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이별을 택하지 못한 마음에 대하여
죽고 싶다는 말은
죽겠다는 말이 아니다.
그 말은 대체로
살고 싶다는 말이다.
단지 이대로는 도저히 못 살겠다는 고백이다.
아무리 짙은 어둠 속에 있어도
그 끝에서 사람은
누군가를 생각한다.
죽음을 결심한 순간에도,
완전히 나 자신만을 위해 죽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죽음조차도 타인을 배려하며 머뭇거린다.
‘엄마가 너무 힘들어하지 않을까.’
‘남겨질 아이는 어떡하지.’
‘그 사람, 괜찮을까.’
‘장례는 누가 치러줄까.’
‘일이 너무 복잡해지겠지.’
죽음을 떠올릴 만큼 아팠던 그날조차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생각하며
죽지 못했다.
붙잡히는 게 너무 많아서.
너무 괴로운데
끝내 나 하나로 정리할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이란, 참 잔인하도록 따뜻하다.
그래서 더 버겁고 더 아프다.
그렇게
죽음마저 끝내 내 뜻대로 하지
못한 나는 살아남았다. 살아버렸다.
그리고 그걸 ‘살아냈다’고
말해야 한다는 사실이 참 무겁다.
누구도 이 마음을 함부로
가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마음은
“힘내”, “잘될 거야”,
그런 말로 닿지 않는다.
이건 버티고 또 버틴 끝에서
목숨 대신 남겨둔
‘미안함’과 ‘사랑’이 만드는 온기 없는 생존이다.
하지만 그 생존에도
가끔 이유가 생길 때가 있다.
무너지는 하루 끝에
누군가가 내게
“너 없어지면 나 진짜 안 돼.”
그 말을 하듯 눈빛을 건넬 때.
혹은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가던 하루가
아주 작은 다정함으로 덮일 때.
나는 오늘도 살아야겠다.
죽음조차도 남을 걱정해서 못 택한 내가,
어쩌면 그 마음으로 계속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가 누구보다 약하고
누구보다 단단하다는 걸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죽지 못하고 버텨온 하루,
당신은 이미 충분히 대단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