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물일기 - 진고로호
#미물일기
저자가 보여주는 미물은 찬란하기 그지없다. 안간힘으로 버텨 기어이 성체가 되고, 꽃이 되고, 열매를 맺는다. 그렇지 않다 한들, 그들의 생에 후회나 아쉬움이 있을 리 만무하다. 존재가 최선인 것들이 바로 자연이므로. 안쓰럽다 안타깝다 생각한 일부의 시선조차도 너무 ‘인간적’인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깨달음이 인다. 남발한 동정이 부끄럽다.
‘멀리, 크게 보라’는 말, 살면서 한 번씩은 들어 봤을 조언. 하지만 멀리, 크게 볼수록 어떤 소중한 것들에 점점 더 무감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지금, 여기’ 같은 것들. 결국 그렇게 다 까고(?) 걸어간 길의 끝에 남은 것은 무엇이던가.
나태주 선생님은 ‘자세히 봐야 아름다운’ 들꽃이라 했다. 근데 사실 들꽃은 그냥 딱 봐도 아름다우니, 진고로호 작가의 난이도가 조금 더 높다. 지렁이, 달팽이, 딱따구리, 목련, 파리. 자세히 들여다보면 귀여운 구석들이 지천이라는데 작가님 믿고 파리 모기 한 번 각 잡고 들여다볼까 싶기도 하고. 결코 가볍지 않은 관찰과 사유가 묵직한 위로가 된다. 작고 귀여운 것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만물의 이치, 생의 진리가 오롯이 담겼다. 사실은,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고 넓게만 외치느라, 그 가까운 거리를 전 생을 바쳐 에둘러 간다. 삶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는데.
이미 익숙해진 ‘대단한’ 세상 속에서, 작가가 보여주는 속도와 깊이를 받아들이며 살 수 있을까. 우선, 작아져야 보이는 작은 것들을 꼭 기억하고 살아 봐야지 조심스레 다짐해본다. 그것들을 둘러보기 위해 가끔은 기꺼이 속도를 줄여도 봐야지. 그래야 보이는 것들이 살면서 내가 지켜내야 할 유일한 것들일지도 모르니.
덧) 생이 팍팍할 땐 역시 잔잔바리 행복부터.
“딱따구리의 완벽한 몰입을 구경하는 나 또한 놀랍도록 집중했다. 오래 찾아 헤매던 순간이었다. … 예전 같으면 조금 더 힘을 내서 어려운 구간을 통과하려 했다. 지금은 바로 핸드폰의 쉽고도 유혹적인 세상으로 도망친다. 몰입으로 얻을 수 있는 환희에 이르기까지 어느 정도 지루한 부분을 참고 견뎌야 하는데 작은 화면을 바라보는 일에만 익숙해져 진지한 세계에 집중하기 힘든 악순환이 반복된다.”
“자연에서는 어떤 수고, 아니 많은 수고가 결실을 맺지 못한다. 어느 계절, 풀은 꽃을 제대로 피워내지 못하고, 알과 유충은 잡아먹히고, 새끼들은 성장 과정에서 낙오한다. 생명의 번창을 위해서 수많은 성공이 존재해야 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면, 수없는 실패 또한 그러하다.”
“힘들게 몸을 비틀며 번데기가 되고 오랜 시간 기다려 날개를 다는지, 그들이 보내는 날들이 수고스럽고 대견하다. 살아 있는 것이 변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급해도 건너뛸 수 없는 과정을 착실히 거쳐야 한다. 단번에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
“작은 생명에 대한 배려를 보여주는 사람이 인격이 훌륭하다는 보장은 없다. 인간은 평면적이지 않다.”
“가만히 있는 나무를 왜 때려. … 나무는 말도 없고 움직이지도 않으니 자꾸 살아 있다는 것을 잊는 사람들.”
#진고로호 #어크로스 #K가사랑한문장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