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는 호불호가 뚜렷한 장르이다. 그래서 추천하기도 힘든 책 중의 하나다. 언젠가 일어날 법하지만 지금은 아닌 이야기.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왠지 언젠가는 그런 세상이 될 것만 같은 이야기. 누군가에는 황당한 소설에 불과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놀라운 상상력에 감탄을 자아내는 장르. SF는 내게 현실과 공상의 중간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는 매력적인 장르이다.
한국의 SF 소설가를 물을 때 나는 늘 '듀나' 작가만을 떠올린다. 추천할 만한 SF 소설들도 많고 인기 있는 SF 소설 작가분들도 있지만 늘 생각나는 작가는 '듀나'라는 이름뿐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우연히 읽었던 듀나 작가의 책과 글이 인상적이었나? 어쨌든 내게 유일한 SF 소설가인 듀나 작가의 최신작인 <민트의 세계>가 출간되었다. 이번엔 어떤 세상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듀나의 SF 장편소설 <민트의 세계>는 2049년의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다. 어렸을 때 봤던 '2020년 원더키드'는 충격 그 자체였다. 2020년이 되면 세상이 만화처럼 변화되어 있을 거라 굳게 믿고 기대했었다. 하지만 현재는 2018년이고 '2020년 원더키드'는 현실이 되지 않았다. <민트의 세계>에서 보여주는 31년 후인 2049년의 대한민국은 '2020년 원더키드' 보다 더욱 놀랍고 독창적인 세계이다. 상상할 법하지만 상상하지 못하는 미래. 그래서 SF는 놀랍고 어이없고 재미있다.
<민트의 세계>에는 민트라는 이름을 쓰는 여자아이가 나온다. 주인공이지만 주인공이 아니다. 정확히 이 책의 주인공은 민트가 속한 세계이다. 그 세계 속에서 필연처럼, 우연인 듯 맞물려 돌아가는 등장인물들의 사연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에 민트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민트의 세계> 상상하지 못했던 혼돈의 대한민국 속에서 자칫 길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끊임없이 의심하길 바란다. 책 속의 세상은 혼란이 가득한 곳이다. 2018년의 인간은 2049년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2026년 처음 배터리라는 이름으로, 몸 안에 에너지를 담은 인류가 등장했다. 그리고 곧 전 인류는 초능력자가 되었다. 정신감응력, 염동력, 독심술사, 마법사 그리고 배터리 등 인류는 각자 자신만의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민트의 세계>는 그렇게 시작한다. 평범한 사회에서 인류 전체가 능력자로 변화하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진화된 상태, 그리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SF 적인 요소들은 기본이다. 그 위에 살인사건, 사회적 분쟁, 개인의 욕심 등 여러 가지 사건들이 더해져 어느새 SF보다는 사건들에 대한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초능력자는 익숙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민트의 세계>가 복잡하거나 어려운 SF 소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야기는 상상할 수 있는 그 선에서 한참 더 나아간다. SF 소설을 읽어 본 사람들이 아니라면 낯설고 많은 이야기에 속에서 몰입하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SF에 집중하기보다 '아이'를 불태워 죽인 범인을 찾는 흐름을 따라가길 추천한다.
영혼 생산 공장. 언젠가 누군가 이런 걸 만들어 낼 줄 알았지. 개념 자체는 신기하지도 않았다. 단지 이날이 이렇게까지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적어도 능력과 에너지의 정체가 밝혀진 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듀나는 이번에도 <민트의 세계>를 통해 무섭도록 독특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 인류가 초능력을 갖게 된 2049년 대한민국'은 출발점에 불과하다. 현재의 우리가 생각하는 초능력은 전혀 작가의 상상력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부분 같았다. 초능력을 넘어선 이야기 전개. 뒷부분으로 갈수록 몰아치듯 쏟아지는 새로운 정보들에 잠시 읽기를 멈출 수도 있다. 그것마저 즐기며 책을 읽기 바란다. 그 역시 SF를 읽는 맛 중의 하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