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훔치는 데이터 분석의 기술, '컨버티드'를 읽고
술집에 가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자기와 결혼해달라고 말한다고 하자. 미친 짓이 아닐까? 그런데 바로 이런 행동을 실제로 기업들이 하고 있다.(중략) 그중 '네'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한 명쯤은 나온다. 그러면 그 마케팅팀은 자기들이 바라던 결과가 나온 한 번의 결과만 채택해서 고객과의 모든 상호작용에 일반화한다.
구글에서 데이터 분석 조직을 이끄는 닐 호인이라는 분이 쓴 책이다. 솔직히 요즘에는 마케터의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정의 내리기 힘들 정도로 범위가 넓어졌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데이터가 있다.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마케터가 퍼포먼스가 달라진다. 고객에게 광고를 노출시킬 것인가를 결정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다. 광고 플랫폼(구글, 네이버, 페이스북 등)이 그들의 회원을 대상으로 얻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류한 세그먼트 그룹에 집행하거나, 우리 서비스에 방문한 사람들의 행동으로 분류한 그룹에 집행하는 경우다.
전자를 일반적으로 플랫폼 DMP(Data Management Platform)라고 부르며, 후자를 퍼스트 파티(First-party) 데이터라고 부른다. 이를 믹스한 게 CDP(Customer Data Platform)인데 최근 CDP를 자체적으로 구축하려는 업체의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다.
당연히 후자가 훨씬 값어치 있고 지속 가능한 데이터라고 할 수 있다.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데이터를 활용하려면 많은 광고비를 지출해야 한다. 이용해보신 마케터 분들은 알겠지만 비용이 생각보다 비싸고, 결과도 보장되지 않지만 어떻게든 우리 상품에 맞는 타겟에 노출시키기 위해 광고 예산이 어느 정도 있는 고객사들이 선택한다. 이를 다른 말로 오디언스 바잉(Audience buying)이라고 한다.
반면, 퍼스트 파티 데이터를 활용하는 비용은 이를 통해 얻는 가치에 비하면 무료에 가깝다. 따라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퍼스트 파티 데이터를 관리하고 퀄리티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단순히 회원가입만 시킨다고 퍼스트 파티가 풍족해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중요한 건 회원가입 이후다. 회원가입은 시작에 불과하며, 그 이후 고객이 제공하는 데이터를 어떻게 설계하고 분류하는지에 따라 데이터의 퀄리티가 결정된다.
이를테면, 회원가입한 고객을 대상으로 같은 내용은 판촉 이메일을 보내는 경우와 특정 카테고리의 상품을 반복해서 본 고객들을 대상으로 할인된 가격의 상품을 판촉하는 이메일을 보내는 경우 전환율은 많은 차이를 보일 것이다.
이를 할 줄 아는 마케터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퍼포먼스 마케터보다 CRM 마케터의 수요가 지금보다 월등히 증가할 것이며, 퍼포먼스 마케터 역시 현재에 머문다면 그저 그런 마케터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위 영상은 한 유투버가 구글이 어디까지 사람들의 정보를 추적하는지 실험한 영상이다. 영상을 보면 종이에 쓰인 단어를 헤드셋 마이크에 반복해서 말하고 불특정 웹사이트에 접속했을 때 언급한 단어와 연관된 광고가 뜨는지 실험한다.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게 참 신기한데 결과가 궁금하신 분들은 한 번 시청하시길 권장드린다.
정말 그가 영상을 조작하지 않고 실험은 진행한 것이라면 구글은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당신에게서 가져간다는 걸 알 수 있다. 한편으로 씁쓸하지만 구글에 가입한 모든 사람들은 광고를 본인의 관심사에 따라 최적화해서 보여줄지에 대한 결정을 직접 한다. 보통 사람들은 어떤 서비스에 가입하는 과정에서 동의 버튼을 무심코 누른다. 하지만 그 안에는 기업들이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목적과 의도가 깊숙한 곳에 숨어 있다.
아래 URL에 방문해서 구글에 로그인하면 여러분에게 보이는 광고의 근거를 유추할 수 있다. 성별부터 시작해서 나이, 결혼 여부, 관심사, 최근 방문한 사이트 등의 카테고리가 망라되어 있다. 여러분이 마케터라면 이런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고, 어떻게 해야 플랫폼을 잘 활용할지에 대해 공부한다면 운영하고 있는 서비스 혹은 고객사의 매출을 높여줄 단서를 많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온라인에게 매출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크게 대화, 관계, 발전 이렇게 3가지를 이야기한다. 무작정 고객에게 제안을 할 게 아니라 대화를 먼저 시작하라는 얘기인데 이를 위해서는 고객의 정확한 정보를 아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고객의 ID를 암호화된 형태로 수집해서 많은 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정확한 정보를 차근차근 수집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언급한다. 양보다는 질이란 얘기다.
이를 위해서는 서비스에 방문한 불특정 다수를 회원 가입으로 유도해야 하는데, 저자는 수익의 일부를 떼어서 그들에게 제공하는 방법으로 어떻게든 특정 고객을 선별할 수 있는 ID 값을 수집하라고 얘기한다. 회원에게 무료 배송을 한다거나, 가입 시 할인 쿠폰을 주는 등 여러 방법이 있다. 특정 상품을 100원에 구매하는 혜택을 주는 것도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고객의 ID를 얻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그렇게 해서 고객에게 더 많은 구매를 이끌어낸다면 성공이지만, 이후 구매를 하지 않는 고객만 증가한다면 회사의 수익성은 나아지기 힘들다.
관계 파트에서는 처음부터 모든 고객에 집중하는 것보다는 돈을 벌어다주는 고객 세그먼트에 리소스를 집중하는 게 낫다는 얘기도 나온다. 고객의 행동을 파악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 애플의 경우 앱스토어 청구 금액의 95.2%가 8% 미만의 고객 계정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이들은 애플의 충성 고객일 가능성이 높다.
애플만 그럴까. 연회비를 내는 아마존 프라임 회원제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의 고객생애가치(LTV)는 일반 소매유통 업체의 평균 LTV 대비 30배나 크다고 한다. 여러분의 서비스도 이와 비슷하진 않겠지만, 충성고객이 일으키는 매출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한다면 아마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그동안 내가 경험한 대부분의 서비스들은 20%의 고객에서 80% 이상의 매출이 나왔다.
저자는 처음부터 거창한 결과를 얻으려 하지 말고 작게 시작하면서 데이터 분석이 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동료들에게 전파하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이메일 제목에 고객의 이름을 넣는 것만으로도 오픈율이 20%, 전환율이 31% 늘어나며 구독 취소율이 17%나 줄어든다고 한다. 책에서는 이러한 실험 결과들이 많이 나온다. 그럼에도 이를 실행에 옮기는 마케터는 극소수일 것이다. 남들이 증명한 실험은 내가 운영하는 서비스에도 적용해봐야 한다. 아님 말고 자세가 그로스 마케팅에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단, 처음부터 전체를 대상으로 한 실험보다는 10-20% 정도의 고객을 대상으로 실험하길 권장드린다.
고객을 이해한다는 건 실제로 중요한 게 무엇인지 파악하지도 않고 그저 고객이 하는 모든 행동의 뉘앙스를 포착하는 게 아니다. 실제로는 고객 정보를 더 많이 모을수록 더 많은 정보를 놓치고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한다. 중요한 신호를 인식하는 방법, 그 신호에 과도하게 집착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는 고객의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이를 기반으로 분석을 하거나 그들의 전환 개선에 도움주는 일을 한다. 요즘 일을 하면서 드는 생각은 모든 데이터를 촘촘하게 수집하는 것도 물론 의미가 있지만, 그것보다 정말 중요한 데이터를 탐색을 통해 발견하고 이를 최대한 정확하게 쌓아서 이에 대한 학습은 머신러닝 API에 맡겨야겠다는 생각이 이전보다 확고해졌다.
중요한 건 탐색을 통한 발견인데 고객사마다 상황과 카테고리가 다르기 때문에 발견의 빈도는 관심의 정도와 거의 비례한다. 한편으로는 고객이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나의 역할이기에, 정답을 주는 것도 좋지만 정답을 스스로 찾기 위한 소스를 많이 제공하는 게 더 중요할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가끔 한다.
이 책을 절반 정도 읽고 동료들에게 책을 한 권씩 사서 선물했다. 그분들이 책을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읽으며 자신들이 맡은 고객사에 적용할만한 사례는 없는지 한 번이라도 떠올린다면, 그리고 책을 읽은 뒤 관련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만족한다. 본인이 하는 일이 데이터와 마케팅과 관련되었는데 요즘 어떤 책이 읽을만한가를 찾고 있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드린다. 여러 번 읽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