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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Aug 29. 2018

조승연의 인문학 에세이 <시크하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아름다운 청춘은 이미 지나갔다. 예전에 어른들이 하시던 말씀처럼 마음은 청춘인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말이 점점 실감 난다. 지금 내 나이쯤 되면 무언가를 이뤘고 누리며 여유를 가질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여전히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간다. 20대에는 체력이라도 좋았지, 이제는 그것마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문득 서글퍼진다. 

언제나 스스로 중심에서 멀어졌다. 원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치열한 사람들을 보며 더더욱 밖으로 물러나며 살아왔다. 그런 행동이 멋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는 50% 겁쟁이였고 50% 이기주의자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계속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을 걸까.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조승연의 인문학 에세이 <시크하다>에서 찾았다. 프랑스 사람들의 삶과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물론 내가 사는 곳은 프랑스가 아니지만- 알게 되었다. 


프랑스 사람들의 소확행에 대한 에세이인 <시크하다>는 세계문화전문가인 조승연 작가가 프랑스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며 느끼고 겪으며 배운 프랑스식 지혜에 대한 이야기이다. 다른 나라, 다른 문화권인 프랑스 사람들의 삶이 과연 우리에게 적용될 수 있을까 생각했다면 <시크하다>를 통해 그런 선입견을 버리길 바란다.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거울은 어쩌면 우리와 반대 방법으로 살아가는 사람인지도 모른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나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보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때도 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고, 열심히 살고 있는데 늘 힘겨움을 느낀다면 이제는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시크하다>는 다양한 소주제를 가진 짧은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프랑스 사람들의 철학, 삶을 대하는 태도, 음식에 대한 자부심, 차가운 우정, 가족 관계, 연애까지 프랑스 사람들과 부딪히며 배우고 변화한 조승연 작가의 생동감 넘치는 글이 가득하다. 인문학 관찰 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은 <시크하다>는 인문학보다는 가볍게 읽을 수 있고 에세이보다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다른 삶의 철학을 가진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나를 다시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인은 '나'와 '우리'가 철저하게 다르다. ~ 프랑스인은 절대로 누군가와 새 가족을 이룬다고 해서 두 명의 '나'가 만나 '나'는 사라지고 '우리'가 된다고 믿지 않는다. 그냥 많은 '나'가 같은 공간에서 서로 필요할 때 돕고 같은 공간에서 살 뿐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가족은 나를 더 나답게 해주는 존재지, '나'를 묻어버리는 존재라면 절대로 가족일 수 없다고 판단해 무서울 정도로 빨리 내다 버린다. 내 주변의 프랑스인 중에는 동거하다가 이별하다가 이혼한 친구들이 있는데, 이별의 이유를 물어보면 대체로 이런 식으로 말한다. "그는 나를 바꾸려고 하는 사람이었어. 좋은 사람이기는 했는데."


프랑스인들의 삶의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크하다> 중 인상적인 부분은 죽음을 대하는 프랑스인들의 생각, 적당한 거리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차가운 우정 그리고 우리와는 조금 다른 성공의 기준에 관한 글이었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자신의 죽음이다. 적어도 나는 나이가 들어, 어느 날 잠든 상태에서 곱게 죽을 거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가장 어리석은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지만 어떻게 죽게 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늘 죽음을 이해하며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나라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기를 무척 꺼린다. 그래서 더더욱 죽음은 나와는 아주 먼 누군가의 이야기일 뿐이다. 

인간은 살아있을 때만 감정을 느낀다. 태어나기 전에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고 죽은 이후에도 마찬가지이다.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는 제한된 시간이라면, 그것도 단 70~80년만 주어졌다면 슬픔, 절망, 우울 같은 고통스러운 감정도 행복, 사랑 같은 감정만큼이나 아름다운 것이 된다. 그것이 삶의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면 다른 사람 앞에서 감출 이유가 없다. 이것이 언젠가는 죽을 것임을 잊지 않고 사는 프랑스인의 인생관이다. 

나는 늘 방황해 왔고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죽을 때까지 이러다가 가는 게 아닐까 걱정될 때도 있지만 이런 방황이 오히려 나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된다고 믿는다. 결핍이 없으면 무엇이 필요한지 찾아내지 못한다. 늘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나와 잘 맞는 더 나은 길이 있나 찾아보며 살아왔기 때문에 나만의 가치관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삶의 철학 따위가 맛있는 것을 사 먹고 좋은 곳으로 여행 갈 수 있는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맞춰 인생의 성패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인생을 나만의 기준으로 충분히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으로 완벽하다.

<시크하다>를 통해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위로받았다. 여전히 뱅글뱅글 돌아가는 방황의 나침반 위에 서 있다면 우리와 전혀 다른 가치관으로 살고 있는 프랑스인들의 행복론에서 답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당장은 그들처럼 '시크'하게 살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자신만의 소확행 출발선은 그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시작이 필요하다. 당신만의 시크한 행복을 찾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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