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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Mar 26. 2019

환상인 듯, 현실인 듯 <엿보는 자들의 밤>

60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소설 <엿보는 자들의 밤>. 책을 읽는 내내 도대체 이 책에 대해 어떻게 후기를 적어야 하나 혼란스러웠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미국 이민자와 2세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 추리가 등장하더니 갑자기 섬뜩한 호러가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도시 뉴욕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마치 다른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 소설을 읽는 것 같았다. <엿보는 자들의 밤>은 한 단어,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다소 괴기스럽지만 독특한 매력을 가진 소설이었다. 


책을 읽기 전 작가 프로필을 꼼꼼히 읽는 편이다. 작가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써온 책들을 보면 이야기에 몰입하기가 쉬워진다. 특히 <엿보는 자들의 밤>같은 독특한 소설이라면 더더욱 작가가 어떤 장르를 쓰는 작가인지 알고 읽는 것이 좋다. 작가가 어떤 책을 써왔는지 모르고 이 책을 읽기 시작한다면 아마 <엿보는 자들의 밤>속 어두운 뉴욕의 거리에서 길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엿보는 자들의 밤>의 작가 '빅터 라발'은 미국 환상문학계를 이끄는 젊은 작가이다. <엿보는 자들의 밤>으로 2018년 세계 환상문학상, 영국 환상문학상, 로커스 상의 호러 부분에서 수상을 했다.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가 모호한 환상문학을 이끄는 작가, 빅터 라발의 <엿보는 자들의 밤>은 현대 환상문학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알려주는 책이었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인지 어느 순간부터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우간다 이민자인 작가 어머니를 연상시키는 릴리언의 이야기는 이민자 2세로 살아가는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들었다. <엿보는 자들의 밤>의 주인공 아폴로가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들과의 행복한 순간들을 들려줄 때까지 도대체 이 책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정점을 향해 천천히 올라가는 롤러코스터가 곧 이용객들이 비명을 지르게 만드는 것처럼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가 한순간에 무너뜨려 독자들을 혼란에 빠트린다. 아마 작가는 '어? 뭐지?'라며 당황스러워할 독자들을 상상하며 책을 쓴 게 아닐까.


행복하고 평온한 일상이 어느 순간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조금씩 갈라진 틈새로 또 다른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책을 읽을수록 의문과 의심만 늘어났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차분히 흘러가던 소설의 내용이 점점 더 강한 소용돌이가 되어갔다. 미스터리 장르의 책처럼 <엿보는 자들의 밤> 역시 책이 끝날 때가 되어서야 모든 사건이 일어나게 된 '원인'에 대해 알려준다. 다만 평범한 미스터리만 등장하는 책과 달리 <엿보는 자들의 밤>은 시간을 거슬러 내려오는 신화와 마법, 괴기함이 더해졌다. 


처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전개에 당황스러웠지만 책을 읽을수록 나만 몰랐을 뿐, 현실 속에서 진짜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실제인 양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것, 그것이 바로 환상문학의 매력이자 <엿보는 자들의 밤>을 쓴 작가의 힘이다. 


토론하기 좋은 책이다. <엿보는 자들의 밤>에서 발생하는 사건의 원인과 이유,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예측하지 못했던 존재에 대한 의미는 책을 읽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될 것이다. 이 책을 하나의 장르로 규정지을 수 없는 것처럼 책 속의 수많은 장면들은 각각이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읽는 이의 혼을 쏙 빼놓는'이라는 추천글이 있다. 혼을  쏙 빼놓는다는 말에 동의한다.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일상의 한순간으로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낸 작가의 상상력에 놀랐다. 나는 <엿보는 자들의 밤>의 혼란스러운 상상력이 즐거웠다. 그 혼란을 즐길지, 정신없이 헤매다 나올지 당신의 결말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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