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루랄라 떠나도 되는 시간이 되었으니까...
진짜 올까? 안 올 것 같은데.
왔다. 2024년이. 햇살이의 고등학교 졸업식과 함께 내게로 왔다. 2024년은 햇살이가 스물이 되는 해이고, 대학에 가는 해이고, 성인이 되는 해이다. 물론 스물을 목전에 둔 작년 여름에 나이 정책이 바뀌면서 햇살이의 나이가 18세로 깎여 버려 법적으로는 현재 19세다. 그러나 지금의 19세는 예전의 만 19세로 스물로 통용되는 나이이니 우리 집에선 햇살이의 나이를 스물로 인정하기로 했다. 햇살이 또한 '스물'을 성인, 자유를 상징하는 나이로 인지하고 있으며 19세인 올 해도 그리고 진짜로 20세가 되는 내년에도 생일 케이크에 스무 개의 초를 밝혀 달라고 했다. 짜릿함이 있는 스무 살을 두 해나 살겠다니 부러울 뿐이다.
나는 햇살이가 스물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랬다. 사실 스물이 된다고 해서 딱히 달라지는 건 없다. 아직은 햇살이가 나와 내 짝꿍에게 몸을 의탁하고 등록금과 용돈을 타서 쓰는 처지이니 말이다. 그래도 조금 달라진 점이라면 자정 가까운 시간에 학원에서 돌아오는 게 아니라 술집에서 돌아오고, 학교 친구를 만나는 게 아니라 과동기를 만나고, 선생님 눈치를 보며 그렇게 하고 싶던 화장이 조금은 귀찮아지고, 눈치 보지 않고 염색을 하고, 매일 옷장을 열고 뭘 입을지 고민을 하고, 운동화 대신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다니는 정도이다.
이 소소한 변화에 내 마음은 한없이 가벼워졌다. 햇살이는 더 이상 내가 챙기고 돌봐야 하는 아이가 아니라는 심리적인 안도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K-장녀로서 독립심이 강하다고 자부하는 햇살이라 동생 요술이와 단 둘이 며칠 있는 것쯤은, 물론 귀찮지만 가능하다는 말이 나를 너무나도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햇살이의 고등학교 졸업식이 있던 날 양육 부모로서의 역할에 느낌표를 더한 마침표를 찍었다. 나는 마침표를 찍은 이 순간을 특별히 기념하기 위해 짝꿍과 조금은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졸업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햇살이는 이 대목에서 엄청 억울해했다. 가슴 아픈 세월호 사건으로 학교 밖 활동이 위축되어 초등학교 졸업여행을 못 갔고, 코로나로 중학교 졸업여행을 못 갔고, 코로나가 사그라들기는 했지만 졸업여행 시기를 놓치고 고 3이 되어 버린 햇살이었다. 그래서 학창 시절이라 불리는 그 모든 시기에 당연하게 생각되던 졸업여행을 한 번도 못 가본 것이다. 이런 햇살이의 억울함까지 몽땅 내가 잘 놀고 오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졸업여행에 나 또한 조금 억울한 생각이 든다. 결혼식을 하지 않고 혼인신고만 하고 떠나는 신혼여행의 느낌이 이렇지 않을까. 햇살이의 졸업식날 난 너무 들떠 있었다. 부모로서 양육을 마쳤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벅차 양육 졸업식과 같은 의식 따위는 없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만큼 말이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것이 지금 생각해 보니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괜찮다. 아직 나에게는 햇살이 보다 일곱 살이나 어린 둘째 요술이가 있기 때문이다. 요술이의 양육을 마치고 완전히 양육을 졸업하는 칠 년 후의 그날에는 반드시 양육 졸업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거창하게 졸업장도 받고 화사하고 커다란 꽃다발도 꼭 받을 것이다. 짝꿍과 함께. 햇살이와 요술이로부터.
"자기야, 우리 어디로 떠날까?"
"자기 가고 싶은 곳으로. 난 어디든 괜찮아."
햇살이가 고등학생이 된 후 짝꿍과 둘이서만 떠나는 여행을 하긴 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마음이 쓰여 긴 여행을 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나와 짝꿍은 햇살이가 스물이 되는 해에 둘만의 졸업여행을 어디로 떠날지 늘 생각하고 생각했었다. 신혼 여행지를 고를 때 보다 더 신나고 신중하게. 사실 신혼 여행지에 대한 선택권은 나에게 없었다. 선택권뿐이랴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때는 내가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이라 학교를 길게 쉴 수도 없었고, 공부하다 말고 결혼한다고 교수님께 꽤나 눈치를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촉박하게 잡힌 날짜로 인해 양가부모님들의 상견례조차 결혼식 당일 하게 되었고 그 시간 난 신부 화장을 하고 있어 짝꿍이 친한 친구와 함께 상견례 자리에 참석할 정도였으니 정말로 이렇게 결혼해도 되는 건가 싶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신혼여행'이란 단어는 나의 비현실감의 극치를 표현하는 상징어였을 뿐이었다.
'2024년은 무조건 멀리 떠나자'라는 슬로건 아래 짝꿍과 나는 즐겁고 신나는 열띤 토론의 장을 열었다. 식탁에서 침대에서 출근하는 차 안에서. 짝꿍은 지도에 여행 다녀온 곳을 표시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지도를 보니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비행거리 6시간 이하, 시차 2시간 이하인 곳에 집중적으로 알록달록한 별들이 분포해 있다. 별들이 있는 그곳은 나른한 따뜻함이 있고, 보드라운 백사장을 가진 해변이 있고, 근사한 석양이 걸리는 하늘이 있다. 나는 그곳을 나풀거리는 긴 치미를 입고 창 넓은 모자를 쓰고, 멋진 선글라스를 쓴 짝꿍과 팔짱을 끼고 거닐고 싶었다. 그리고 거리를 걸으며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이국적인 풍경과 신기한 건물과 장식들을 보면서 서로의 감동을 나누고, 신선한 과일과 다채로운 향신료들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먹거리 앞에서 여유롭게 식사를 하고 싶었다. 물론 가끔은 정말 이런 날도 있었다.
그러나 대개는 리조트 내에 있는 수영장에서 물장구를 치겠다는 둘째와 바닷속 물고기를 보겠다는 첫째로 인해 나와 내 짝꿍은 여행 중 이별을 하기도 하고, 멋진 사원을 보다가 덥다고 호텔로 가자고 우는 떼쟁이를 달래려 아이스크림 조공도 하고, 매운 거 안되고 향신료 안 되는 까다로운 아이들의 입맛에 맞춰 한국에서도 충분히 갈 수 있는 프랜차이즈에서 밥을 먹고, 예쁜 해변을 한 번만 걸어 보자고 사정을 하는 날이 더 많았다. 나이 차이 좀 나는 아이 둘과 함께 하는 가족여행은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나와 짝꿍은 별표가 하나도 없는 저 먼 곳으로 자유롭게 가 보기로 했다. 그곳에서 다리가 아프도록 거리를 걸어 보고, 매운 것도 독특한 향기가 나는 것도 막 먹어 보고, 지역의 작은 식당에서 식사 때마다 와인과 맥주를 마시며 조금 더 나른해 보기로 했다.
딸 스물,
나는 캐리어를 챙긴다.
더 이상 가이드가 아닌 짝꿍과 더 이상 보모가 아닌 내가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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