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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음부터 잘 키우자 Sep 04. 2024

부부여행에 아이들을 위한 준비

난 정말 이러고 싶지 않았다.

졸업여행이 결정되었다. 따뜻하고 화창하고 색색의 꽃들이 벌 나비에게 구애를 하는 4월. 봄이 세상의 주인공이 되는 그 4월에 나와 짝꿍은 이탈리아로 떠나기로 했다. 7박 9일의 일정으로. 나는 안다. 긴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을 거라는 걸. 어떤 여행이든 언제나 돌아올 때에는 아쉬움이 한가득 남았으니까. 그러나 이번에는 결코 짧지만은 않은 일정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다. 이번 여행은 아이들이 함께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7박 9일 동안 여행을 한다는 건 아이들과 7박 9일만큼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떨어져 있는 것이 처음이라 별일 없겠지부터 시작하여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까지 짝꿍과 나의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가끔 뉴스에 부모가 없는 빈 집에서 사고가 나는 안타까운 소식들이 전해질 때가 있다. 이 뉴스 기사에 우리의 상황을 대입하면 '40대 부부 둘만의 해외여행 중 집에 있던 아이들 사고. 알고 보니 엄마 직업 부모교육강사' 이렇게 된다. 짝꿍과의 대화는 여기까지 비약적으로 전개가 되곤 했다. 깔깔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며 이런 일은 없을 거라고 서로 말은 했지만 서로 완전히 괜찮지는 않다는 걸 서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막연한 불안과 걱정은 상황 해결에 절대로 도움이 안 되니 하나하나 현실성 있게 해결을 해 나가기로 했다.   


우리의 여행 기간 동안 햇살이는 그냥 학교만 다녀오면 된다. 학교만 다녀오면 된다는 말에는 술을 적당히 마시고 집에 꼭 들어와야 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얼마 전 햇살이가 자정이 넘어 상콤한 갖가지 알코올 냄새를 풍기며 들어온 날이 있었다. 그날 나는 햇살이에게 처음으로 귀가에 대해 한 마디 했다. 중고등학교 때도 귀가에 대해 별 말 하지 않던 나였는데 말이다. '오늘 나갔으면 오늘 들어와야 하는 거야.'라고. 그래서 햇살이는 사실 별 걱정이 안 된다. 무려 대학생이므로.


그런데 요술이는 좀 상황이 다르다. 이번 졸업여행은 햇살이에 대한 나의 양육졸업 여행이라 요술이는 해당사항이 없다. 이 말인즉슨 요술이는 쬐금 아주 쬐금 걱정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요술이는 스스로를 초등학교 졸업반으로서 뭐든 혼자 할 수 있으며 특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고 반드시 갖고야 말겠다는 다부진 결심을 하고 있었다. 이런 요술이의 생각과는 별개로 나와 짝꿍은 요술이의 일과를 체크하고 있었다. 일단 요술이가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은 학교 다녀오기, 졸업앨범 촬영하기, 인생 처음으로 친구들과 영화관에서 영화 보기, 집 혹은 밖에서 친구들과 놀기 그리고 검도장에서 열심히 운동하기다. 짝꿍은 요술이에게 학교만 다녀오고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집에만 있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아무래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 더 많은 위험요소에 노출될 거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역시 나보다 더 아이들을 걱정하는 짝꿍 다운 생각에 실소가 터지는데 순간 요술이의 표정이 싹 바뀌며 억울함이 굵은 눈물방울로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엄마 아빠는 이탈리아 까지 날아가 논다면서 자기에게는 집에만 있으라고 하다니 머릿속에 그리던 꿈같은 혼자만의 시간과 나날이 산산이 부서지려 했을 것이다. 나도 물론 걱정이 되긴 하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짝꿍을 멈추게 하고 요술이에게는 좋은 해결책을 찾아보자는 말로 상황을 빠르게 정리했다.


요술이 문제를 가장 쉽게 해결하는 방법은 햇살이에게 '요술이 좀 챙겨줘.' 한 마디만 하면 된다. 아직은 그래도 요술이가 일곱 살 많은 누나 햇살이의 말은 곧 잘 들으니까. 그리고 햇살이는 요술이에게 만큼은 엄격한 누나라 사실 요술이 옆에 햇살이가 있으면 걱정을 할 일은 없다. 그러나 이러면 햇살이가 부담을 느끼게 되고 요술이가 더 귀찮아질 것이 뻔하다. 현실 남매 관계를 날마다 증명하고 있는 두 아이들인데 둘 사이를 더 악화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첫째에게는 둘째에 대한 양육 의무가 없다. 첫째 양육도 둘째 양육도 그저 부모의 몫일뿐이다. 따라서 햇살이에게 요술이를 부탁하는 것은 나와 짝꿍의 직무유기이며 민폐기 때문에 나는 요술이에게 이것저것 주의와 당부를 하였다. 반드시 알람을 맞추고 잠을 자고, 정해진 스케줄은 꼭 진행해야 하고, 절대로 평소와 다른 무언가를 하지 않으며 무슨 일이 있으면 시간 상관없이 무조건 엄마아빠에게 전화를 한다 등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하는 요술이에게 여러 번 다짐을 하듯 말했다.


그리고 냉장고를 채우기 시작했다. 밑반찬을 해 두어도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기에 전자레인지로 간편히 해 먹을 수 있는 볶음밥, 주먹밥을 시작으로 갖가지 국과 에어프라이기로 할 수 있는 치킨과 만두 등 나의 냉장고가 마트 냉동실 같은 느낌이 들만큼 채웠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아이들이 냉장고를 열어 뭘 찾아 먹기보다는 매 끼니마다 갖가지 배달 음식으로 12첩 반상을 차려 먹을 거라는 것을. 그래도 내 마음 편하자고 가득가득 채워보았다. 그리고 대청소에 가까운 청소를 하고 수건들을 모두 삶아 빨아 정리해 두고 방마다 돌아다니며 침대 커버부터 이불까지 몽땅 세탁하여 뽀송한 것들로 교체를 했다.


내 모습에서 그 옛날 내 엄마 최여사의 모습을 발견했다. 최여사는 하루만 집을 비워도 석 달 열흘쯤 집을 비우는 사람처럼 쓸고 닦고 채웠고 신발을 신고 가방을 들고나가는 순간까지 뒤돌아 나를 쳐다보며 이것저것 당부를 했었다. 나와 최여사의 다른 점은 딱 한 가지, 첫째에게 양육의 임무를 부여하느냐 안 하느냐, 그것이었다. 나도 어리고 나도 놀고 싶은데 나한테 맡겨진 동생들은 참 난감했다. 짜증의 원천이었다. 그래서 나는 절대로 아이들을 한 세트로 묶어서 생각하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고 두 아이를 낱개 포장 사탕처럼 따로따로 스스로 하도록 키우려 노력했다. 이 원칙은 이탈리아 여행 앞에서도 물론 잘 지킬 것이다. 그러나 나의 짝꿍은 결국 햇살이에게 아르바이트비를 건네고 요술이의 보모로 임명을 하였고 기타 집안일도 시키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햇살이는 무노동에 가까운 저노동을 하고 유임금을 받게 되었지만 짝꿍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괜찮았던 것 같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준비를 해야 한다면 분명 나와 짝꿍을 위한 준비가 필요한데 나는 내가 없는 동안 아이들의 생활에 대해 준비를 더 많이 했다. 난 정말 이러고 싶지 않았다. 이번 여행의 타이틀이 양육졸업여행이니 만큼 시크하게 쿨하게 그냥 확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닌가 보다. 마음 구석 어디엔가 나도 모르게 아이들을 두고 여행을 간다는 게 뭔가 계속 찜찜했던 것 같다. 단순히 미안하다는 마음보다는 내가 없어도 불편하지 않게 잘 있어야 할 텐데라는 걱정이 계속 맴돌았던 것 같다. 나도 여전히 아이들과의 분리와 독립에서 아이들보다 더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부모인가 보다. 아마 이번 여행을 다녀오고 난 이후라면 나도 조금 더 분리와 독립이 잘 되어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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