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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chang 강연아 Jul 19. 2022

15년 넘게 귀촌생활하는 한국.인도 두 친구 이야기,

남편의 친구 이야기

다음은 《인도에서 공부하기》 밴드에 올린 남편의 글입니다. 전 서울에 와서는 웬 일이 그리 많은지 글을 쓰지 못하고 있지만  틈틈히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열독하고 있습니다.

괜히 한국에서는 모든 것이 정신없이 바쁘게 흘러갑니다. 곧 델리로 돌아가서 심심한 일상이 오면 정리해 볼까요?ㅎ


****


한국에서 인구 20만명 규모의 중소도시 외곽 그리고 인도 서해안 도시에서 60km떨어진 시골마을에서 각각 17년, 15년 귀촌생활하고 있는 친구이야기입니다. 친구라고는 하지만 모두 회사 동료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한국친구는 경력사원으로 입사했기에  햇수로는 4년 후배이지만 나이는 2살 차이니 동년배나 다름없습니다. 인도지인은 뱅갈로로 주재원 발령받아 왔을 적에 사내 전략기획을 맡았던 IIT/IIM 나온 수재였고 나이는 열살 훨씬 넘게 어린 친구입니다. 본인과는 코드가 잘 맞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는데요... 초창기 인도정착하는데 그로부터 많은 조언.도움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 친구는 서울 나들이가서 시간이 맞으면 점심 함께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나누던 편안한 관계였습니다. 다국적 통신회사 임원으로 스카웃되어 한때는 잘 나갔었는데... 대인 관계에 엄청 스트레스받고 건강에도 안 좋았던 것 같습니다. 결국 2005년경 회사그만두고 지방에 정착한다는 소식까지 듣고나서 그 이후 어찌하다가 소식이 끊겼습니다. 지난주 서울의 다른 모임 친구와 이야기 나누다가 우연히 그에 관한 소식을 전해 듣고 바로 카톡으로 연결, 두시간 가까이 전화통을 붙잡았습니다. 17년 세월을 넘나들면서, 많은 이야기을 나누었습니다.^^

귀촌한 인도친구와는 본인이 뱅갈로르에서 델리로 발령받아 옮긴 후에도 연락처를 가지고 있었기에 가끔이지만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아이들 크는 이야기, 사업 이야기 등 개인사를 서로 주고 받은 사이입니다. 그는 10여년전 구르가운 우리집에도 들렀었고 노이다 사업장에도 찾아왔었지요. 본인의 인도살이를 나름 소상히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지인입니다. 그는 대기업 Infosys와 L&T로 옮겨서 유럽주재원 근무하다가 뜻밖에도 귀촌생활에 꽂혀서 회사생활 정리하고는 2007년경 시골로 내려갔으니... 그 당시 35살, 미래가 대단히 촉망되던 젊은이였습니다.


***

1. 귀촌 생활 17년째인 한국 친구와 장시간 카톡 통화한 후, 인도에서 15년째 시골 생활중인 인도친구에게 나이 차이는 나지만 자네와 비슷한 시기에 귀촌생활하는 서울친구 이야기니, 들어보시게...하면서 보낸 메시지입니다 :


"이틀 전, 서울에 근무할 적에 몇 년 동안 본인과 일했던 동료 한국인 친구와 아주 오랜 세월 지나서야 연락이 닿았습니다.

< 한국, 중소도시 외곽에 정착하여 소규모 작물재배 그리고 작가생활을 병행하고 있다 >


그는 현재 중소도시 외곽에서 17년 동안 소규모 농사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의 귀촌 생활은 인도에서 본인이 사업하고 있는 기간과 거의 맞먹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다국적기업의 임원급으로 있을 때 스트레스와 건강상의 문제를 많이 겪었습니다. 언젠가 그는 가족과 함께 농사를 짓기로 결심했답니다. 그는 자급자족 농사를 위해서 소규모농사를 한다고 했어요. 귀촌이라 정의하더군요. 더 큰 규모의 농사는 엄청난 자본집약적이고 노동력이 필요한 귀농사업이라 구분합니다... 또 다른 종류의 사업이죠^^


그는 여전히 저축 계좌에서 돈을 뽑아 쓰고 온라인 배송을 통해 적은 돈을 벌기도 하며 작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물 재배기술 + 농촌 생활 정착 방법에 관한 2권의 책을 출판했습니다. 그는 시골 생활에는 돈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국민연금을 최장기 풀로 들었기에, 연금만 가지고도 귀촌생활에 드는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아쉽다면 과수원 2천평 (직접 재배하지 않는다고 함) 그리고 집과 소규모 작물 재배용 300평을 그 당시 시세로 6억원 정도 들었는데... 지금도 거의 그 시세 그대로라고 합니다.^^  함께 귀촌을 꿈꾸던 친구가 귀촌 포기하고는 그 돈으로 서울 집을 샀는데, 시세가 4배 이상 올랐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친구는 현재의 귀촌생활 덕에 건강도 좋아졌고 자기 하고픈 일들도 손에 익어서 이곳을 떠날 생각이 아예 없다고 합니다. 작물재배 도사가 되어 주변에게 도움주면서 책까지 냈으니 농사짓는 작가로서 자기만의 영역을 키워 왔습니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고, 잃는게 있으면 얻는게 있게 마련입니다.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개척해 온 그가 정착과정에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됩니다만, 이제 그 고비를 넘긴 듯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뿌듯한 심정입니다.


그는 검소하고 소박한 생활로 농사 생활이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조만간 한국에 방문하면, 그를 찾아가서 만날 생각입니다.^^


인도 시골생활과 한국 친구의 귀촌생활이 겹쳐서 보입니다. 정말 우연의 일치네요."


***

위에 인도친구에게 비슷한 시기에 귀촌생활 시작했다는 한국 친구 이야기를 전해준 후, 그로 부터 받은  메시지입니다 :


2. 인도친구로 부터 받은 답신 메시지>>


" 당신의 친구에 대해 알게 되어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가 여전히 그의 선택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을 들으니 기쁩니다. 빠르고, 부유하고, 편리하고, 흥미로운 도시 생활을 포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특히 교육 받고 성공한 사람들에게요.


시골 생활은 쉽지 않지만, 그에 따른 보상도 있습니다.


비록 우리 가족이 지금 15년 넘게 시골과 마을 환경에서 살고 있지만, 나 자신은 결코 활동적인 농부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마을이나 도시와 충분히 가깝게 지냈는데, 가능하면 두 아이들이 좋은 자연환경과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아이들이 커서는 훌륭한 기숙학교에 보냈지만, 그곳 역시 놀랍도록 개방적이고 아름다운 시골 환경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대기오염과 소음, 혼란스러운 대도시로 부터 멀리 떨어져 지냈습니다.

마을.귀촌생활은 비용이 당연히 훨씬 덜 들고 유혹과 산만함이 더 적습니다. 우리가족은 우리의 욕구를 제한적이고 단순하게 유지했습니다. 저 자신도 시골에서 사회사업과 NGO사업에서 활동했고, 나중에는 정당사업에서도 활동했고, 인도의 여러 지역을 여행했습니다. 저는 또한 틈나는 대로  가르치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주로, 저는 독립적이고 자유롭고 활동적이며 합리적으로 행복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삶은 지나치게 바쁘거나 혼란스럽거나 피상적인 일 없이 충분히 흥미로웠습니다. 물론 우여곡절도 있었고, 지금의 코로나 역병 등 몇몇 위기 상황하에서도, 건강과 돈에 관해서는 현명히 대처하였기에 다해히 지금까지는 잘 해결되었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지켜봅니다."


< 인도, 서해안 따라 도시에서 60km떨어진 곳에서 정착한 인도 친구. 그는 농사를 짓지 않았다고 한다. 자녀에게 대도시보다 공기 좋고 인심좋은 시골에서 자연과 대하면서 바른 심성을 키우려는 부부의 성향이 맞아 떨어진 것 같다. >


*

{그와 통화를 하면서 커가는 아이들 교육비 등을 염두에 두면 자신이 다시 사회생활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화사에 들어갈 수도 있고 창업도 방법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만, 생활패턴이 상이한 대도시로 가는건 상당히 꺼리는 듯 합니다 .


회사 그만둘 적에 모아준 돈으로 시골에 정착했고 그간 돈때문에 맘 고생한 적은 없다고 말합니다만... 왕성한 사회생활할 50대 초인 그는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은 듯 합니다. 이번에 날 잡아서 그의 고향에 며칠 여행 일정을 잡았었는데요... 아쉽게도 몬순 폭우 홍수 등으로 미루게 되었습니다. 날 다시 잡는대로 꼭 다녀올 생각입니다.}


***

#인도에서공부하기 #한국인도귀촌친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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