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오기 전에>, 김진화
주인공은 여름이 미처 다가오기 전, 엄마와 여행을 가기로 합니다. 샤워하다가 넘어져 이가 부러진 아빠는 남아서 치료를 받기로 하고 길쭉이가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길쭉이는 팔다리가 길고 고양이를 닮은 청록색의 귀여운 친구예요. 주인공이 멀리 제주까지 길쭉이를 데리고 온 것을 보니 많이 아끼는 친구인가 봅니다.
여행 내내 엄마는 치과 치료받는 아빠와 통화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아빠가 부러진 이를 삼켜버렸는지 엄마는 연신 걱정과 질문으로 가득한 통화만 지속합니다. 같이 있지만 같이 있지 않은 거죠. 이럴 때 길쭉이도 함께 하면 좋겠지만 물에 젖을까 걱정되어 호텔 방에 두고 나왔어요. 결국 주인공 혼자서만 물놀이를 했죠. 그래도 외롭기보다는 꽤나 시원하고 즐거워 보입니다.
모든 어린이들이 의례 통과하는 클리셰처럼 주인공도 길쭉이를 잃어버리고 말아요. 당연히 대성통곡하며 엄마와 함께 애착 인형을 찾죠. 마음 아프게도 길쭉이는 온데간데없고 결국 눈물로 시린 가슴을 억지로 참으며 잠들어요.
여기서 주인공에게 길쭉이의 의미가 무엇일지 한참 고민했어요. 친구일까? 사랑일까? 아빠 대신일까? 어디에도 정답은 없겠지만 혼자서 나름의 여행을 하고 결국 더 성장해서 돌아온 길쭉이를 보고 이렇게 해석했어요. 길쭉이는 여름이 오기 전에 존재했던 주인공의 ‘자아’라고요.
주인공은 엄마의 손을 잡고 제주를 누비고 바다 수영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길을 잃어 낯선 이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던 거예요. 그렇게 경험의 지평을 넓힌 주인공은 더 이상 ‘여름의 오기 전에’ 있었던 자아가 아니에요. 조금은 아빠의 냄새도 나는, 아주 약간 성장한 모습의 ‘여름을 맞이하는’ 자아가 탄생한 거죠.
여행은 가끔 기대하지 못했던 깨달음이나 성장을 가져다주기도 해요.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곤란한 일을 겪었던 여행일수록 더 피가 되고 살이 되지요. 이번 휴가에는 어떤 여행을 가시나요? 장소가 어디가 되었든 여러분도 새로운 길쭉이를 찾는 시간을 보내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