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봄 일본 HR 컨퍼런스 강연
코로나19로 인한 세계적인 위기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변화가 일상이 되어버린 상태를 뉴노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BCG의 자료에 따르면, 9.11 테러로 인해 항공 보안이 엄격해지고,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여성의 노동 참여가 늘어나고, SARS 이후 전자상거래가 늘어난 것처럼 위기 상황은 사람들의 가치관과 일하는 방식에 송두리째 변화를 가져온다. 코로나19 역시 위 사례들처럼 큰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다.
기업은 이러한 변화를 이끌기도 하고, 변화로 인한 타격을 가장 많이 받기도 하는 조직이다. 2020년 봄, 일본 HR 컨퍼런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 세션은 새로운 시대의 '관리직'이 수행해야 하는 역할과 새로운 교육 방식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본 세션에서 관리직이란 경영자의 입장에서 사업과 조직 전체를 관리하는 사람을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위에서 원하는 목표를 그대로 달성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에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서 기여하는 사람을 관리직으로 본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는 과장 이상을 관리직으로 보고 있지만, 직급에 상관 없이 전사적으로 일어나는 변화에 대응한다면 그 사람은 관리직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세션에서는 뉴노멀로 불리우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관리직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무엇이고 관리직의 역량을 개발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하는지, 특히 온·오프라인 교육 방식 선택과 구성 방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소개하여 도움이 되었다.
코로나 상황은 기업과 기업을 이끌어 가는 관리직들에게 많은 과제를 부여하고 있다. 이전보다 훨씬 빨리 디지털화 등 다양한 변화가 진행되었고, 특정한 니즈의 증가 또는 감소로 인해 전략의 방향이 급격하게 변화되기도 했다. 또한 이동과 접촉을 줄이는 방향으로 일하는 방식이 변화되었고, 다양한 제약과 위기 속에서 일이란 무엇인지, 우리 회사의 사업은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관리직에게 더 요구된 역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사업환경·전략의 변화에 조직을 적응시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일하는 방식의 변화에 조직을 적응시키는 것'이다.
첫 번째로, 사업환경·전략의 변화에 조직을적응시키려면 외부의 정보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회사와 자기 부서의 존재의의를 바탕으로 어떤 미래를 만들어내고 싶은지 전략 스토리를 그려내고, 조직에 필요한 변화를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 과정에서 두 가지 중요한 개념이 제시되었는데 바로 '기술적 과제'와 '적응 과제'라는 개념이었다. 기술적 과제는 현재의 기술이나 지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지만, 필요한 기술이나 지식을 도입하면 해결되는 과제를 말하는 것이며, 적응 과제는 기존의 사고 방식으로는 해결이 어려워 가치관이나 신념의 일부를 변경 혹은 제거해야하는 과제를 말한다. 특히 환경과 전략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적응 과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조직의 변혁을 효과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적응 과제를 기술적 과제로 잘못 받아들이면 리더십 실패가 일어나기 때문에, 관리직들은 어떠한 과제를 대할 때 기술적 과제, 적응 과제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하는 자세를 키워야 한다. 적응 과제는 외부의 시스템이나 스킬을 차용해서 바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갖고 있는 사람이 직접 해결해야 하는 과제이다. 그런 면에서 적응 과제를 잘 다루는 관리직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관리직들이 자신만의 가치관을 정립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변화에 따라 기업들이 직면한 과제를 맥킨지 7S를 활용해 분석한 사례도 소개되었다. 어떤 것을 적응 과제로 보고, 어떤 것을 기술적 과제로 볼 것인지 실제 사례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일하는 방식의 변화에 조직을 적응시키기 위해서는 원격 업무와 온라인 환경에서 어떻게 조직을 이끌어 갈 것인지를 다루었다. 사무실에서 직접 대면하고 업무를 할 때는 굳이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구성원들의 상태를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었지만, 직접 눈으로 볼 수 없는 온라인 환경에서는 문맥과 분위기 파악이 어려워졌다. 보이지 않으니 혹시 일을 안 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지고, 그러다 보니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관리하려 하는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거나 아니면 오히려 포기하고 방치해 버리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런 환경에서는 어느 때보다 조직의 존재 의의를 설정하고, 만들어 가고 싶은 조직 문화를 바탕으로 비전과 방향성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외부 환경이 아닌 내부에 집중해야 한다. 또한 제약 조건 안에서 어디를 관리하고, 어떤 부분을 임파워먼트 할 것인지도 조직의 방향성에 따라 설정해야 한다. 신뢰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조직원들이 심리적 안전감을 느끼며 일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하며, 주어진 일을 수동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왜 일하는지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하고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발표자는 코스트는 낮추고 성과는 높이는 등 다양한 모순을 양립시켜 나가는 등, 모순을 양립시켜 나가는 과정이 경영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이와 함께 관리직이 대응해야 하는 세 가지 모순을 제시하였다. 첫째, '자기 자신'의 모순이다.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과 현실 사이에는 끊임 없는 모순이 발생하는데 이는 성인 발달 이론의 테마이기도 하다. 둘째, '사업'에 있어서는 조직의 현실과 목표로 하고 있는 지점 사이의 모순이 발생한다. 셋째, '사람'에 대한 모순이다. 사람들을 조직의 방향에 따라 통일된 모습으로 끌고 가면 사고가 획일화되어 조직이 경직되고, 사람들의 개성을 살리려다 보면 다양하고 창의적인 조직이 될 수는 있지만 조직의 전략에 맞춰 관리하기가 힘들어 진다.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우프헤벤의 세계관, 즉 헤겔의 변증법적 사고가 필요하다. 모순되어 보이는 것들이 다른 차원(한 차원 위)에서 보면 양립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 부서와 다른 부서 사이의 모순이 생겼을 때 그 둘의 이해관계를 넘어선 새로운 관점을 도입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관리직 육성의 설계 방향 역시 이 세 가지 모순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설정하였다. 자기 자신의 양립을 위해서는 환경순응형에서 자기주도형으로 변화할 것을 강조했다. 로버트 키건의 성인발달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성장함에 따라 외부의 기대에 초점을 맞추어 행동하던 것에서 자기 자신에 초점을 맞추고 자신의 주관에 따라 결정을 내리고 행동하게 된다. 이러한 자기주도형 지성은 외부의 자극으로 변화할 수 없고 인생의 각성 포인트가 있어야 변화할 수 있다. 각성 사건이 없다면 주체의 객체화(객관화)를 통해 변화를 도모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가치관을 밖으로 꺼내 관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사업의 양립 역시 환경순응형에서 자기주도형으로 변화하는 것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다. 환경순응형 사업이 마켓의 니즈에만 대응하는 것이라면, 자기주도형 사업은 '이런 시장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자신들의 사업이 벌어지는 생태계 자체를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다. 인간관에 있어서 역시 자기주도적 가치관이 중요했는데, 사람을 기대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으로 보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고 했다. 사람을 자신만의 비전과 개성, 강점을 가진 존재로 보고, 한 명 한 명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조직으로서는 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사명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관리직의 경우 직급이 높아지고 역할이 커질수록 정신적 성장에 대한 필요성이 커진다. 이를 위해 관리직 육성 프로그램의 방향은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과 이해를 할 수 있도록 설정해야 한다.
관리직 육성 전략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크게 다섯 가지 요소를 검토해야 한다. 교육 대상과 교육 시기에 있어서는 승격 타이밍에만 그해에 승격한 관리직을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관리직을 포함하여 1년에 한 번은 모여서 교육할 것을 제안했다. 코로나를 계기로 변화에 잘 대응하는 조직으로 만들어 가야하기 때문이다. 특히, 1년에 한 번 관리직들이 모여서 연수를 하게 되면 주도적으로 자신의 업무에 대한 과제를 설정하고, 경영자와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중요하다.
1년에 한 번, 관리직들이 모이는 연수에서는 '지금 우리 조직의 전략이 어떻고, 실제로 자신이 맡은 업무에서 현장 상황이 어떤지에 대한 인식 공유, 자기 자신은 어떤 적응 과제에 대응하고 있는가'라는 주제로 워크숍을 진행할 것을 추천했다. 워크숍을 인사 부서나 기획 부서에서 직접 진행하다 보면 평가를 신경쓰느라 하고 싶은 말을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외부 퍼실리테이터를 통해 안전하게 대화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 좋다고 한다.
기존의 기업 교육에서 지식이나 기술을 다루는 연수가 주를 이루었다면 이제는 적응 과제를 다루는 연수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적응 과제를 다루는 연수에서는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한 부끄러운 이야기까지도 꺼낼 수 있어야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 진다. 예를 들어 부하가 자기 자신보다 뛰어나서 화가 난다는 관리자가 교육에 참가한 적이 있었는데, 이런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부끄러운 이야기라 어디 가서 속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관리직들이 안전하게 터놓고 속내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어렵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하더라도 그들이 당장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맥락을 파악하고, 스스로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해야 하며, 어떻게 변화해 나가야 할지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기다려 주자. 최소한 3개월 이상의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변화해 나가고, 그러한 변화에 적응할 수 있게 지원해 주어야 한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 교육이나 집합 교육이 비대면·온라인 교육으로 많이 전환되곤 했는데, 발표자는 온라인 교육이나 e러닝이 교실 연수의 대체제가 아님을 강조했다. 시간과 장소의 동기화에 따라 교실에서 진행하는 대면 교육, 온라인 실시간 교육, e러닝에 차이가 있는데 각각의 강점을 살려서 종합적으로 이를 활용해야 한다.
다양한 연수 방식을 선택할 때 앞서 다루었던 기술적 과제와 적응 과제라는 관점에서 고려하면 도움이 된다. 스킬이나 지식을 습득하는 기술적 과제를 다루는 과정이라면 e러닝으로도 충분히 교육이 가능하며, 온라인 교육을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적응 과제를 다루는 교육이라면 교실에서 하는 대면 교육이 가장 효과적이며, 중간 피드백이나 사후 점검 과정에서는 실시간 온라인 과정을 활용하는 경우에도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봄에 열린 일본 HR 컨퍼런스를 들을 때만 해도 코로나 사태가 터진지 3~4개월 정도가 지난 시점이어서 코로나로 인한 변화가 아직 낯선 시점이었다. 오프라인으로 열릴 예정이던 컨퍼런스가 온라인 실시간 중계로 바뀌고, 줌 웨비나를 통해 컨퍼런스에 참가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경험이었다. 포스트 코로나를 상상하던 2020년 5월에는 '포스트 코로나'가 2020년 하반기나 2021년 정도라고 예상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with 코로나라는 말이 더 익숙해질 정도로 코로나와 함께 하는 생활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5월에 열린 컨퍼런스에서 온라인 교육과 오프라인 교육을 혼합하는 방식에 대한 소개를 들으면서도 '그래도 가능하면 오프라인 교육이 좋지' 하고 마음 한구석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정말로 온라인 교육이 메인이 되고 오프라인 교육이 선택적으로 열리는 상황이 되었다. 6개월이 지난 강연이지만 다시 한번 브런치에서 이 강연에 대해 소개하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코로나로 인해 생긴 변화가 아니라 '사람'과 '사업'을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하고, 그에 따라 주도적으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다시 보아도 여전히 이 강연의 주요 내용들은 인상적이었고, 앞으로의 교육 계획을 구상할 때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정말로 우리 조직에 필요한 변화는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일을 통해 구현하고 싶은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을 HRD 담당자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