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 낫 파인>
언젠가 엄마에게 살면서 우울해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엄마는 먹고살기 힘든데 우울한 틈이 어디 있었겠냐고 하셨다. 대체적으로 우울이라는 감정은 이런 것이었다. 한가한 사람들의 투정쯤으로 치부해 버리는 우울증.
<아임 낫 파인>을 읽으며 여러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어두운 거실 한 켠에 앉아 몰래 눈물을 훔치는 엄마의 뒷모습, 결혼 후 부모님의 이혼으로 20대에 홀로 독박 육아를 하던 친구가 아이를 안고 아파트 아래로 뛰어내리고 싶었다는 전화통화 그리고 나도 모르게 끝없는 한숨을 내쉬며 일하고 있는 나의 모습. 이 모습들 속에 우울이라는 감정이 섞여 있겠지.
너무 많이 들어 익숙한 단어지만 정작 그 우울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른다. <아임 낫 파인>은 바로 그곳에서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는 말에, 다른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을까 두려워 스스로 외면해 왔던 마음의 병인 우울증에 대해 함께 이야기한다.
<아임 낫 파인>은 하나의 주제를 다양한 시각으로 이야기하는 채널 #해시온의 첫 번째 프로젝트이다. '아임 낫 파인'이라는 이름이 붙은 프로젝트의 주제는 우울이다. 그동안 감추고 숨기고 참아왔던 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하지만 이 책은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은 토대로 한 우울증에 대한 전문서적이 아니다. 같은 시대, 구석에서 울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고 상처를 보듬어 가는 이야기이다. 우울증이란 이런 것이라는 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감해 가는 과정이다.
우울증에 대한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아임 낫 파인>을 통해 우울증에 대해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울함을 느껴봤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면 책을 통해 자신의 상황을 바로 보고 치유와 치료를 계획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울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임 낫 파인>은 짧은 에세이나 칼럼을 읽는 것 같았다. 우울증을 이미 겪었거나 현재 느끼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아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에필로그 부분에 해시온의 우울증 프로젝트 영상을 구독하고 있는 분이 "본질적으로 너무 따뜻하고 인문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우울증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이 읽기에 무겁지 않다고 느꼈던 부분인 우울한 감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에필로그의 그 구절을 읽은 후 다시 앞장을 펼쳤다.
<아임 낫 파인>은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왜 우울감을 느껴도 병원을 찾지 못하는지, 정신과에 가면 비용이 많이 드는지 등 현실적인 치료 과정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우울증 상담을 받았던 기록이 꼬리표처럼 나를 따라다니지 않을까 하는 고민에 대한 답도 들려준다. 그리고 우울증을 겪었지만 이겨낸 사람, 현재 그 터널을 지나고 있는 사람, 식구들의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직접 그들의 마음을 이야기한다.
나이가 들면서 주변에 우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물론 그들이 모두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도대체 우울증이 정확하게 어떤 증상인지 궁금했다. <아임 낫 파인>을 읽는다고 우울증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우울증에 빠지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신호를 보내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우울증에 빠지면 공통적으로 세 가지를 잃는다. 첫째, 힘과 의욕이 없어진다. 둘째, 모든 것에 가치를 잃는다. 셋째, 희망이 없어진다. 자기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나(무기력함), 자신이 가치 없다고 생각하고(무가치함), 앞으로 더 나아질 수 없을 거라고(무망함) 생각한다.
책 속의 여러 구절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우울은 '성향'이 아니라 '상태'인 것이다"라는 말이었다. 우울도 성격의 일부라고 생각했었는데 우울은 결코 타고난 성향이나 기질이 아니며 단지 그때의 기분이라고 한다.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만성질환이 있다고 그것을 타고난 성향이라고 보지 않듯이 우울증 역시 감기가 걸렸다가 낫는 것처럼 상황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
<아임 낫 파인>은 단지 우울증에 대한 정의가 아닌 우울이 왔을 때 어떻게 이겨나가야 하는지 그 길을 알려주는 책이다. 왜 치료를 받아야 되며, 치료를 받는 과정이 단지 정신과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무엇보다 그 과정을 실제 겪은 사람들의 수기를 통해 우울증으로 힘들지만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모르고, 막연한 두려움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정신과 병원을 이야기할 때마다 꼭 등장하는 질문은 기록이 남지 않느냐가 아닐까. <아임 낫 파인> 6장 우울증 기록에서 그 궁금함에 대한 답이 있다. 정신의학과 전문의와 S 생명 보험설계사 그리고 K 기업 인사팀과 함께 우울증 기록에 대한 진실을 알아보자.
우울증 프로젝트라는 주제로 우울증을 겪어 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책이라 <아임 낫 파인> 안에는 그동안 내가 전혀 몰랐던 세계의 이야기들도 있었다. 정신과 치료비용이나 어떤 치료 과정을 거치는지, 상담 선생님과 어떻게 대화하는지 등 여러 정보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폐쇄병동에 관한 이야기는 매체를 통해 봐왔던 것과 달라서 놀라웠다.
직접 다녀오지 않으면 절대 모를 그곳, 우리는 드라마나 뉴스 등을 통해 잘못된 선입견을 갖고 있었던 게 아닐까. 양극성장애를 겪고 있는 현경 작가와 민지 님이 들려주는 폐쇄병동 이야기는 그동안 정신과라는 곳에 얼마나 잘못된 지식을 갖고 있었는지 알게 해주는 경험담이었다.
사랑하는 가족이, 친구가 우울증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해줘야 할까. 반대로 내가 우울증에 빠지면 주변 사람들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결국 우리 모두는 우울증에 대해 모른다. 의지로 극복할 수 없는 우울증. 단지 인식하지 못하고 드러내지 못할 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우울한 감정을 느껴봤을 수도 있다. 언제까지 개인의 감정이라고 미뤄둘 수 없다.
<아임 낫 파인>을 통해 그들이 손 내밀 때 따뜻하게 잡아주길 바란다. 내가 손 내밀 때 누군가가 토닥여 주며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울이라는 감정은 각자의 몫이지만 우리 모두의 감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