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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일라 Jun 16. 2022

사두증. 두개골조기유합증.

결론적으로는 두 번째 대학병원 방문에서는 두개골조기유합증은 아닌 것 같다는 소견을 받고 돌아왔다.

사두 소견은 보이는 것은 맞지만, 미용적인 문제니 나는 솔직히 아기를 헬멧으로 귀찮게 하고 싶진 않았다.

유독 첫째 아들한테는 모든 게 완벽한 아기라고 해주었던 남편이 뒤통수도 이뻐야 한다고 헬멧을 씌우자는 말도 거슬렸다. 왜, 딸이니까 이뻐야 하는 거야?

태명이 '치유'인 두 번째 아가 내 딸.

태어날 때부터 유독 왼쪽 귀가 말려 있었다. 워낙 고집스럽게 한쪽으로 잤다 싶었다.

머리도 좀 눌려 있었고, 눕혀 놓으면 자연스럽게 고개가 왼쪽으로 돌아갔다.

뒤통수가 이뻐야 된다고 계속 반대쪽으로 눕히는 버릇도 하고, 모빌도 갖다 놓고, 일부러 반대쪽에서 자꾸 말도 시키면서 버릇은 고쳐놨다 싶었다. 첫째만큼 이쁘게 머리가 동그랗게 돌아오지 않는 게, 둘째는 자연분만을 해서 그런가 싶었다. 첫째는 역아로 재왕을 했어야 했기에 태어나자마자 어쩜 그리 동글동글 하냐는 말을 항상 들었으니까. 커가면서 돌아오겠지, 아니면 헬멧을 쓰면 교정이 된다는 걸 알았기에, 특히나 아직까지 어디가 의심스럽다, 검사를 받아야겠다 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기에 그렇게 커다란 걱정이 있진 않았다. 6개월이 넘어가는 시점 영유아 검진에서 머리가 눌린 '사두증' 소견이 있긴 하나 크게 거슬리지 않으면 굳이 치료가 필요치 않고, 부모님이 신경이 쓰이시면 한번 큰 병원을 가보시란 말에 소견서를 달라 했다.  사두증이 심한 거라면 얼굴이 변형될 수 도 있다 하니 그 부분만 확실하게 알고 지나가고 싶어서 아산병원에 예약을 해두었다.


항상 가면 마음이 무거워지는 어린이 병원.

아기의 이름이 왜 네 글자냐고, 미국 이름이고 한국 이름을 붙여서 써서 그렇다는 설명을 간호사와 가볍게 나누며 진료를 기다렸다. 아픈 아기들을 많이 보시겠네요 라는 나의 말에 간호사는 특히 신경외과에 있다 보니 부모님들의 표정이 안 좋긴 하다는 대화 가운데, 전 미용 문제지만 정말 그렇겠어요 라는 입방정을 떨고 말았다. 사실 이 말을 하면서 순간 머릿속에 스쳐가는 여러 생각이 있었다. 어렸을 때 나는 원하는 것들을 갖지 못하는 좌절감을 맛본 이후로는, 원할수록 갖지 못하는 것만 같아서 내 마음에게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었다. 혹여나 이 어렸을 때 나를 괴롭혔던 저주가 다시 돌아오진 않겠지.

호명이 되어 들어간 방에서 교수는 간호사와 같은 질문을 했다. 아빠가 미국 사람이라 이름이 네 글자라는 말에 교수는 급 대화에 더욱 영어를 섞어서 쓰기 시작했다. 슬쩍 머리를 보더니 우선 엑스레이를 찍고 말하자 하였다. 겨우 6개월 좀 넘은 딸아이를 잡고 엑스레이를 찍었다. 방사선은 미량이라 하지만, 너무 작은 아기라 그것조차 싫었다. 조금도 '엥'하고 우는 소리도 마음 아파 남들은 하지 말라고 질색인 젖으로 매번 달래서 키우고 있는 딸인데.

1인 보호자밖에 안돼서 혼자 아기와 짐을 들고 이미 지치고 굳어가는 얼굴을 한 나에게 교수는 이상하다는 말을 했다. '아'라는 탄식밖에 못 내뱉은 나에게 그는 여기 '이건 엑스레이가 좀.. 근데 좀 뿌연 거 보이죠'라는 말을 하였다. 머릿속 안에 부지직 부서지는 소리가 나면서 급 뿌예졌다. CT를 찍어야 정확히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만약에 이게 그냥 사두증이 아닌 두개골이 먼저 닫히기 시작하는 조기 유합증이라면 결국 수술을 해야 한다. 심각한 수술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투로 얘기하였다. 6시간을 굶기고 수면마취를 해서 CT는 찍는다고 하였다. 말의 조각들이 머릿속을 빙빙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다음 방문 예약을 하고 나오는 나는 다급히 인터넷에 존재하는 모든 두개골 조기 유합이란 검색 결과를 눌러보기 시작했다.

왜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 소아과 의사들이 이 점을 잡아 내지 못했는지. 그래서 거의 7개월이 다돼가는 아기가 만약 수술이 필요하다면 내시경은 이미 늦고 신연기라는 두개골에 나사를 박아서 봉합된 곳을 늘려주는 수술을 받아야 하는 건지. 밑도 끝도 없는 죄책감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단순 유전자 돌연변이인 건지. 아기가 똑같은 자세로 뱃속에서 누워있었어서 그랬던 건지. 임산부가 담배를 폈거나, 배란기 유도를 하는 유도제를 썼을 때의 가능성도 있다는 말 등, 원인부터 찾아가며 다른 부모들의 수술일지를 하나하나 읽어가는 나의 오장육부는 조금씩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가장 확실했던 건 엄마가 된 후 가끔 매우 민첩하게 발동되는 촉에 의한 결정이었다. 뿌였다고 말한 엑스레이가 처음부터 잘 안 찍혔을 거라는 생각. 그리고 아닌 것을 확실하게 알기 위해서 너무 쉽게 아기가 힘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그래서 다시 찾아간 서울대 병원.

설마 했던 며칠의 시간 가운데서도 힘이 들었던 난 감히 아픈 아이를 가진 부모의 마음을 가늠해 볼 수도 없다. 왜 내 아이일까, 두려움.. 외로움, 그리고 매우 깊은 슬픔. 가장 순수하고 연약한 존재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아픔을 도울 수 없는 괴로운 자리. 매일 밤 똑같은 블로그 글을 읽고 또 읽었다. 왜 더 이 병에 대한 기록이 인터넷에 없는 걸까 페이지를 넘기고 또 넘겼다. 다들 어떻게 이 시간을 견디고 지나갔는지 조금이나마 알고 싶었다. 그리고 찾은 모든 글들과 기록은 위안이 되었다. 만난 적 없는 이들에게 위로를 얻고, 친구들과 가족의 걱정과 기도가 차곡차곡 쌓여 무너져가는 마음을 지탱해 주었다.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을. 두 아이의 건강한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를.

하지만 또 내 아이는 아니라서 다행이야 라고만 생각하기에는 공평하지 않은 세상 모든 것들이 또 야속하기만 하다. 나는 아니지만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것만 같은 절망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값싼 동정의 말 한마디일 까 봐 차마 입도 안 떨어지겠지만. 진심으로 나는 같이 울어 주겠노라고. 헤아리지 못하겠지만, 나도 어떻게든 아파 보겠노라고.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인정하며 다시 회복하고 서로를 치유하며 일어서는 것. 결핍에 도래했을 때만 오는 조건 없는 충만함 속에 나의 아기를 넣어둔다.

건강만 해다오 엄마가 정말 잘할 게를 다짐해보지만. 이제 좀 한숨 돌리고 자보려는 새벽 두 시.

5살이 돼서도 수면장애로 짜증을 내며 깨는 첫째를 보고 있자니 산 넘어 산을 우리는 육아라고 부르기로 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이 간사한 사람의 마음이란 부모가 되고 나니 더욱 자주 맞닥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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