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팔 독립선언, 참 잘 지었다. 여러모로 많은 뜻을 담고 있는 제목이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책을 펼쳐보기도 전에 어떤 분위기의 에세이일지 느낌이 왔다. 아마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맥주를 마시고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 작가겠지? 제목부터 표지 그림까지 자유로움이 묻어난다.
나는 적어도 서른이 넘기 전에 모든 성인 남녀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해야 한다는 주의다. 문제는 서른을 훌쩍 넘어버린 지금까지 독립을 외쳤던 여전히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다. 첫 독립을 꿈꿨던 것은 대학 입학이었다. 대학 입학이 좌절되어 다음에 노렸던 것은 취업. 취업 역시 실패했다.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직장은 늘 집 근처거나 멀더라도 셔틀버스를 운영하는 곳이었다. 서른이 넘어서고 난 후부터는 매년 목표가 독립이었는데 항상 포기해 버리게 만드는 크고 작은 일이 생겼다.
부모님과 오랫동안 살면서 독립해야 한다는 생각이 바뀌었느냐? 절대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성인 독립 필수는 점점 더 확고해졌다. 독립은 단지 부모님과 떨어져 다른 집에 산다는 것이 아니다. 드디어 자신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는 의미이자, 그동안 부모님의 보살핌 속에 살던 자녀가 아니라 한 명의 성인이 되는 시작점이다.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어른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혼자 살아야만 어른이 된다고 생각한다.
부러웠다. <이십팔 독립선언>을 읽는 내내 20대에 독립을 시작한 작가가 참 부러웠다. 나는 작가 나이였을 때 뭘 했을까?
일을 마치고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와 혼자만의 밤은 보내는 시간들, 각종 세금을 내면서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야 하는지를 깨닫는 과정, 바람에 덜컹거리는 문소리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까지 <이십팔 독립선언> 속 작가의 독립 후 모든 일상들이 참 부러웠다.
<이십팔 독립선언>은 제목 그대로 28세에 독립 3년 차가 되는 서울 사는 직장인 여자의 일상 에세이이다. 왜 독립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부터 독립 후 처음 겪게 되는 여러 가지 변화에 대해 일기처럼 속삭이듯 들려준다.
열정적인 목표나 원대한 꿈이 있어서가 아니다. 출퇴근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독립이었다. 대출을 받고 직장에서 가까운 곳에 집을 구했다. 모든 것이 처음인 작가에게 혼자 산다는 것은 서툶, 그 자체였다. 그래서 더욱 공감 가는 이십 대의 독립 후 에세이였다. 만약에 첫 독립생활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면 <이십팔 독립선언>을 읽으며 느껴진 공감은 없었을 것이다.
책을 통해 들려주는 여러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먼저 혼자 사는 여성이 느끼는 두려움에 대한 부분이 공감 갔다. 최근 '도어락'이라는 영화를 통해 과연 대한민국은 여자 혼자 살 수 없는 나라인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아마 혼자 사는 여자라면 누구나 한 번씩 느껴봤을 낯선 자에 대한 공포심. <이십팔 독립선언>에서도 역시 그런 감정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하루 중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는 때가 집에 들어오는 순간이다. 독립하고 처음 몇 주 동안은 핸드폰에 112를 입력하고 통화 버튼 바로 옆에 엄지손가락을 대고 계단을 올랐다. ~ 집 문을 열 때도 안을 한번 쓱 살피고 들어간다. 문을 닫을 땐 잠글 수 있는 모든 잠금장치를 다 사용한다. ~ 참 혼자 살고 나서 쓸데없는 상상력이 많아졌다. ~ 과잉방위 태세라는 느낌도 있지만, 뉴스를 볼 때면 나만 예외일 순 없겠지 싶다.
본격 독립 권장 에세이지만 <이십팔 독립선언>에서 독립에 대한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 마케터라는 직업에 대한 작가의 꿈, 혼자 훌쩍 떠난 발리에서 생긴 일, 스쳐가는 월급통장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20대 사회 초년생의 일상도 담겨있다.
이십 대 후반을 지나가는 사회 초년생의 삶에 대한 에세이 <이십팔 독립선언>은 작가에게는 꽤 몰아치는 변화였을 것이다. 아마 아직 그녀의 나이가 되어 보지 못한 청춘들, 작가와 같은 초년생으로 지옥철을 경험하고 있는 청춘들 그리고 이제 막 이십 대를 넘어서고 더 늦기 전에 독립해볼까 고민하고 있는 서른의 입구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작가의 변화가 마치 자신의 일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에 이십팔 세를 지나온 내게 <이십팔 독립선언>은 마치 예전에 적어 둔 다이어리의 한 페이지를 보는 것 같은, 추억의 감성이 퐁퐁 솟아나는 책이었다.
이십 대의 독립, 이십 대 직장인으로 혼자 살아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극히 제한적이고 고유한 감정이다. 작가가 독립을 하면서 느낀 변화들을 알지 못한 채 나이 들어 버렸다는 것이 무척 안타까웠다.
언젠가 집안 어른이 결혼하는 게 독립하는 거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결혼은 독립이 아니다. 부모님이 아닌 또 다른 누군가와 산다는 것일 뿐이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은 무척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오직 혼자서 삶을 꾸려간다는 것 역시 어른이 되었다면 꼭 해봐야 되는 일이 아닐까.
독립해 살아보지 못한 나의 로망일 수도 있다. 혼자 산다는 것에 지친 누군가는 독립은 안 할수록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결국 정답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을 권한다. 독립을 권장하는 수많은 이유 중 이십 대, 사회 초년생들이 공감할만한 것들을 <이십팔 독립선언>을 통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덮으며 나 또한 다시 독립을 꿈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