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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음부터 잘 키우자 May 31. 2021

싱그러운 비 갠 아침의 강릉. 그리고 아버지

여행 정보 없는 여행 책 14

경축! 사랑하는 아빠의 47회 생일을 축하합니다.


라고 적힌 생일 축하 편지를 10살 아들로부터 받은 내 짝꿍과 함께 선물 같은 시간을 위해 강릉으로 떠났다. 달리는 차 창 밖으로 깨끗하고 맑은 하늘과 하얀 털북숭이 구름이 비현실적인 색감을 뽐내고 있었다.



강원도에 여러 번 왔었지만 무슨 이유인지 늘 그냥 지나치던 강릉이었다. 그런데 지나칠 때마다 ‘가 봐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계속 맴도는 것이 꼭 만나야 하는 오래된 친구를 두고 지나치는 아쉽고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 오랫동안 숙제처럼 남아 있던 이 묘한 느낌의 정체를 꼭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복잡한 일상들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월화의 거리에서 점심을 먹을 때쯤부터 잿빛 먹구름이 파란 하늘을 뒤덮기 시작하더니 점점 더 어둑어둑 해 졌다. 우산을 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과 함께, 후식으로 향 가득한 커피를 찾아 커피거리를 막 걷기 시작했을 무렵 잿빛 구름이 더 이상 제 몸을 무거워 견딜 수 없다는 듯 이내 소나기를 쏟아냈다. 급한 마음에 근처 카페에서 비를 피하기로 했다. 갑작스럽게 들어간 카페였지만 통 창 너머로 훤하게 펼쳐진 짙푸른 바다에 이끌려 마치 예약이라도 하고 온 사람처럼 천연덕스럽게 풍경을 감상하기 시작하였다.

    

순간 기억 속에서 튀어나온 멜로디.
띵띵띵 띠리리리 띠리띠리띠리띠리 띠리리리~
 

일기 예보의 시그널 '춤추는 음악실'이었다. 시그널과 함께 내 귀에 꽂히던 강릉 일기 예보. 사실 많은 도시 중 강릉만이 유독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이유를 아직도 알 수는 없지만, 자연스럽게 시그널의 이미지와 강릉이 오버랩되면서 나에게 강릉은 비 갠 아침 같은 이미지로 기억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하는 일이 상담이다 보니 늘 감정에 집중하게 되고 또 감정의 이유와 시작점을 찾으면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 들곤 했는데 이번에는 영 개운치가 않았다. 뭔가 빠뜨린 느낌. 소풍날 열심히 찾아 헤매던 보물찾기 종이를 덜 찾고 집으로 돌아온 느낌. 그날 나는 밤새 잠을 설치며 그 이유에 대해 묻고 또 물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눈을 떴을 때 햇살이 부서지는 바다와 함께 어느새 다시 맑고 깨끗해진, 분명 어제와는 사뭇 다른 언니 같은 하늘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순간 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일기 예보 시그널이 들리고 강릉의 날씨가 소개되던 그 시공간에 어린 나는 아버지와 함께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순간 나는 멍하니 가만히 있었다. 아주 잠깐 동안 세상의 시간이 멈추고 나와 내 기억만이 온전히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짧은 순간이 내게 남긴 건 오래된 옛 친구를 만나서 묵은 이야기를 다 한 느낌, 우물에 던져진 작은 돌멩이 하나로 흔들렸던 물결이 잠잠해져 내 얼굴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을 때의 반가운 느낌이었다. 내가 느낀 싱그러운 강릉 뒤에 따라다녔던, 감추어져 있어 미쳐 알아차리지 못했던 그 느낌은 애잔함과 그리움이었다.    


내 아버지는 집을 짓는 일을 업으로 하셨다.


젊었을 때에는 건설회사 대표이기도 하셨다. 그런데 늘 사장인지 현장 일꾼인지 모를 정도로 흙 범벅이셨다. 아버지는 날이 어둑어둑 저물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드시고 늘 다리 안마를 해달라고 하셨다. 안마는 참 지겹고 싫은 일이었다. 5분이 지났을까? 10분이 지났을까? 아무리 기다려도 안마를 그만 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은 없었다. 대신 아버지의 쿨쿨 코 고는 소리와 함께 짜증 난 나의 내면의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잠에서 깬 아버지가, 혹은 보다 못한 어머니가 안마를 그만 하라고 할 때까지 안마를 멈추지 못했던 것은 아마도 아버지의 가장으로서의 막중한 책임감과 노고에 대한 나의 최소한의 예의이고 감사였던건 아닐까. 그런 내가 조금씩 철들어가며 안마를 하는 동안 잠이 들어버리시는 아버지를 볼 때면 고되었을 하루가 고스란히 느껴져 애잔한 마음이 들곤 했다.


어릴 때 나는 뉴스가 참 싫었다. 일기예보는 더더욱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매일 집을 짓는 현장에서 일을 하시는 아버지께 일기 예보는 더없이 중요했을 것이다. 아마도 아버지께 일기 예보는 개인 비서 정도의 자격이지 않았을까. 아버지와 나에게 극명하게 다른 위상을 가진 일기 예보가 여러 가지 느낌으로 오랜 시간 동안 내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은 내 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공간 때문이었으리라. 어쩜 나도 모르는 사이 나에게도 아버지처럼 일기예보가 중요했을지도 모르겠다.


싱그러운 느낌과 함께 늘 조심스럽게 존재를 내뿜던 그것은 애잔함이었고 이제는 그리움이 되었다. 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내 아버지 말이다.




[photo by 짝꿍]




#강원도 #강릉 #날씨 #뉴스 #월화의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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