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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chang 강연아 Aug 12. 2023

인도상류계층의 미국이나 영국 초일류대학 입학방법

그들만의 리그

그제 사진 전시회의 개막 초대장이 왔기에 지인을 만나고자 참석했습니다


인도지인 중에서 예술 분야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 은근히 많습니다. 전시회가 있으면 개막 당일날 초대를 합니다. 시간이 있거나 전시 그림이 괜찮겠다 싶거나 지인 전시회라면, 웬만하면 찾아가곤 합니다.


델리 동남부의 부촌인 Defence Colony에 위치한 갤러리는 진입로가 좁은데 많은 손님들의 차들로 북새통을 이룹니다. 간신히 주차하고 들어서니 참석한 손님들 옷차림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고급 사교모임장에 왔나 싶었습니다. 와인과 핑거푸드들이 서빙되고 있었고... 입구에 남편의 지인이 있어 인사를 나눴더니만 EV(전기차) 포럼 대표로써 알고보니 그의 12학년 딸 작품 사진전이었습니다. 작가인 그의 딸과 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알고보니 대입을 앞둔 딸과 친구들의 작품 데뷔전이더라고요.

아~ 그렇습니다. 갑자기 십수년전 큰 아들 때와  7~8년전 막내아들 때의 초대장 받았던 것이 떠오릅니다. 막내아들 동년반 여학생은 인도의 대기업 총수의 딸이었습니다. 딸의 인도고전 춤 공연을 인도의 몇번째 가는 크고 좋은 공연장에서 펼쳤습니다. 공부에 여념이 없어야하는 12학년인데 웬 춤? 웬 춤 공연? 팜플렛만 보면 전문 춤꾼의 공연으로 여겨질 정도로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결혼식 초대장처럼 빨간 바탕에 금색 두터운 초대장이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네요. 그 여학생은 공부도 잘하고 여러 방면에 재주가 많은 재원에다가 부모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맞춤형으로 잘 컸습니다. 우리 막내 공부해야되는데 공연 구경갈 학부모가 아니었기에 가진 않았습니다만 초대장 하나로 압도하던 고급스러움! 잊혀지지 않습니다.

 여학생은 그러다 예일대에 입학을 했고 평소 둔하다고 얘기들었던 오빠는 어디갔냐고 물어봤더니 역시 예일대라고 하더라고요... 기부금 입학으로 간 듯 합니다. 누이좋고 매부좋은 케이스지요!


큰 아들때도 웬 중요한 시험기간에 미술전시회를 한다던 여학생이 의외였던 기억이 납니다. 왜냐구요?전시회 때문에 수학시험을 나중에 보게되니 착하고 우수한 우리 아들에게 기출문제 좀 알려달라고 하였나 보더라고요. 엄마... 이것은 아닌데... 하면서 제게 얘기 하던 큰 아들이 생각납니다.

당시 도저히 공부하는 학생으로서는 완성할 수 없는 듯한 큰 작품들이 제법 걸려 있었어요. 감탄사를 연발했더니 선생님께서 많이 도와주셨다고 순진하게 얘기하더라고요.ㅎㅎㅎ


지금 돌이켜보면, 대학입학 전형때, 교외활동 CAS (Creativity, Activity, Service)실적으로 삼고자하는 전형적인 예술 활동들입니다. 고만고만한 교외활동도 참가하는게 쉽지 않은 터에, 이들은 차별성을 크게 부각시킵니다. 이번 사진 전시회 때도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지요.ㅎ

영국에서 학교를 다닌다고 하는 그 여학생 또한 꽤 성숙된 자태로 설명도 잘합니다.

사진전은 가면과 빈민가 아이들을 소재로 다루었습니다. 익명성과 프라이버시를 위해 가면이란 도구를 썼고 빈민가 아이들의 최소한의 삶의 터전을 강조하면서 이들의 꿈에 날개를 달아주고자... 사회적 후원을 얻고자 작가의 창의성을 카메라에 담았다고 하는데요... NGO와 연계된 전시회인 걸 보면, 부모의 후광이 상당히 영향을 끼친 것으로 여겨집니다.

세월은 흘러갔지만, 인도 부모들의 열성적인 자녀 교육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


복잡한 실내를 나와서 입구쪽에서 초면의 예술가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눈에 띄는 복장의 부인이 입장하다가 눈을 마주치며 반가워합니다. 잠시... 얼굴이 낯이 익기는 한데... 어리둥절해있는 내게 형준 엄마 아니냐?며 자기는 아만 엄마라 합니다.

아... 막내아들과 경쟁?관계에 있었던 1년 선배의 어머니 입니다. 아들이 좋아했던 테니스와 바이올린에서의 경쟁관계였는데 막내아들보다 1년 선배라 그 아이가 주장도 맡고 해야하는데 실력에 밀리니까? 곤혹스러워 했던 기억도 나고 아버지가 금융 투자분야에서 잘 나가던 사람으로 부티가 좔좔 흘렀던 것이 생각납니다.


아만이 12학년때 오케스트라 공연에서는 우리 아들이 리더의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그의 부모가 팜플렛 비용을 거의 부담했고 대학입학을 목전에 둔 터라 리더의 자리를 양보해 주면  좋겠다는 선생님의 부탁이 있었거든요. 이제 먼 과거의 일입니다. 그는 뉴욕에서 공부를 마치고는 그곳에서 펀드매니져로 잘 다닌다고 합니다.


걱정하나 없는 아만 엄마는 예전보다도 더 고와졌습니다. 우아한 복장으로 나타나 그들만의 리그에 속하는 이들과 인사를 나누며 축하해주더군요. 중에 사진을 보내주니 8년 만에 만난 것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그리 기억력이 좋은지요? 울 아들 이름까지 기억하는 것을 보고 깜놀했습니다.

이날 새로이 예술가 몇 분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들과의 인연은 어떻게 전개될지요?? 우리 부부의 인도 탐험은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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