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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Sep 07. 2018

이해할 수 있는 정의론 <존 롤스 정의론>

당시에는 고전을 꼭 읽어야만 할 것 같았다. 시대나 장르, 추천 유무에 상관없이 일단 재미있고 흥미가는 책부터 읽었었다. 어느 날 누가 내게 물었다. 이 책은 읽어봤니? 저 책은 읽어봤니? 책 좀 읽는다면서 이런 고전들을 하나도 안 읽어봤다면 책을 제대로 읽은게 아니다. 그래서 읽어봤다. 그걸 읽어봐야 제대로 된 독서라는데 어떤 책인지 궁금했다. 꼭 읽어봐야 한다는 고전들. 그 속에 존 롤스의 <정의론>도 포함되어 있었다. 책을 본 후에 나는 늘 <정의론>을 읽었다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었다. <정의론>을 읽고 'ㅈ' 이라도 이해했냐고. 

호기롭게 <정의론>을 펼치긴 했지만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어 금방 덮어버렸다. 그래서 쌤앤파커스에서 나온 <존 롤스 정의론>을 받아들고 처음에는 두려웠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고 그 때보다 더 많은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역시 이해하지 못하면 어떻하지? 


솔직히 말하면 <존 롤스 정의론> 역시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존 롤스가 지은 <정의론>을 읽어보고 싶지만 도저히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는 수많은 평범한 독자들에게 '정의'에 관해 알아가는 지적 즐거움은 선사해 줄 것이다. 소설처럼 한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가지는 않는다. 가벼운 돌부리에 발끝이 툭툭 걸리듯 책 속 곳곳의 문장들에 걸려 생각보다 오랜 시간 책을 잡고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 롤스 정의론>을 한장 한장 정성들여 읽고 막히는 부분에서는 소리내면서 까지 읽어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어렵다고 넘겨버리지 않고 이렇게 까지 세심하게 읽은 이유는 저자 황경식이 들려주는 <존 롤스 정의론>은 이해하면 분명 재미있는 '정의론'이었기 때문이다. 

<존 롤스 정의론>을 읽을 때 한 시간 가량 일찍 출근해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읽었다. 이해도 빨랐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심지어 꽤 재미있다고 느껴 <정의론>을 제대로 읽어 볼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다. 

쌤앤파커스에서 출간한 <존 롤스 정의론>은 하버드 대학교 철학과 존 롤스 교수가 쓴 책이 아니다. '리더스 클래식 시리즈'로 석학들의 깊이 있는 해석을 통해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여진 책이다. <존 롤스 정의론>의 저자 황경식은 1977년 존 롤스 <정의론>을 번역한 후 1980~1981년 하버드 대학교 철학과 대학원 방문 연구원으로 있으며 롤스의 지도를 받았다. 그가 존 롤스에게 다그쳐 물은 여러가지 질문에 대한 답, 누구보다 <정의론>을 잘 알고 이해하는 저자의 눈으로 바라본 정의, 그리고 한국의 정의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존 롤스 정의론>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왜 '정의'를 논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시작으로 2장 최소 수혜자 배려와 정의로운 사회, 3장 공정으로서의 정의와 정의의 두 원칙, 4장 <정의론>을 깊이 읽기 위한 보충 논의 그리고 마지막 5장 에서는 <정의론>에 대한 반향과 정의의 실천에 대해 설명한다.

사회진화론, 자유방임주의, 사회연대주의등 다양한 정의를 만난다. 물론 각각에 대한 쉬운 설명이 더해져 처음 들어보는 단어라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저자의 이야기 중 '수저론, 그리고 천부적 운과 사회적 운'에 대한 부분에서 수저론의 2가지 등장배경과 롤스가 나누는 운의 정의에 대한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다. 

캐나다 연방법원 앞에는 일반적인 정의의 여신이 아닌 전신에 무지의 베일을 두르고 있는 여신이 서 있는데, 이 여신이 두른 무지의 베일에 대해 존 롤스는 정의한다. '인지적 조건은 흔히 무지의 베일로 알려진 조건으로서 의사 결정자의 공평무사함을 보장하며 당사자들 간의 합의가 결렬되지 않고 적절한 수준에서 가능하게 하기 위한 조건이다.'

리더스 클래식 <존 롤스 정의론>을 조금이나마 쉽게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한국인인 작가의 눈을 통해 보여주는 정의에 관한 이야기 덕분이다. 5장에서 저자는 세월호를 언급하며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월호 이후 인성 교육의 핵심은 아는 것을 내면화하여 실행의 동력이 되게 하는 일이다. 우리나라 윤리 교육의 허점은 바로 알아도 실행하지 않는 데 있다.~ 정의를 온전히 실천하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사랑 또는 인류애뿐만 아니라 온갖 유혹을 뿌리치고 정의로운 행동을 실행할 의지와 용기가 절실히 요구된다. ~ 우리에게는 외부로부터 오는 유혹을 물리칠 용기도 필요하겠지만 내부로부터 솟아나오는 욕심과 탐욕을 제어하고 관리하는 훈련 또한 요구된다.

정의란 무엇일까. <존 롤스 정의론>을 읽으며 내가 생각하는 정의가 <정의론>에 등장하는 정의와 얼마나 다른지를 생각했다. 옳고 틀림의 문제가 아니다. 무작정 따라가다가 자칫 길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끊임없이 반문했다. 수저론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의 말에 흙수저인 나의 입장에서 판단해 봤고 세월호에 관한 구절을 읽으며 왜 우리나라에는 인재가 끊이질 않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분명 <존 롤스 정의론>은 눈을 반짝이며 흥미를 가지고 읽어 나갈 수 있는 책과는 멀다. 하지만 정의에 대해 자신이 가진 질문과 답을 저자와 대화하듯 풀어나가면 분명 기대이상으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정의, 단 두 단어에 담겨있는 무게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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