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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Sep 24. 2018

한껏 늘어지며 읽는 에세이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중 작가의 책에 달린 댓글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별로다, 공감할 수 없는 작가의 넋두리일 뿐', '일기는 일기장에', '처음 사보는 에세이인데 읽고 나서 앞으로 에세이는 신중하게 사기로 했습니다.' 등 작가 본인에게 콕콕 박히는 가시와 같은 말들이 많았다. 여러 댓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의 말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이 부분을 읽고 있으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에세이에 뭘 바라고 있는 거지?

나는 에세이는 작가의 넋두리, 감정의 쓰레기통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일반인이 아닌 작가의 손을 거쳐 나온 글이라 조금 더 있어 보이고 조금 더 울림을 주는 것일 뿐 에세이는 말 그대로 일기, 편지, 감상문, 기행문 등 광범위한 산문 양식이다. 그렇다면 왜 나는 작가의 넋두리를 사서 읽는 것일까? 아마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위로받고 싶은 게 아닐까 싶다. 아, 이 사람도 나랑 비슷하구나, 저런 작가들의 고민도 별반 다르지 않구나, 나만 유별나게 살고 있는 게 아니구나라는 혼자만 느끼는 공감. 책을 읽으며 나만 느끼는 공감과 위로지만 이미 나는 작가와 소주 한잔 나누는 친구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김신회 작가의 신간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는 왜 내가 에세이 읽는 걸 멈출 수 없는지 알게 해 준 책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무심한 듯 진솔했다. 작가의 짧은 한숨이 느껴지는 구절에서는 나도 모르게 같이 한숨을 내쉬었다. 몇 권의 책을 내고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작가의 푸념을 들을 때면 배부른 투정이라 쓴소리를 던지고 싶을 때도 있었다.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는 그런 에세이였다. 폭설이 내려 인적이 끊긴 골목을 나 홀로 눈을 밟으며 자박 자박 걷는 듯한 느낌. 책에는 그녀의 즐거움과 화남과 분노가 담겨있지만 내게는 소복이 쌓이는 눈처럼 그녀의 감정들이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쌓여갔다.


만화 <보노보노>를 만든 이가라시 미키오 작가의 내한 강연이었는데 "요즘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목숨 걸고 하지 마세요. 무슨 일을 하든 죽을 듯이, 아등바등 대면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 말을 듣고 머릿속이 반짝! 했다는 편집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 '죽는 것도 아닌데 뭐.' 따지고 보면 사람 목숨이 달린 일도 아닌데 뭐 그렇게 흥분하고 안달복달해왔나 싶어요. 그 생각을 하면서 일하니까 마음이 편해요.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는 너무 열심히 살지 말라고, 당신은 충분히 쉬어가도 된다고 말한다. 손가락이 아파 어쩔 수 없이 긴 휴가를 얻어 독수리 타법으로 쓴 글을 읽으며 작가의 상황처럼 힘듦과 포기, 여유 등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몇 년 전부터 나도 손가락이 아파 조심하며 쓰고 있는데, 만약에 나에게도 그녀처럼 억지로라도 긴 휴가가 생긴다면 뭘 해볼까 잠시 슬프지만 기쁜 상상을 해 봤다.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는 20대가 아닌 30대 이후, 적어도 35세 이상의 여자들이 읽었으면 한다. 내가 20대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책을 덮으며 '그래서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뭔데?'라고 말했을 것 같다. 작가와 비슷한 나이대라서 그런가, 나에게 이 책은 참 서글프면서도 공감되고 위로받는 책이었다. 에세이를 쓴다면, 한 번쯤 이야기해보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다. 도저히 부끄러워 쓰지 못하는 얘기들을 김신회 작가는 담담하게 풀어나간다. 

하지만 마흔을 넘기고 나니 달라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나에게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잔소리를 듣는 일도 줄어들었다. 내 얼굴에 나이가 새겨져 있기라도 한 건가. 아니면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는 숨겨지지 않는 외모가 된 건가. 이렇게 나이를 먹는 건가 싶어 씁쓸한 적도 있었지만, 어느새 판에 박힌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궁리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을 누리며 살고 있다.

'당신 글은 찌질해서 좋아요.' 김신회 작가가 독자에게 종종 듣는 말이라고 한다. 나는 그녀의 글을 찌질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역시 같은 글을 읽어도 받아들이는 것은 제각각인가 보다. 주말 오후 거실을 뒹굴뒹굴하며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를 읽었다. 책표지처럼 고양이는 없지만 고양이 대신 이 책을 손에 쥐고 아무 생각 없이 늘어져 있었다. 작가의 글에서 찌질함을 보고 동질감을 느끼며 아무 생각 없이 한껏 여유롭게 읽은 수 있는 책. 그게 에세이의 매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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