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ay Aug 01. 2022

노래 하면 나도 할 말 많음

아무튼, 노래 - 이슬아

#아무튼노래


노래라면 나도 할 말이 많다. 나는 피아노를 정말 좋아했고 꽤 오래 친 편이다. 외할아버지를 필두로 음악 전공자가 대를 이어 몇 명씩 나오는 집에서 한글보다 피아노를 더 먼저 배운 덕이다. 빠듯한 살림에 내 피아노는 열 살이 되어서야 갖게 되었는데, 그 전엔 피아노 있는 친구 집을 전전하다가, 놀러와서 피아노만 친다고 얻어 맞은 적도 있다. 노래를 한 번 들으면 피아노로 어설프게나마 연주하기도 했으니, 음악 재능도 제법 있었던 것 같다. (과거형임)


근데, 유독 못하는 게 노래였다. 어릴 때부터 목소리가 중저음이라, 의례껏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맑고 청아한 꾀꼬리 같은 고음 노래는 애당초 ‘지원하지 않는 기능’ 이었고, 좀 크고 나서도 소찬휘나 백지영 노래도 원키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래서 일생을 반주만 했다. 성가대 반주, 합창단 반주, 밴드 키보드. 본투비 관종이라 메인 보컬로 앞에 나서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데, 지원하지 않는 이 기능은 숱하게도 나를 슬프게 했다. 아름다운 소리가 뭔지 알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내 목소리에 더 좌절했던 것도 같고.


각설하고. 이슬아가 풀어내는 노래는 ‘하는’ 것뿐 아니라, 듣는 것, 보는 것, 시간을 이동하는 것이다. 2D에서 4D로 재현되는 노래의 다채로움이랄까. (그래서 못 ‘하는’ 자의 슬픔도 살짝 잊을 수 있었다.) 그의 문장을 읽으면 내 삶 구석구석 스민 노래들이 살아있듯 벌떡인다. 중요한 순간마다 드라마 BGM 처럼, 만남이고, 헤어짐이고, 시작이고, 끝이고 이 모든 시간에 노래들이 스며 있었음을 기억하게 한다.


각잡고 한 시간이면 읽을 이 작고 얇은 책을 부여잡고, 나는 숱하게 박장대소를 하고 연신 눈물을 흘려댔다. 이슬아의 문장은 사람을 가만히 두질 않는다. 웃음이든 눈물이든 뭐든 빵 터지는 지점이 지뢰밭 수준으로 매설되어 있다. 화장기 없는 말간 쌩얼을 보는 듯, 수줍고 내밀하면서도, 거침없이 솔직한 그의 문장에 매번 속절없이 무장해제 된다. 노래를 말하는 문장인데, 삶이 읽히고, 사랑이 읽힌다. 책을 읽은 어제 오늘, 그가 풀어내는 노래같은 문장들 덕분에 일상 속 언제고 으르렁대고 덤비는 슬픔과 분노를, 조금은 아름다운 멜로디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덧) 그의 문장을 사랑하는 독자라서, 이젠 그가 말한 O작가와 NK작가가 누군지도 안다. (NK작가님 음치설 사실이었어…대박)


 “애매하게 탁월한 사람은 더 탁월한 사람을 구경하고 감탄하며 생의 대부분을 보낸다.”


 “어떠한 경지에 오른 사람이 자기가 배운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아주 약간의 용기만 내는 순간을 종종 봐왔다…. 그 모습에 ‘통달’ 이라는 말을 바쳐도 좋을 것 같다. … 좋은 것들을 열심히 반복해서 몸으로 외운 뒤에 결국에는 다 잊어버리고 싶으니까. 생각하지 않고도 자동으로 좋은 게 흘러나올 때까지 말이다.”


 “삶을 구석구석 살고 싶어. 대충 살지 않고 창틀까지 닦듯이 살고 싶어.”


 “한참 만에 아름다운 팔이 내 몸을 감쌌다. 내 정수리 위로 단단한 턱과 따뜻한 숨이 닿았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여기 있으려고 태어난 사람 같았다.”


 “다시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어보니 현희진은 튜브 위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 벌써 이 순간이 그리워. 우리는 그런 순간을 알아볼 수 있다. 겪으면서도 아쉽다. 흔치 않아서. 영영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서.”


 “선글라스 너머로 현희진의 몸을 한참 보던 유진목이 이렇게 말했다. 그거 너 줄게. 유진목도 알아본 것이다. 현희진이 방금 행복했다는 걸. 밤색 수영복 입고 있는 동안 그런 시간이 지나갔다는 걸. 처음으로 자신의 수영복이 생긴 현희진이 담담하게 말했다. 살아 있길 잘한 것 같아.”


 “우리 중 가진 물건이 가장 적고 우리 중 가장 비굴하지 않은 한 사람. 주어지지 않은 삶을 바라지 않는 연습을 꾸준히 해왔다고, 연습이란말에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현희진은 예전에 나한테 말했었는데. 이제 나는 그가 다른 연습에 더 익숙해지기를 소망했다. 바라는 연습. 많이 바라면서 계속 사는 연습. 그리고 나에겐 다른 연습이 남아 있었다. 더 친구가 되는 연습. 갈수록 더욱더 친구가 되는 연습.”


#이슬아 #위고 #K가사랑한문장들

매거진의 이전글 요가뽐뿌가 옵니다 옴샨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