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싣려 다녀 보기로...
자유여행? 패키지여행? 그냥 우리 싣려 다녀보는 건 어때?
콜!
나는 지도를 잘 못 본다. 가끔 차를 두고 외출을 할 때면 늘 버스와 지하철은 내가 생각한 반대 방향에서 왔다. 뿐만 아니라 나는 인터넷 검색도 잘 못한다. 왜 내가 검색하면 이상한 광고글들만 나오는지... 이러니 짝꿍은 여행을 할 때면 늘 바빴다. 잘 곳, 먹을 것, 놀 것, 볼 것 모두 짝꿍이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다행인 것은 짝꿍이 이런 나와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하는 걸 아직은 싫어하지 않는 것 같고, 검색하고 찾아가는 것을 그다지 불편해하지 않는 것 같다는 것이다. 또한 좌회전, 우회전 그리고 직진의 변형된 코스를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목적한 그곳이 예상한 곳에 떡 하니 나타날 때 희열을 느낀다고도 했다.
그런데 나는 좀 아니었다. 길을 찾을 때에도 뭘 좀 알면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과정의 기쁨이라도 있을 텐데 뭐가 뭔지 모른 채로 신경만 쓰이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리고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짝꿍을 볼 때면 나의 무용함이 싫어지기도 했었다. 물론 나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내가 주로 하는 건 아이들을 챙기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아이를 없이 둘 만 떠나는 여행이니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없어졌고 대신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하지만 여전히 짝꿍은 4인분의 준비가 2인분의 준비로 줄어들었을 뿐 오히려 처음 가 보는 이탈리아에 대한 준비로 신경 써야 할 것이 더 많아질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 여행을 자유여행으로 간다면 나에게만 홀가분하고 좋은 여행이 될 것 같아 싫어졌다. 나는 내가 느끼는 홀가분함과 즐거움을 짝꿍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운전대에서 손을 놓게 해 주고 싶었다. 검색창에서 눈을 떼고 대신 차 창 밖의 풍경에 눈을 고정시킬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여행을 할 때 창밖이나 바라보고 간식이나 먹고 게임이나 하는 것처럼 말이다. 특히나 이번 여행은 양육부모의 페르소나를 떠나보내는 여행이지 않던가. 그래서 우린 패키지여행으로 그냥 차에 싣려 다녀보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패키지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하고 나니 낯선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어떨지, 짜인 코스대로 여행을 하는 게 진짜 여행다운 여행인지 아리송하기는 나나 짝꿍이나 매 한 가지였다. 뭐든 새롭게 해 보는 일에는 주저함이 따르기 마련이지만 주저함을 멀리 던져버리고 이번만큼은 쉽게 편하게 아무 생각 없이 다녀보기로 했다. 패키지여행의 날짜와 코스 등을 알아본 후 카드 결제를 했다. 경쾌한 카드승인 알림이 울리고 여행사로부터 안내 문자가 왔다.
"예약 완료된 거지?"
"그런가 봐."
"설마 떠나기 며칠 전에 갑자기 취소되진 않겠지?"
"설마..."
끝이었다. 진짜 여행 준비 완료였다. 짝꿍과 나는 이대로 정말 여행 준비가 끝이라는 게 조금은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잠시 후 이제 떠나기만 하면 된다는 기쁨이 몰려왔다. 너무나 간편하고 신경 쓸 것이 전혀 없었다. 처음으로 해 보는 패키지여행인데 이게 진정 자유로운 자유여행 같은 느낌적인 느낌.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자본주의의 편리함을 최대한으로 느낀 것 같은 날이었다. 여행 예약을 완료하고 우린 선택관광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였다. 뭘 선택하면 좀 더 재미있을까? 만약 하지 않는다면 그 시간에 우린 뭘 할 수 있을까? 어쩜 선택관광이 빠진 그 시간에 우리가 좋아하는 낯선 곳에서 어스렁거리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에 고민을 더하며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 갔었다.
근데 우린 늘 패키지 여행 아니었어? 아이들을 위한...
여행을 준비하며 아이들도 이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요술이가 어렸을 때에는 그냥 햇살이 중심으로 여행을 했었다. 그런데 요술이가 커가면서 일명 '취향'과 '선호'라는 것이 생긴 후로는 가족여행을 결정할 때 서로 다른 의견으로 크고 작은 충돌이 생길 때가 있었다. 그래서 가족여행을 갈 때면 공통의 관심사 일명 '필수여행'을 코스에 넣은 후 햇살이가 하고 싶은 것과 요술이가 하고 싶은 것을 넣는 방식으로 여행을 계획했었다. 햇살이와 요술이는 성별도 다르고 하고 싶은 것도 다르고 나이 차이가 좀 있어서 할 수 있는 것도 서로 많이 달랐다. 그래서 우린 가끔 같은 곳을 여행하더라도 2명씩 짝을 지어 다른 곳을 다녀보곤 했었다. 나와 햇살이는 그림 전시회를 가고 짝꿍과 요술이는 근처 공원에서 킥보드를 타고, 나와 요술이가 뮤지컬을 볼 때 짝꿍과 햇살이는 카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짝꿍과 햇살이가 에메랄드빛 바다 안에서 산소마스크를 쓰고 물고기를 보는 동안 요술이와 나는 유아풀장에서 하염없이 물놀이를 했었다. 그래서 우린 늘 자유여행이었지만 나와 짝꿍은 아이들을 위한 선택관광에 가이드가 되어야 했기에 어느 순간 우리의 자유여행 의지는 박탈당하는 일이 종종 아니 자주 발생하곤 했었다. 나의 의지와 욕구 보다 아이들의 의지와 욕구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부모인가 싶을 만큼말이다. 우리의 이런 여행에 대해 짝꿍은 언제부턴가 '아빠표 패키지 여행'이라고 정의했었다. 따로 또 같이의 여행은 서로의 취향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참으로 평화로운 여행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두의 알찬 여행을 위해서 말이다.
나와 짝꿍은 이번 졸업여행을 평화로움에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아도 되고 누구도 챙기지 않아도 되는 진짜 여행다운 여행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둘이서 서로에게 집중하는 여행을 하기로 했다. 난생처음으로 해 보는 진짜 패키지여행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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