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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공작 Sep 13. 2019

뉴욕한달살기의 추억(2009년)

여기는 한국인가, 뉴욕인가..

2009년, 난 2년여의 회사생활을 마치고 잠시 뉴욕으로 갔다. 친구가 뉴욕서 유학중이라 언제든 오라했는데, 가게 되리라 한 번도 생각못했는데, 가게 되다니..


그 때는 몰랐는데, 지금 그 때의 추억을 소환해보니..나의 그 뉴욕행이 요새 유행하는 한달살이구나.

역시 난 늘 너무 앞서가구나.

어딘가 낯선 도시에서(가급적 유럽) 여유있게 한달 이상을 살아봤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그 때의 추억을 소환한 듯 하다.


석사를 마치고 박사를 가야하겠는데,

뭔가 답답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일단 2년 일을 하자, 했는데..

그 2년의 시간이 내겐 꽤 힘들었다.

이 2년이라는 것도 경력이 최소 2년이 되어야 한다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교훈같은 이야기의 영향으로, 마치 의무교육을 받아야 하는 시간처럼 여겼다.

일을 하는 우선순위가 ‘돈’이 되지는 말자(정말 세상물정 모르고, 경쟁에 취약한, 자본주의사회 부적응인의 기질인지라.. 세상에 조금씩 적응을 해가지만 아직도 힘들다)였는데, 진짜 오로지 ‘돈’만이 이유가 되는 시간이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찾는것 보다는 하는 일을 좋아해야 하는 것이라, 하지만... 나는 늘 어딘가 정착하지 못하고 표류하는 기분이었고 나를 소멸시키고 나를 상실해 가는 느낌이었다.(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다는게.. 참 아이러니다)


그리고 그 시절의 나는 그 출처를 전혀 알 수 없는 근자감으로 세상을 살았고(그때는 분명히 살았다, 지금은 살아내고 있다), 두려울 것이, 거칠 것이 없었다.

아무것도 정해진 것도 없지만, 이렇게 맘놓고 놀 수 있었다니.. 그 때의 나는 대체 어디 갔나요? 어딜 가야 만날 수 있나요?


뉴욕행 비행기를 타기 전, 관심있는 분야를 경험해 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몸으로 움직여야 하는 현장일이라 육체적으로 매우 지쳤다.


마침 한국을 나왔던 친구랑 같은 날 뉴욕행 비행기를 탔고, 각자 마일리지를 써야 하는 지라 친구는 아시아나로 나는 대한항공으로 이동을.. 인천공항에서 만났고 내가 먼저 떠났다. 뉴욕에 도착한 후로는 내가 아시아나 도착게이트까지 이동해서(뉴욕은 전에몇 번 가봤지만, JFK공항은 처음이었던 관계로 트레인을 타고 게이트를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에 조금 식겁하기도).. 친구와 재회해서 택시를 타고 친구의 집으로 이동. 일단 취침...

시차가 있어 며칠 내내 새벽 기상으로 친구집에서 일출을..

일출명소였던 친구집.


첫날, 친구는 학교에 갔다가 잠시 집에 들려 나랑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스타벅스 커피를 사서 친구는 학교로, 나는 친구집에서 잠시 쉬다 나가겠다며 집으로 갔다. 찰나의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저녁이 되어 친구가 집에 왔고 나의 커피는 한모금만 비워진 채 그대로 테이블 위에.. 그냥 난 기절했던 것이다. 비행기 타기전 너무 많은 체력소모를 했던지라 뜻하지 않던 휴양을.. 뉴욕은 휴양의 명소인가보오..


마침, 친구를 비롯해, 대학 선후배 몇 명이 뉴욕에 있었다. 뭐.. 한국에서 서로 연락하고 사는 사이도 아니지만.. 그래도 낯선 사람들은 아니기에.. 친구를 통해서, 또 친구가 한국에 잠시 다녀 오기도 했고, 덤으로 나를 달고 오기도 해서 23번가 코리안 스트리트에 있는 한식당에서 만나 저녁식사를 했다.  그래도 대학 시절 함께한 시간이 주는 힘은 대단하다. 서로의 안부도 모른 채 살았지만, 이렇게 보니 별로 어색하지도 않고 이런 저런 얘기로 도란도란.(설마.. 저만 안 어색했던 거 아니죠?). 식사를 하고 근처 스타벅스로 이동을 해서 또 도란도란.

그런데,진짜 이 순간, 난 지금 내가 한국에 있나보오,란 생각이.. 나 뉴욕 온 거 맞나? 하는 생각이..

그 날의 저녁시간이 생생한 모습으로 내 머릿속에 있다. 꽤나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뭐 이랬던 기억을 추억한다..


이 때의 뉴욕살이 동안,

난 D.C에서 유학중인 대학원 동기에게도 놀러가고,

추수감사절에 대학선후배들과 홈파티를 하고,

뉴욕살이의 마지막은 버팔로(내가 1년 반 정도 거주한 도시인데 이 도시를 다시 가 볼 일이 있을까. 란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기회가.. 이 또한 토론토에 있는 친구에게 가면서..) 를 들린 다음 토론토로 가서 친구집에.. 아니, 친구는 여기까지 오는데 나한테도 와라... 해서 겸사 겸사 가게되었는데,

뉴욕에서 토론토는 뭐 분당서 서울의 거리인가 보오.. 이렇게 지인들 집 순례가 되었다.


아, 지금도 샌프란시스코 지인집에 들리고 시애틀 찍고, 캘커리 친구집으로 갔다가, 옐로우나이프를 가야 하는데.. 왜,왜 난 떠나지를 못하는 가요.

10년의 시간동안 난 왜 발전이 아닌 퇴보를 했는지.. 세상살이의 직격탄이 이리 고된 것일 줄이야..


이것말고도 계획은 다섯개쯤 있지만,

찬란하게 오른 추석 보름달님이여,

쪼그라든 나를 좀 팽창시켜 주시고, 실행의 용기를 주소서.


이 때, 난 중동음식 휴무스를, 스페인 음료 상그릴라를, 쉑쉑버거를 처음 경험했고 파리 홍합식당 레옹에서만 먹을 수 있는 줄 알았던 ‘크림브릴뤠’가 흔한 디저트라는 지식을 얻게 되었다. 참 얻은 것이 많았다.


아, 그리고 뉴욕에 있을 때 ‘닌자 어쌔씬’이 개봉했는데... 친구가 봐야 한다고 해서 봤다.


친구집 방구석1열에서 뮤지컬표를 예매하려다가 수수료가 8불이라 내가 직접 극장으로 걸어가서 표를 예매했고, 메트로폴리탄에서 오페라를 보려다가 우연히 얻어 걸린 정보로 어떤 부부의 기부금으로 당일 좋은 좌석의 표를 100매 한정 20불에 판다길래.. 아침부터 가서 줄서서, 앞 뒤 사람과 친구되어가며, 또 이런 대기줄에 필요한 준비물 정보를 학습하며 표를 사서 투란도트를 봤다.


브로드웨이는 밤 산책으로 다니고,

센트럴파크는 낮 산책으로 다니고,

이랬던 뉴욕한달살이였다.

많은 이야기가 있어 하고자 하면 책 한권도 쓰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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