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ay Jul 07. 2024

서평 쓰기 002

<당신을 측정해 드립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어디선가 한 번은 들어봤을 법한 진부한 질문이 이 책의 시작을 장식한다. 난감한 질문에 대답을 고를 새도 없이 "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당신의 모든 것을 측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를 구성하는 가능한 많은 값을 측정하여 의미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며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 결과를 도출하겠다고 한다.


"당신이 태어난 순간부터 측정은 시작됩니다."


본문을 여는 문장이 아주 의미심장하다. 이 말은 꽤나 노골적이어서 읽는 순간 멈칫하게 된다. 인류에게는 측정이라는 빌미로 생명체를 규격화해 온 역사가 있지 않은가? 그렇게 이 책의 직접적인 메시지 전달력에 한 방 맞고 뜨끔할 때쯤 귀여운 고양이 그림이 주의를 환기한다. 치즈 냥이, 턱시도 냥이, 삼색 냥이가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키를 잴 때 통통한 뒷발을 살짝 들고 있는 턱시도 냥이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가 나온다. 그리고 그 미소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조금은 끔찍한 장면이 등장한다.


"두개골의 크기를 재어 뇌의 용량이 적당한지 확인합니다."


아우슈비츠. 독일의 나치가 유대인을 잔인하게 학살했던 수용소가 떠오른다. 요제프 멩겔레는 아우슈비츠에서 복무하던 의사였다. 그의 초기 연구는 인종 간 차이에 관련한 것이었는데, 여기에 나치의 정치적 목적이 더해져 인종 간 차이에 자의적인 의미를 부여하였고, 종국에 그의 모든 연구는 게르만족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데 쓰였다. 지금 이 책에서 고양이들이 받는 측정은 멩겔레의 연구와 무엇이 다를까? 생각이 깊어지려는 찰나, 의사 고양이는 "어떤 조상의 피가 흐르고 있는지" 조사한다며 피를 뽑는다.


마지막으로 고양이들의 '색깔'을 기록한다. 그리고 이 색이 "앞으로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고양이의 털 색깔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과학적 설명은 없다. 물리학적, 생물학적, 사회학적, 심리학적 방법을 통해 측정을 진행한다고 했던 머리말의 주장과는 사뭇 다르다. 측정의 의미는 점점 이해하기 어려워지고 이게 과연 '누구'를 찾는 과정이 맞는지 의심하게 한다.


여기까지는 기초 측정 단계였다. 고양이들은 심화 그리고 종합 측정을 통해 "건강한 시민"으로 살아가기에 적합한지 판정 받는다. 이 책의 끝까지 이어지는 공적/사적 영역의 고양이 측정이 인간의 지난한 인생을 비유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숨 막히는 측정이 끝나니 꼬리말에서 "결과를 종합하여 당신이 누구인지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든 측정값에는 오차가 존재하므로 결과 분석에 유의"해야 한다는 조건을 덧붙인다.


이제 우리에게는 측정값 해석이라는 커다란 숙제가 남았다. 측정값과 그 오차를 인식하는 방식에 따라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나와 타인의 측정값 '차이'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설명이 달라진다. 이 측정은 어떤 의미를 도출할 수 있을까? 과연 측정이 의미가 있긴 했을까? 우리의 측정은 멩겔레의 연구와 다르긴 할까?

작가의 이전글 002 떠오르는 생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