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다고 생각하면, 가벼워진다

붙잡지 않아도 괜찮은 것들에 대하여

by 케지


우리는 참 많은 것들을 쥐고 산다.

손가락 사이사이에 억지로 끼워 넣은 기억들,

그때 하지 못한 말,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

그리고 그때의 온도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힘을 주지만,

그 힘이 어느새 나를 조여 온다.

마음이 자꾸 무거워지고, 숨이 가빠지고,

내 안의 계절은 한 곳에 멈춰 버린다.


그러다 문득 생각해 본다.

이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

전부 사라진다면 어떨까.

애써 간직한 서랍 속 편지들,

다시는 읽지 않을 메시지들,

그날의 후회와 억울함,

그 사람의 이름까지

하나도 남기지 않고 전부 흩어져 버린다면.


이상하게도, 그 상상은 마음을 환하게 비운다.

숨이 들어오고, 가슴이 가벼워진다.

아, 이게 나를 막고 있었구나.

나는 잃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라,

놓는 법을 잊은 채 살아왔구나.


사라진다고 해서 내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것들은 내 일부였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남아 있고,

더 선명해지고,

더 자유로워졌다.


사라짐은 상실이 아니라 해방이었다.

손을 놓는 순간, 두 팔이 비워지고,

비워진 자리로 바람이 들어왔다.

바람은 나를 가볍게 하고,

가벼워진 나는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높이 날았다.


그래서 이제 나는 안다.

붙잡지 않아도 괜찮은 것들이 있다는 걸.

사라져도 괜찮은 것들이 훨씬 많다는 걸.


오늘도 나에게 이렇게 말해본다.

사라져도 괜찮아.

그건 잃는 게 아니라,

나를 살리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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