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Netflex 오리지널 다큐 <나의 문어 선생님>
장르 : 남아프리카 공화국 다큐멘터리 (2020)
감독 : 피파 에를리쉬, 제임스 리드
출연 : 크레이그 포스터
러닝타임 : 1시간 25분
친언니와 나의 문화적 성향은 매우 비슷하다. 그런 언니가 “이거 니가 보면 진짜 좋아할 것 같아! 근데 조금 슬플 수도 있어ㅎㅎ”라는 말과 함께 <나의 문어 선생님>을 추천받았다.
난 눈물이 많기에 슬프다는 얘기가 날 머뭇거리게 했지만, 보고 싶다는 기분이 드는 그날! 다큐를 봤다. 모두가 봤으면 하는 다큐니까 스토리는 생략하고, 떠오른 생각들에 대해 적어볼까 한다.
#1 사회에서의 ‘나’와 진짜 ‘내’가 서있는 이곳은, 평행선
졸업 후 사회에 나와 일한 지 4년을 가득 채웠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사회생활에서 나는 좁힐 수 없는 간극 즉, 사회에서의 ‘나’와 진짜 ‘내’가 평행선 위에 서있다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받아들이기까지는 쉽지 않은 여정들의 반복이었다. “왜 인생은 힘들어야만 할까?”라는 투정을 부려봐도 변하는 건 없고, 누구나 다 그렇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이 또한 인생의 과정이라고 느끼게 되니까.
다큐 속 주인공, 크레이그 역시 직업과 상황, 나이 모든 게 다르지만 나와 같은 번뇌에 빠진 게 아닐까? 어릴 때 자주 가던 바다는 어느새 중요치 않은 하나의 추억이 되어 버렸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 크레이그는 다시금 바다를 찾게 된다. 늘 그 자리에 있던 바다와 다시마 숲에서 크레이그는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을 그것, ‘문어’를 만나게 된다.
크레이그는 보여준다. 사회에 적응해버린 ‘어른’이 되어서 바다로 다시 돌아간다는 건 쉽지 않은, 어쩌면 두려운 도전이 될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곳에서 문어를 만났고, 인생이 바뀌었고, 색다른 경험은 내가 진정 누구인지 다시금 알게 해 주었다고.
가끔 어릴 적 꿈을 생각해보면 너무나 작고 소중하다. 한때는 내가 좋아했던 것들인데, 이젠 마음 한켠에 묻어놓고 잊고 사는 게 아닌가. 매일이 똑같은 일상은 우리가 좋아하는 걸 하기 위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살아가는 것처럼 느끼게 하니까...
다큐를 보면 티 없이 맑은 바다와 하늘,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 숨 쉰다. 마치 내가 이 우주에서 먼지 같은 존재로 느껴질 만큼 엄청나고 아름다운 광경들이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곳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느낄 수 있다면 우주먼지여도 좋을 것 같더라ㅎㅎ 가끔은 사회에서의 ‘내’가 진정한 ‘내’가 아닐지라도 우린 살면서 느끼고 경험해 봐야 할 게 무수히 많기에 내일도 모레도 영원히 만날 순 없지만 또 다른 ‘나’와 ‘내’가 같은 곳을 향해 걸어가는 이유이다.
#2 내 모든 걸 걸만큼 숭고한 ‘사랑’에 대하여
흔히들 부모님의 사랑을 조건 없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아직 아기를 안 낳아봐서 백 프로 공감할 순 없다. 하지만 언젠간 엄마가 될 나도 고양이를 키우며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해본 적이 있다.
중학교 때부터 10년이 훌쩍 넘게 키운 ‘키티’는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은 사랑을 줬던 존재가 아닐까 싶다. 인간의 마음은 강인하지만 한없이 나약하기도 하다. 어떤 존재에 책임감을 느껴버리는 순간, 무언가 나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순간, 그게 뭐든 온 마음을 쏟게 된다. 인간은 나약하지만, 그렇기에 삶이 아름답다고 나는 믿고 있다.
나에게 그런 존재가 ‘키티’였다면, 크레이그에게는 1년 동안 매일 바다로 나가게 한 ‘문어’가 바로 그 존재이다. 낯설어하는 문어가 자신에게 손을 내밀고 기댄 첫 교감의 전율은 아마 온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자연의 섭리에는 인간이 개입해선 안되지만 크레이그는 문어를 천적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그런 당연한 법칙조차 어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사랑이 그렇다. 앞뒤 생각도 못하게, 내가 물속에서 숨이 차 목숨이 위험해져도 지키고 싶은 그런 존재...
‘키티’를 떠나보낸 지금은 키티를 다신 볼 수 없을뿐더러, 사진조차 볼 수 없다. 보고 싶고 추억하고 싶어도, 내 마음은 아직도 슬퍼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경험이란 건 뇌리에 박히기 때문에 무서운 게 아닐까. 숭고한 ‘사랑’ 이란 걸 해봤다면, 그 누구라도 문어를 보면서 모성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거야... 그럴 거야... 지켜주고 싶고 슬펐을 거야... 마음과 마음이 오고 간 자리에는 행복도 있지만 결국은 이별해야 하는 슬픔도 남아 있다.
#3 이 세상 만물은 똑같다. 행복하고 싶고, 잘 살고 싶은... 그런 거?
이 세상 만물은 똑같다.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고, 잘살고 싶고, 오래오래 살고 싶고, 건강하고 싶고... 살아있는 생물이라면 예외는 없다.
크레이그는 문어를 관찰하며 놀라운 점을 발견한다. 지능이 높다는 문어는 생존본능은 물론, 교감을 하고, 재미를 알고, 치유를 알고, 재도약할 줄 아는 수준급 인생선배 같아 보였으니까...
문어는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줄 안다. 그것도 다양한 방법으로. 빨판에 조개껍질을 다닥다닥 붙여 연약한 몸을 숨기기도 하고, 먹물을 뿜어 도망가기도 하며, 가끔은 다시마 잎이나 바위에 몸을 숨기기도 한다. 가장 신기한 것은 주변에 맞춰 변화하는 몸의 색과 다시마를 흉내 내듯 우스꽝스럽게 두발로 걷는 문어였다. 우리도 매한가지. 살면서 배운 생존본능은 어느새 자기 방어로 자리 잡아 개개인의 성격이 만들어지듯이 말이다.
문어는 ‘재미’도 아는 모양이다. 물고기와 장난도 치고 처음 보는 크레이그와 교감하기도 한다.
문어는 ‘치유’도 할 줄 안다. 상어에게 내어준 한쪽 다리가 다시 자라고 건강해질 때까지 다소 우울하지만 침착하게 재도약을 기다린다. 스스로 치유가 되면 바위 밖으로 나와 다시 즐겁게 인생을 살아간다.
문어를 보며 깨닫는다. “나도 그래. 그냥 잘 살고 싶고,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고 싶은 거라고. 너처럼 말이야. 상처가 있어도 이겨내고, 나 자신을 적으로부터 보호하고, 그러다 언젠간 아이를 낳을 테고, 나의 소명을 다하고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그런 아주 자연스러운 인생이지”
다큐를 보고 떠오른 생각을 막연하게 써내려 왔다. 단연코 이건 나만의 생각이 아닐 거다. 아름다운 영상미에 빠져, 드넓은 바다 한가운데서 펼쳐지는 문어와 크레이그의 이야기를 보다 보면... 이게 바로 지구 어딘가에 살고 있는 ‘너’의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