 임신 아닌 임신 같은 조심스러운 의심이 들었지만 우리 둘의 심장은 이미 터질 듯이 뛰고 있었다. 어느새 짝꿍은 나를 번쩍 안아 올렸다가 살포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나의 얼굴이 아닌 배를 바라보며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마치 자기가 실수로 놀라게 한 것이 아주 많이 미안한 표정으로 말이다. 임신이 거의 확실하지만 조금 더 기쁨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던 우리는 그 밤에 별과 달의 응원을 받으며 다시 약국으로 가 임신테스터기 하나를 더 샀다. 이번에도 흐리지만 분명 2개의 선이 나타났다. 분명 임신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부모가 되었고 나는 임산부가 되었다.
임산부의 삶은 험난했다. 그렇게 마음을 푸근하게 하던 밥 뜸 드는 냄새가 더 이상 맡을 수 없는 고약함으로 내 코를 찔렀고, 내려 꽂히는 눈꺼풀에 책 한 장을 마음대로 읽지 못했다. 점점 불러오는 배 때문에 혼자서 발톱을 깎을 수도 양말을 편히 신을 수도 없었다. 또 생리현상은 왜 이리 조절이 안되는지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고, 짝꿍 외의 사람 앞에서 방귀를 뀌어 버린 날도 있었다. 임신한 여배우는 가녀린 팔에 배만 볼록하던데 나의 몸은 바람이 가득 찬 풍선처럼 빵빵하고 둥글둥글 해 지고 있었고 연일 몸무게는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었다. 그러던 6월의 어느 늦은 밤 내 안에서 콩닥이던 심장의 주인공이 태어났다. 작은 울음소리와 함께. 그렇게 우리는 진짜 부모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전업 육아맘이 되었다.
육아맘은 바쁘고 지치고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고 하던데 난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지루했던 것 같다. 그리고 답답했던 것 같고 나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으로 인해 불안했던 것 같다. 일명 '우울'이 찾아온 것이었다. 그렇게 비싼 등록금을 내고 교수 눈치를 봐가며 힘들게 받은 석사 학위가 무용지물이 되었고, 막연히 빠른 시일 내에 박사 과정을 시작하고 싶다는 나의 계획은 이미 모두 부서져 가루가 된 지 오래였고, 난 하루 종일 똥기저귀를 갈고 있었다. 때 마침 내가 낳은 콩닥이던 심장은 딸이라 이 딸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너무나 난감했고 혼란스러웠다. 기껏 공부시켜 놓으면 다시 나처럼 이렇게 살까 봐. 흔히 딸들이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던데 난 엄마처럼 살지 말지 모르겠지만 난 이미 그렇고 그런 보통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햇살이가 두 돌이 지나고 난 다시 상담일을 시작했다. 드디어 육아 지옥을 맛보고 죄책감의 구렁텅이 속에서 허덕인다는 워킹맘이 되었다. 그리고 내 짝꿍과 나는 맞벌이 부모가 되었다. 다시 상담을 시작하며 즐거웠고 기뻤고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쉬었다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진짜 능력이라는 믿음이 생기며 햇살이를 더 능력 있는 여자로,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부터 짝꿍과 가사노동으로 인한 소소한 부부싸움을 하며 유치함을 뿜어냈던 것 같다.
햇살이가 드디어 어린이집과 유치원 생활을 모두 마치고 위풍당당한 초등학생이 되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 시기인 유아기에는 아이가 먹고, 싸고, 씻고, 입고, 자고, 놀 수 있도록 돌보며 기본적인 생활 습관을 만들도록 돕고, 즐겁고 행복한 기억으로 안정된 정서와 성격을 만들도록 도와 사회성의 기초를 다져주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를 우리는 그렇게 힘들다는 '육아'라고 한다. 햇살이가 이제는 혼자서 샤워도 하고, 응가 뒤처리도 하고, 밥도 먹고, 옷도 골라서 입고, 지각하지 않고 등교도 잘하게 되었다. 그리고 유쾌하고 통통 튀는 에너지를 뿜어낼 정도로 자랐고 친구들과 관계도 좋은 것 같았다. 그래서 나와 짝꿍은 드디어 육아 독립을 했다. 육아지옥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육아는 힘들게 느껴지고, 끝이 없을 것 같은 막연함은 부모를 깊은 우울과 양육스트레스로 이끌기도 하는데 분명 육아도 끝나는 시기가 있다. 이 시기는 부모와 아이가 함께 정하는 것으로 아이가 스스로 하도록 부모가 얼마나 잘 가르쳤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힘든 육아를 빨리 끝내는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제대로 육아를 하는 것임을 꼭 기억해야 한다. 책상 앞에 앉아 집중하여 숙제를 빨리 끝내거나, 아님 투덜거리며 숙제를 하지 않다가 울며 불며 억지로 늦은 기간까지 하게 되는 불상사가 생기는 것과 매 한 가지이다.
햇살이의 유아기가 끝나면서 육아맘의 생활도 끝이 났다. 이제는 양육을 하는 부모로 살아야 한다. 양육은 육아 보다 조금 더 넓은 개념으로 국어, 영어, 수학과 같은 공부뿐만 아니라 사회적 규범, 도덕성, 생각하고 말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모든 것을 알려주는 것 즉 '아이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햇살이의 양육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 나에게 요술이가 찾아왔다. 무렵 일곱 살 차이의 둘째. 그래도 한 번에 둘을 같이 키우는 것보다 분명 한 명씩 차례로 키우는 게 더 수월할 것 같았다. 다만 육아 기간이 길고 그만큼 나의 사회생활에 쉼표가 많아진다는 것은 결코 수월하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임신과 출산, 양육과 무직의 시간을 한번 거쳐본 나라서 덜 불안하기는 했던 것 같다. 아니 어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모든 걸 내려놓고 상황에 잘 녹아들기 위한 나의 모성 본능이 내 신경을 마비시켜버린 것인지 모르겠다. 아이를 낳고 하늘로 돌아가기를 포기한 선녀의 마음이 이런건 아니었을까. 어쨌든 난 아이 둘을 낳은 엄마가 되었다.
요술이가 걸을 수 있고 이 방 저 방을 다니며 저지레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햇살이는 부모 보다 친구가 더 좋다는, 부모 팔아 친구 사고,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그 나이가 되었다. 사춘기가 시작되고 방문을 꽉 닫아 놓고 먹을 때, 씻을 때, 뭘 사달라고 할 때만 방 밖으로 나오는 아이가 되었다. 눈빛이 날카로워 눈빛에 베일 것 같았고 두 마디만 섞었다간 내 이성이 마비될 것 같았다. 이때부터 나는 '힘들구나. 방에서 쉬고 나와.'라는 말을 녹음된 테이프를 틀 듯 햇살이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이야기하며 햇살이의 인간성과 내 이성을 지켜야만 했다. 역시 분리되어 서로의 눈동자에 서로의 모습이 찍히지 않은 상태가 가장 안정적이고 평화로웠다. 사춘기는 길었다. 초등학교 5~6학년 때쯤 시작해서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끝났고 난 그날을 기억한다. 요술이가 어느 날 나에게 와서 '누나가 나 좀 좋아하나 봐. 친절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요술이가 가장 먼저 햇살이의 사춘기의 끝을 알아 차린 것이었다. 하긴 햇살이의 사춘기 횡포의 가장 큰 피해자가 요술이니 그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다음 해 아무도 안 건드린다는, 중2보다 더 무섭다는 고3을 무사히 지나고 햇살이는 드디어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나는 양육부모의 역할을 내려놓았다. 이제 나와 짝꿍은 걱정보다 응원을, 도움보다는 조언을, 결정보다는 생각을 보태주어야 하는 명예부모가 되었다. 그리고 부모로서 합심하여 아이에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습의 원형인 남녀로 돌아와 서로에게 집중하는 부부로 회귀할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이 자라 떠나면 빈둥지증후군이 생긴다는데 괜찮나요?"
"전 할 만큼 했어요. 홀가분하고 좋습니다. ㅎ"
강의실에서 부모들로부터 많이 받는 질문과 나의 대답이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의 과정을 스무 해 동안 꼬박 했다. 그리고 앞으로 둘째를 위해 딱 7년만 더 할 계획이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가 대학생이 되면 취업 걱정, 아이가 결혼을 하면 손주 육아 걱정을 한다고 한다. 이건 부모의 사랑이란 이름으로 발생하는 불필요한 간섭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엄마 몸을 탈출해서 태어나는 날 몸의 분리를 시작으로 성인이 되기까지 서서히 분리 독립의 과정을 거친다. 18개월 정도가 되면 잠시 부모와 떨어져 5~10분 정도 놀다가 다시 부모를 찾는 과정을 반복하고, 36개월이 되면 애착이 완성되고 또래에 대한 개념이 생기며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부모와 떨어져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초등학생이 되면 학교와 학원을 다니며 부모와 떨어지는 것에 점점 더 익숙해진다. 그리고 사춘기를 지나며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을 중시하며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서서히 부모와 떨어지게 된다.
아이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이 되는 순간부터 보편적인 발달의 과정을 거치며 부모와 떨어져 성장하는 분리 독립의 과정이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으므로 부모는 이 과정을 잘 지켜보며 서서히 손을 놓으면 된다. 아이가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건 부모로서는 너무나 좋고 편한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이가 스스로 하게 되는 걸 가장 걱정하고 불안해하며 손을 놓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부모이다. 내 아이니까 상처받지 않길 바라고, 좀 더 잘하길 바라고, 좀 덜 불편하길 바라는 깊은 부모의 마음임을 안다. 그러나 한 번도 넘어져 보지 못한 아이는 결코 넘어진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으므로 이런 깊은 부모의 마음은 아이를 더 불안하게 그리고 부모에게 더 의지하게 만든다. 아이 보다 더 오래 살 자신이 없는 부모라면, 아이 보다 더 오래 살고 싶지 않은 부모라면 아이를 서서히 분리 독립을 시켜야 하지 않을까. 할 만큼 해서 충분히 만족스럽고 후회되지 않도록 오늘의 육아와 양육에 집중하는 부모가 되는 게 여러모로 현명한 선택인 것 같다.
부모 생각에 따라, 아이의 상황에 따라 분리 독립의 시기가 다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아이가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처리할 수 있을 때 육아 독립을 하고, 집 밖에서 자기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고 자신의 미래의 꿈을 찾고 실현하는 방법을 찾았거나 기꺼이 찾는 중이라면 양육 독립을 해도 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이 시기가 되면 빈 둥지 증후군이네, 아이에게 내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네, 허무하네, 서운하네라고 말하며 부모로서의 삶에 집착하기보다는 그렇게 보고 싶던 영화를 마음껏 보고, 그렇게 외치던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우아하게 어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반드시 입으로 밥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밥을 먹고 오롯이 나와 내 짝꿍에게 집중하는 시간으로 회귀해도 좋겠다.
나와 짝꿍에게도 이제야 비로소 부모에서 부부로 다시 돌아와 서로를 바라보는 넉넉한 시간을 즐겨도 되는 때가 왔다. 아직 요술이에게는 양육하는 부모이지만 햇살이에게는 명예부모이므로 양육부모와 명예부모의 줄타기를 잘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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