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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 Jul 15. 2024

003 서평 쓰기

<불안>, 조미자

책 표지에 유쾌함과 불쾌함이 공존한다. 세련된 색감이 분명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지만 정신없는 그림체가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다. 평범하게 길을 걷던 등장인물이 둥그런 물체를 밟고 넘어진다. 또로로록. 동그란 물체들은 구멍 속으로 사라져 등장인물을 어지럽고 무섭게 하는 물체의 실체는 미궁으로 빠진다. 이유도 없이 솟아올랐다가 이내 사라지는 미확인 물체. 궁금하지만 두려움에 모른 척하려던 등장인물은 '그것'을 만나 보기로 한다.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아주 많았다. 눈을 뜨자마자 날 괴롭히는 불안의 형체를 최대한 구체화하려 노력했다. 그것에게 모양과 크기가 있다면 그리고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내 마음이 더는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녀석 때문에 고통받은 세월만큼 그를 잡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리 손을 꾹꾹 눌러 담아도 불안은 슬라임처럼 제멋대로 미끄러졌다.


통제 불가능해 보이던 내 불안은 신기하게도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그림 앞에서는 중심을 잡고 우뚝 섰다. 철창인지 괴롭게 흐르는 빗물인지 알 수 없는 곳에 갇힌 피사체의 표정은 고통스러워 보인다. 난 그 음침함이 좋았다. 그의 그림을 보면 여태 나도 보지 못했던, 내 안에 있는 '날 것'의 감정을 목격하는 기분이 들었다. 뭔가 역겨운 물체를 토해낸 느낌. 그래서 내 불안이 제자리를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내 불안은 어둡고 음침하다. 때로는 공포와 구분되지 않는다. 녀석에게 색깔이 있다면 유채색보다는 무채색에 가깝다. 어쩌면 그래서 조미자의 그림이 마뜩잖았던 것 같다. 다양한 모양과 색깔을 배치한 작가의 의도는 투리구슬*처럼 명백했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명도와 채도가 높은 빨강과 노랑의 비중이 큰 페이지가 더욱 못마땅했다. 하나도 불안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안의 색은 각자 다르다. 모든 감정의 색이 다르고, 감정을 느끼는 주체의 판단에 따라 달라질 테니 그 색깔의 가짓수를 세는 작업은 무의미하다. 아마 이런 사실을 작가도 염두하여 책을 집필했던 것 같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변하는 감정의 색과 모양이 그 방증이다. 하지만 작가가 상상한 불안의 색채 중에 내 것은 없었다.


작가는 불안을 껴안는 방식에서도 나와 의견이 크게 갈리는 듯하다.  불안으로 추정되는 감정의 체현물에게 "괜찮니?"라고 묻는 태도는 마치 불안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사람처럼 보일 정도다. 내게 불안은 그렇지 않았다. 내게 있어 불안을 하나의 감정으로 인정하고 안고 간다는 건 '어쩔 수 없는' 부정의 수용이지 서로 껴안고 보듬는, 억지로 긍정 회로 돌리는 식의 수용은 아니다.


때로는 부정적인 건 그 형태 그대로 유지하는 게 답일 수도 있다. 통제하기도 어려운 감정을 애써 어르고 달래며 흡사 친구처럼 껴안을 필요는 없다.



* 오타 아니고 '투명한 유리구슬'의 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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