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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Mar 18. 2019

유현준의 공간을 이야기하는 도시 에세이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

같은 공간이라도 사람들마다 기억하는 방식이 다르다. 나는 냄새로 장소를 기억하는 편이다. 기억력도 없고 특별히 냄새를 잘 맡는 능력도 없다. 단지 공간이 가지는 특별한 냄새, 당시에 같이 있었던 사람의 냄새가 인상적이면 꽤 오래 그때를 기억한다. 


에세이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를 쓴 유현준 작가는 건축가답게 과거와 현재에 함께 했던 추억을 건축이라는 자신만의 공간을 통해 이야기한다. 외갓집에 있던 다락방에 대한 글을 읽으며 어릴 적 할머니 댁이 떠올랐다. 삐걱대는 문을 열면 방안 가득 오래된 책에서 흘러나오는 쿰쿰한 냄새가 생각났다. 


이렇게 비슷한 공간이라도 사람들마다 추억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래서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가 좋았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공간을 읽으며 내게 그 공간은 어떤 냄새로 기억 속에 남아있는지 천천히 떠올려봤다.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건축가 유현준을 알게 되었다. 같은 장소라도 건축가의 눈을 통해 전혀 다르게 보이는 공간의 새로움이 놀라웠다. 매회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알쓸신잡' 방송시간을 기다렸었다. 작가는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 이전에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어디서 살 것인가'를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도시와 삶에 대해 인문학적인 관점으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번 책은 이전의 인문학적인 내용과 달리 작가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이다. 


처음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라는 제목만 봤을 때 나는 이전 책의 분위기와 연결 지어 건축과 역사에 대한 이야기라고 추측했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사적인 공간에 대해 들려주는 에세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왜 제목에 별자리가 들어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답은 에필로그에서 찾았다. 


인생을 살면서 모든 순간이 아름다울 순 없다. 순간순간이 아주 가끔 아름다울 뿐이다. 우린 그 순간들을 이어서 별자리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삶이 모두 대낮처럼 밝을 수 없고 약간의 별빛만 있다면 우리는 그 별빛들로 별자리를 만들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 우리 삶을 아름답게 만들려면 희미하지만 검은 하늘에서 빛나는 별들을 찾고, 잇고, 이야기를 만드는 '시간'을 들여야 한다. 이 책에서 언급된 장소는 나를 만든 공간이고, 내가 좋아하는 공간들이다. 그 공간들은 내 인생에서 가끔씩 있는 희미한 별빛들이다. 그리고 이 책은 멀리 떨어져 있는 나의 희미한 별빛들을 연결해서 나만의 별자리를 만들려는 시도다. 


작가는 마지막에 묻는다.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 


내 인생에서 희미하게라도 빛났던 별빛들을 떠올려봤다. 아무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더욱 빛나 보였던 별빛들을 되짚어 봤다.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에필로그를 읽어봤으면 좋았을 것 같다. 마지막 장을 덮었지만 다시 첫 번째 공간 속으로 들어갔다. 질문을 알면 답은 더욱 찾기 쉽다.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에는 6개의 공간을 보여준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공간에서는 작가의 유년 시절과 청년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세 번째부터 마지막까지는 '보물 찾기'라는 주제로 도시의 숨어있는 시공간을 소개한다. 이 책은 작가의 이야기가 가득한 에세이지만 도시에서 미처 느껴보지 못한 공간을 찾기 위한 여행서로도 부족함이 없다. 분명 가보고 즐겨 찾는 곳이지만 건축가 유현준을 통해 전혀 다른 곳으로 느껴지는 장소가 많았다. 미세먼지에 대한 걱정이 많지만 어쨌든 걷기 좋은 계절이 왔다. <당신의 별자리를 무엇인가요>와 함께 도시 여행을 해보는 것도 소소하지만 매력적인 여행이 되지 않을까.


이야기는 길지 않다. 사진을 자극적이지 않다. 양해철 사진가의 감성적인 사진과 조용히 말하듯 쓴 유현준 작가의 글은 무척 잘 어울렸다. 늦은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읽어도 좋지만 복잡한 지하철이나 시끄러운 카페에서 읽으면 더 좋은 책이라고 느꼈다. 눈길을 잡아끄는 자극 없이도 오롯이 책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면서, 편안함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어렸을 적 유현준 작가의 빛바랜 사진과 추억들에 대한 이야기도 좋았지만 도시의 특별한 시공간을 보여주는 '보물 찾기'에 대한 글이 흥미로웠다. 4개의 공간 중 특히 '혼자 있기 좋은 도시의 시공간'을 더욱 집중하며 읽었다. 


몇 년 동안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소개하는 기자단으로 활동했었다. 여러 가지로 의미 있는 활동이었지만 내가 태어나고 살아온 도시를 다시 보게 되었다는 경험이 가장 뜻깊었다. 태어난 후 줄곧 함께 해온 도시지만 그동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구석구석 걸어 다녀본 도시는 이전에 내가 봤던 곳과 전혀 다른 곳이었다.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를 읽으며 처음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너무 몰라 놀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공간은 누구나 다 아는 곳이다. 모두가 알지만 다 같은 의미로 기억되지 않는 공간들.  '혼자 있기 좋은 도시의 시공간' 속의 장소들 중에는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미 혼자만의 공간으로 정해둔 곳도 있을 것이다. 혼자 있기 좋은 곳이지만 그렇다고 그곳이 절대적으로 혼자만의 공간은 아니다. 그 어느 곳보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도 있겠지만 그 어느 장소보다 혼자 있기 좋은 공간이다. 왜 그럴까. 그에 대한 답을 작가가 들려준다.


영화 '해리 포터와 불의 잔'편을 보면 '포트키'라는 것이 나온다. 포트키는 순간 이동 마법에 걸린 물건이데, 이것을 잡으면 다른 공간으로 순간 이동을 한다. 현대 사회에서 포트키는 휴대폰이다. 우리가 휴대폰을 열고 쳐다보면 우리는 휴대폰 속 시공간으로 들어간다. ~ 어쩌면 월 8만 8000원 데이터 무제한 월정액은 이 시대에 가장 싸게 내 공간을 만드는 방법일 수 있다.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는 한 단어로 정확히 이야기하기 어려운 책이다. 작가의 사적인 추억을 이야기하는 에세이임과 동시에 건축가가 인문학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도시의 구석구석을, 이번 주말이라도 당장 여행 가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다. 400페이지가 넘는 적지 않는 분량임에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지만 빠르게 책장을 넘길 수는 없었다. 작가의 공간은 그만의 세계가 아니라 나도 아는 곳이기에 책을 읽으며 잊고 있었던 기억이 솔솔 떠올랐기 때문이다. 


장롱 속 겨울옷 아래에 깊숙이 넣어둔 어렸을 적 사진을 꺼내봤다. 잊고 있었던 하나의 별자리. 반짝반짝 빛나는 오래전 내가 그곳에 있었다. 내가 반짝이던 공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 당신의 별자리가 무엇인지를 묻는 작가의 질문에 당장 답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의 별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짙은 구름 속에 숨어 있었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부터 그 답을 찾아보려 한다. 


이제 막 첫 번째 별자리를 찾아낸 내가 당신에게 묻겠다. 당신이 살아왔던 공간이 가지는 의미, 그 속에서 반짝였던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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