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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음부터 잘 키우자 Jul 06. 2021

몽룡실. 자존감의 근원

여행 정보 없는 여행 책 16

오죽헌의 안채에 들어서면 나무 기둥과 흙벽, 마루, 기와에서 고즈넉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옛날 나의 외할머니가 '정지'라고 불렀던 부엌이 안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반가운 마음에 들어가 보니 아궁이에 가마솥이 걸려있는 모양새가 예전 나의 외갓집과 똑같았다. 그리고 또 똑같은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부엌 뒷문으로 연결된 너른 그러나 무언가 가려진 듯하고 집주인에게만 허락될 것 같은 뒷마당이 그것이다. 뒷마당에 들어서니 깻잎을 한가득 담은 광주리를 들고 계신 외할머니가 나를 부르며 손짓하는 것 같았다. 처음 들어와 보는 오죽헌의 안채에서 오래전 나의 외갓집에서 느꼈던 편안함과 함께 그리움이 몽실몽실 피어났다. 복원된 문화재이니만큼 잘 정돈되어 있고 사람들의 발길도 이어지니 외로워 보이지는 않아 다행이다.


안채의 왼편에는 별채가 있는데 이 별채가 바로 신사임당이 율곡 선생을 낳은 몽룡실이 있는 곳이다. 신사임당이 새벽에 용이 방 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그날 그 방에서 율곡 선생을 낳았다고 해서 '몽룡실'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꿈 이야기와 방 이름 이야기를 율곡 선생은 얼마나 많이 들으며 자랐을까. 이 이야기에 힘입어 율곡 선생이 좋은 인품을 가진 것인지, 율곡 선생이 좋은 인품을 가져 몽룡실이 유명해진 것인지 잘 모르겠다.  


태어난 집에서 살고 태어난 방에서 노는 건 어떤 기분일까?


40년도 더 전에 여수에서 한 아기가 태어났다. 마당에 단국화가 한가득 피어있던 10월 가을날이라고 했다. 그 시절 젊은 남편은 회사일로 여수에 여러 달 머물렀었다고 한다. 먼저 여수에 도착한 남편이 보내준 편지에 적힌 주소 한 장을 들고 젊은 아내는 남편을 찾아 여수로 갔다고 했었다. 그리고 몇 달 후 아기가 태어났다. 70년대 집이니 허술했을 것이고, 완전히 정착한 것도 아니고 임시로 거처하는 회사 근처의 집이니 허름했을 터. 새벽에 갓 태어난 아기가 오들오들 떨며 많이도 울었다고 했다. 문제는 외풍. 예나 지금이나 첫 아이를 대하는 부모들의 태도는 늘 우왕좌왕, 어찌해야 하나 몰라 유리그릇 다루듯 애를 먹었을 것이다. 그날 새벽으로 막 아버지가 된 젊은 남편은 시장으로 달려가 집 채 만한 이불을 사 와서 3kg도 안 되는 작디작은 아기 몸을 둘러 성을 쌓았다고 한다. 그러자 아기가 울음을 그치고 잠이 들었다고 한다. 그 아기가 바로 나다.


나는 이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듣고 또 들으며 자랐다. 아버지는 다정한 말 같은 건 뭔지 잘 모르는, 그저 집안 살림은 어머니에게 다 맡겨놓은 채, 돈만 열심히 벌어 가족들 건사하느라 바쁘신 분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내 생일쯤이 되면 늘 하던 이야기가 바로 내가 태어난 날 이불을 사 왔다는 이 이야기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 이불을 덮을 때마다 나는 기억도 없는 그 여수의 그날에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가 하고 또 하는 그 이야기가 싫지 않았다. 좋았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부터 내가 사랑받았음을 느끼게 해 주는, 그저 무뚝뚝한 아버지도 나를 많이 귀하게 대해 주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내 자존감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야기로만 듣던 내가 태어난 그 집, 그 방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어머니 기억 속에도 가물거리는 곳이라, 분명 재개발이 되었을 곳이라 이제는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어 내내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 태어난 집에서 살고 태어난 방에서 노는 기분이란 자궁 속 양수에서 동동 떠 있는, 포근히 감싸여 있는 느낌이 아닐까. 여수에 가족 여행을 갔던 어느 날 나는 여수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 젊은 날 내 아버지가 머물렀던 곳, 젊은 어머니가 아버지를 찾아왔던 그곳, 나를 낳았던 곳이 바로 이 어디일 거라는 생각으로.


몽룡실에 담겨 있는 신사임당의 율곡을 향한 넉넉한 모성 위에 내가 태어난 여수의 그날과 이불과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진다. 몽룡실을 둘러보고 안채를 둘러보는 동안 내내 여수의 그날과 이불과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느낌이 남아 있어 편안함과 그리움과 외로워 보이지 않아 다행이라는 느낌이 드나 보다.


몽룡실에서 태어난 율곡 선생은 배롱나무와 마주하고, 안채의 마당을 뛰어다니고, 아기를 낳은 신사임당을 위해 미역국을 끓였던 가마솥에서 지은 밥을 먹고 자랐을 것이다. 오죽헌과 그 안의 몽룡실은 율곡 선생에게는 어린 날의 기억이었고 어머니였으리라.


어머니 신사임당이 하늘로 떠난 뒤 몽룡실을 드나들 때마다 율곡선생은 어머니의 숨결을 느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그리움만큼이나 더 단단해지는 것은 사랑받은 기억, 존재의 근원, 자존감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몽룡실이 율곡 선생의 큰 인품을 만들었나 보다.




[photo by 짝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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