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으로 살아남으려 했던 내가, 관계를 망치고 있었단 사실
나는 언제나 친절한 사람이었다.
사람들에게 상냥하게 굴었고,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주는 일이 없도록 신경 썼다.
겉으로 보기엔 이타적인 사람이었고,
실제로 그런 평가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 친절은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
“내가 이렇게 잘해주니까,
너도 나한테 똑같이 해줘야 해.”
“나는 너에게 실수하지 않을 테니,
너도 나한테 실수하지 마.”
내 친절은 일종의 조건이었고, 감정의 거래였다.
내가 기대한 만큼의 반응이 오지 않으면
서운했고, 그 서운함은 실망으로, 실망은 분노로,
그리고 분노는 ‘뒷담화’라는 방식으로 흘러갔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막대하거나 가볍게
대한다고 느낀 순간, 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흘렸다.
“그 사람 좀 못됐어.”
“생각보다 별로야.”
“괜찮은 척하지만 되게 자기중심적이야.”
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 사람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착각 속에 스스로를 올려세웠다.
나를 가볍게 대했던 그들에 대한 복수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그런 말을 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그들과 잘 지냈다.
“응? 걔 괜찮은데?”
“왜 그런 말을 해?”
“나는 좋던데?”
그 말들을 들을수록 나는 더 단호해졌다.
“아, 이 사람들도 똑같구나.
그 사람의 본모습을 못 본 거야.
내가 틀린 게 아니야.”
그리고는 그들과의 관계를 끊었다.
‘정리’라는 단어로 포장했지만,
사실은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쳐놓은 벽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내 안의 상처들을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들은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내 안의 오래된 상처였다.
나는 과거의 경험들 때문에
늘 나 스스로를 좋은 사람,
바른 사람이라는 이미지 속에 가두고 있었다.
그래야 사랑받을 수 있고,
그래야 버림받지 않을 거라 믿었으니까.
그 이미지에 균열이 생기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항상 내가 더 괜찮은 사람이어야 했다.
상대는 덜 괜찮은 사람이어야 했다.
그렇게 해야 내가 위태롭지 않다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뿌리는 불안이었다.
상처받기 싫어서, 버림받기 싫어서,
언제나 관계 안에서 우위에 서 있으려 했다.
무의식적으로 ‘사람 대 사람’이 아닌,
‘내가 더 괜찮은 사람’이라는 구도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걸 알아차린 지금, 더 이상
뒷담화로 나를 지키지 않는다.
대신 나에게 먼저 묻는다.
“정말 그 사람이 나쁜 거야?
아니면 내가 기대했던 반응이
아니어서 실망한 걸까?”
내가 그렇게까지 친절하려 했던 이유,
상대를 향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고
결국은 뒷담화로 흘러갔던 이유,
그 모든 게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결국 내 불안을 감추고
통제하기 위한 방어였다는 걸.
그리고 이제는 당신에게도 말하고 싶다.
당신도 당신만의 방식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나름의 방어를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방어가 정말 당신을 지켜주는 것인지,
아니면 더 깊이 다치지 않기 위한 피하고 외면하는 방식인지, 한 번쯤 조용히 들여다봤으면 좋겠다.
상대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내 안의 상처와 착각이 그들을
오해하게 만든 건 아닌지.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너무 많은 걸 참으며
오히려 나를 갉아먹고 있던 건
아닌지 관계는 정직함에서 회복된다.
그 정직함은 나에 대한 정직함에서 시작된다.
진짜 나를 지키는 일은,
상처받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왜 아픈지를 나 스스로에게
묻는 데서 시작된다는 걸.
"당신은, 지금 어떤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