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쓰고 햇살이가 그리다 4
illustrator by 햇살
햇살이가 그린 가족의 일과표를 보니 거의 대부분의 시간이 요술이 중심으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술이가 어려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엄마가 햇살이에게 미안해지는 순간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첫 아이는 동생이 생긴 후 동생에 대해 오만가지 생각과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엄마 아빠가 동생만 예뻐하는 것 같아 질투하는 마음, 동생을 마치 인형 대하듯 하며 약간 귀여워하는 마음, 내가 언니네 형이네 하며 우월함을 느끼는 마음, 동생 울음소리에 짜증 나는 마음 등.
이런 첫 아이의 마음 상태를 지켜보고 있는 부모의 마음도 오만가지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예전처럼 챙겨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 동생을 질투하는 모습이 보기 싫은 마음, '너라도 엄마 아빠 좀 도와줘.'라는 호소와 부탁의 마음, 이 모든 마음이 뭉쳐진 안쓰러운 마음. 보기에는 여러 가지 마음들이 혼란스럽게 얽혀 있는 것 같지만 근원을 들여다보면 딱 하나의 마음일 뿐입니다. 부모도 첫 아이도 모두 예전처럼 시간을 같이 보내며 사랑을 표현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해서 생기는 마음, 서로 서운해하고 미안해하는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그래서 햇살이는 요술이만 돌보는 것 같은 엄마에게 화를 냈고 그런 마음을 아는 엄마는 햇살이에게
“엄마랑 햇살이랑 둘이서 데이트 할까?”
라고 데이트 신청을 했습니다. 그래서 시작된 햇살이와 엄마의 특별 데이트는 매 달 한 번씩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둘 이상인 가정은 반드시 부모와 아이의 1:1 특별 데이트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화기애애하고 화목한 가족이라고 해도 아이에게는 부모와 단 둘만의 시간이 주는 특별하고 응축력 있는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특별 데이트는 ‘한 번 해 줄게.’라는 시혜적인 마음으로는 절대 금지입니다. 사랑은 사랑일 뿐 동정이나 다른 어떤 마음도 아니기 때문에 설레는 마음으로 데이트 신청을 해야 합니다.
특별 데이트라고 하면 뭔가 근사하고 평소에 잘하지 못했던 것을 해야 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가 부모에게 바라는 것은 예전처럼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지 특별한 무언가를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주 특별한 일을 하려고 하면 부모가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꾸준히 하기 힘들어 몇 번 하지도 못하고 흐지부지 될 수 있으므로 특별한 무언가를 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엄마와 햇살이는 둘이서 자주 하던 뮤지컬 보기와 도넛 먹기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엄마와 예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온 햇살이는 기분 좋게 일기도 썼습니다. 그리고 요술이를 돌보는 엄마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기보다는 살짝 다가와 둘만의 데이트에 대해 속닥이고 있습니다. 마치 비밀 사내 연애를 하는 커플이 동료들 모르게 자신들만의 러브 사인을 보내는 것처럼요. 아마도 햇살이의 마음은 '요술이, 넌 모르지롱~ 엄마랑 난 데이트했지롱~ 엄마가 네 옆에 많이 있지만 나도 엄청 사랑하거든.'이라고 외치고 있을 것 입니다. 이 특별 데이트의 효과는 다음 달 특별 데이트까지 한 달을 살 수 있는 신나는 에너지로 햇살이의 마음을 꽉 채워 줄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다음번 특별 데이트는 이 신나는 에너지가 다 소진되기 전에 해야 하고, 이 특별 데이트의 약속은 부모와 아이가 함께 정하고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들 중에 “아이와 약속을 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 지켰어요. 애가 얼마나 화를 내던지. 나도 어쩔 수 없는데 말이죠.”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돌발 상황을 이해해 주지 않는 아이에 대한 서운함이 묻어나는 말입니다. 가끔 부모들은 아이가 어리다는 걸 잊어버리나 봅니다. 부모가 아이를 이해해주는 것도 쉽지 않을 때가 있어서 야단을 치게 되는데 하물며 아이에게 부모의 급한 일에 대해 이해를 해 달라고 하면 안 되겠지요. 특별 데이트가 특별해지는 건 반드시 약속이 지켜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부모의 의지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약속은 신중하게, 부모의 에너지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가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걸 보면 부모는 자신도 모르게 ‘저렇게 좋아하는데. 내가 힘들어도 해 줘야겠다.’라고 생각을 하기 마련입니다. 이런 희생의 마음은 반드시 힘듦을 수반하여 약속을 깨뜨리게 만든답니다. 부모의 사랑은 무한하다고 하지만 부모의 가용 에너지는 절대 무한하지 않습니다. 정해져 있는 부모의 가용 에너지를 초과하는 약속은 절대 하지 않는 것이 특별 데이트를 잘하는 비결입니다.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특별 데이트는 특별한 무언가를 더 하는 것이 아니라 늘 하던 것을 부모의 가용 에너지 범위 내에서 아이와 함께 약속하고 지키는, 일상적으로 꾸준히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는 것이라는 게. 아이들을 키우는 것도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끔 아이들과 같이 있으면 머털도사가 머리카락을 뽑아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듯이 엄마도 분신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 옆에 늘 있어주고 싶으니까요. 그러나 현실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 그저 상상만 해 봅니다. 엄마 몸이 하나이니 아이의 모든 시간, 모든 공간에 함께 머물러 줄 수는 없지만 마음은 늘 함께 머물러 있음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의 마음은 행복해진답니다.
[오늘의 양육표어 - 둘이하는 데이트로 맘속사랑 가득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