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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음부터 잘 키우자 Jul 09. 2021

글과 나. 강릉은 모두 작가다

여행 정보 없는 여행 책 13


'나에 대한 애도. 강릉' 이 글은 한 장의 엽서에서 시작되었다.



짝꿍과 함께 1박 2일의 짧은 여행을 하기 위해 강릉에 도착했다. 호텔은 뭐니 뭐니 해도 뷰가 중요하다며 우리가 선택한 호텔은 '스카이 베이'. 호텔에 도착해서 짝꿍이 체크인을 하는 동안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예쁜 그림엽서였다. 처음에는 빨강 망토의 귀여운 요정 엽서가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옆에 있는 바다와 하늘이 그려진 엽서가 내 시선을 끌더니 마침내 내 시선이 가장 오랫동안 머물게 된 엽서를 발견했다. 바로 할아버지 할머니 요정이 나뭇가지 정원에 걸터앉아 해 질 녘 노을을 바라보는 그림이 담긴 엽서였다.


할아버지 요정은 비록 옆모습이었지만 퍽이나 인상이 좋아 보였다. 그리고 할아버지 요정에게 딱 달라붙어 앉아 무릎 담요를 덮고 있는 작은 요정 할머니. 단박에 난 내 짝꿍과 나의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보며 난 나와 내 짝꿍의 노후의 모습을 미리 보는 듯한 착각에 한동안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고 동시에 사랑스럽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랑과 감사'는 평소 내가 짝꿍에게 그리고 먼 훗날 우리의 마지막 날에 내가 나의 짝꿍에게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그리고 엽서에 적혀 있는 '강릉은 모두 작가다'. 이 한 줄의 문구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 강릉책문화센터가 주관하는 '강릉은 모두 작가다'는 강릉시민 또는 여행자들의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출판을 한다고 한다.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 낯선 공간이자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삶의 공간인 두 얼굴의 강릉에 참 잘 어울리는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릉은 모두 작가다'라는 주문에 걸렸는지 그때부터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새로운 공간이 나오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 글을 읽는 이들이 잠시나마 새로운 공간으로 뿅 하고 날아가 여행지의 설렘과 즐거움과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도록 강릉에서 느낀 가벼운 감상들을 적기 시작했는데, 글을 쓰면 쓸수록 점점 가볍지 않은 느낌. 저 깊은 무의식이 싫다는 나를 끌고 들어가는 느낌. 낯선 강릉에서 내 어린 시절과 나를 만나게 되는 반갑지만은 않은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데 짧은 글들을 적어 가는 동안 복잡한 생각과 뒤엉킨 감정들이 고운 채에 걸러 내 안에 남겨지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지금의 내 마음은 마치 어릴 적 가기 싫은 치과를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갔지만 치료가 끝난 후 치통이 사라져 다시 편안해진, 그리고 나를 기어이 치과에 데리고 간 어머니에 대한 미운 마음이 사라지고 살짝 고마운 마음이 생긴 그 상태인 듯하다. 글쓰기는 참으로 고요한 작업 같은데 그 안에서 일어나는 소용돌이는 결코 고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충분히 소용돌이를 맞이할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가면 내 짝꿍은 바쁘다.


잠 잘 곳, 먹을 것, 놀 것, 탈 것 모두가 내 짝꿍이 결정해야 한다. 난 하고 싶고 보고 싶은 것들이 정말 많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도조차 못 보는 엄청난 방향치에 그 흔한 인터넷 검색도 잘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내 짝꿍이 바쁜 이유는 바로 사진 찍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여행을 다녀오면 한가득 남는 내 짝꿍의 사진 덕에 오래도록 여행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어 정말 좋다.


'네모 프레임 안에 담으면 모두가 예술이고 의미가 있다.'라는 말은 정말 맞는 것 같다. 눈으로 풍경을 볼 때에는 좋다 멋지다 라는 느낌을 가지게 되는데 네모 프레임 안에 넣은 사진으로 다시 보면 또 다른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짝꿍의 네모 프레임 사진 중 이번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경포 해수욕장과 경포 호수가 모래사장과 사람들의 삶의 공간을 두고 마주하는 바로 이 사진이다.


바다는 예쁘고 시원하지만 가끔은 거친 파도가 무섭게 달려오기도 한다. 찝찝함을 제일 싫어하는 내 발을 적셔 끈적이게 만들고 저벅저벅 걸을 때마다 신발에 모래가 달라붙어 영 난감하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재밌는 물놀이를 하게 만들기도 한다. 호수는 잔잔하고 예쁘고 짝꿍의 손을 잡고 호젓이 산책을 하고 싶게 하고 마음을 내려놓게 하는 신비로운 힘이 있다.


글을 쓰는 동안 내내 흔들리고 잠잠해지고 뜨거워졌다 다시 냉정을 찾기를 반복했다. 이 사진이 마음에 들어온 것은 아마도 내 마음 상태를 콕 짚어내었기 때문이리라. 둘 중 어디가 내 어린 시절이고 어디가 내 현재인지는 나 혼자만 생각해 보려 한다. 그러나 어느 한 곳이 '나'였다고, '나'일 거라고 억지는 쓰지 않기로 했다. 바다는 바다대로 이유가 있고, 호수는 호수대로 그 만의 이야기가 있을 터이니 그저 나는 나에게 주어지는 이 유한한 순간에 집중해 보려 한다.


길게 뻗은 저 모래사장을 나의 짝꿍과 함께 오래 걷고 싶다.












[photo by 짝꿍]



    #강원도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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