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에따라움직입니다
인스타그램에서 그런 릴을 본 적 있다.
놀이터에서 미국 유모차 부대 엄마들이 서로를 스캔하며 나와 맞는 짝의 엄마를 찾는 영상.
첫째 노아와 함께 나 또한 수많은 그녀들을 거쳐갔다.
아니 난 결혼하고서도 이렇게 또 ‘썸’을 탈 줄은 몰랐지.
일명 ‘Play date’는 한국의 ‘공동육아’와 같다. 공동육아가 답이다라는 말을 외치는 우리 한국 엄마들처럼 미국 육아맘들도 플레이 데이트를 깊이 애정 한다.
즉흥 만남과 충동적이지만 진심인 번호 따기. 그녀의 아이의 개월 수를 곁눈으로 가늠해보며 우리의 미래를 타진해 본다. 과연 우리 아기들의 낮잠 시간이 비슷해서 브런치가 가능할 것인가. 육아관이 너무 다르지 않고, 혹은 다르더라도 엄한 훈수는 안 놓을 타입인가. 촉감놀이라는 고된 노동의 양을 나눌 수 있을 것인가. 그녀가 미역 불려 눈썹에 붙인 샷 찍기 한번, 우리 집에서는 물감 손에 묻혀 찍기 한번.
아, 미국 맘들은 미역은 아니고 같이 치리오스라는 동그란 시리얼을 하이체어에 뿌려주는 정도 일듯 이긴 하다. 아무튼 같이 하면 혼자 하는 것보다 좋다. 말이 통하는 어른과 함께 이 행복한 고된 노역을 같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는 위안이란. 비록 아기가 컨디션이 안 좋아서 우아한 브런치는커녕 커피가 코로 들어가는 느낌에 시켜놓은 오믈렛이 다 식어버려도. 내 애가 좀 진정했더니 그녀의 애가 이제는 무슨 이유 에서인지(보통 애들도 나오면 힘드니 짜증을 낸다) 울어재끼면 아기띠 매고 쩔쩔매며 돌아다녀서 결국 기저귀나 꺼내 줄 때 얼굴 한번 보는 거 일 수 있지만 말이다. 아침이 되어 남편이나 아내가 출근을 할 때 육아라는 제목 아래 아기가 단 둘이 있는 그곳은 간혹 음소거된 공간인 듯하다. 사람 말을 걸 수 있는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 애기가 왜 또 우유를 게어내지 하며 굳이 답이 필요 없는 말도 하며 대답을 듯는것. 육아를 나도 너도 한다는 유대감을 느끼는 것.
서로의 육아 스타일이 익숙해지면 과감히 아이들을 돌아가며 몰아서 보육하기도 하는데, 많은 미국 가정들은 가족과 가까운 데서 거주하지 않기에 특히나 도움이 된다 했다. 아이를 단 몇 시간이라도 맡기는 시간에는 병원도 갈 수 있고, 밀린 업무도 볼 수 있다. 유독 그들은 데이트 나이트에도 이 찬스를 많이 쓰곤 했는데, 출산 후 부모가 겪는 변화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 관계 가운데의 다이내믹을 유지하기 위해 부부 단 둘만의 시간을 지키려는 노력을 많이 한다. 이런 네트워크의 무리들을 통해 알게 된 하이디라는 엄마는 결혼 전 뉴욕에서 모델 활동을 했었는데, 출산 후에는 근처 바닷가 옆 바에서 공연을 하기 위해 친구 엄마네서 3살짜리 아들을 재우기도 했다.
어떻게 커피 한잔은 했지만 서로 맞지 않음을 어떠한 소개팅보다 빨리 감 잡을 수 있었던 그녀들과의 만남들. 놀이터에서 도서관에서 심지어 마켓에서, 운동을 하고 나오던 파킹랏에서 주고받았던 번호들.
결국 2-3명의 엄마들과의 진득한 관계의 열매를 맺었던 첫째 미국 육아였고. 결국 네트워크까지는 구축하지 못했었다.
한국에서는 온고잉인데, 확실히 첫째 때만큼은 적극적이진 않고, 확실히 아파트 생활은 획기적이었다.
아파트 단지 내의 어린이집과 놀이터라는 합리적인 시스템은 안정적이고 자연스러운 네트워크를 만들어 주었다. 캘리포니아가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였다면, 한국은 캠퍼스 연애 느낌이랄까. 서로의 아이가 대충 몇 살인지, 몇 동에 사는 엄마인지 알지만 말 걸 건덕지가 없다면 부끄러워 시간도 걸리고 더 조심스러운 그런.
아무튼 그래도 꾸준한 마주침과 공통분모 가운데 찾아낸 숨구멍 같은 나의 공동육아 애인들은 정말...
부끄러워서 표현을 못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