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결핍이 있다.
영화, 박화영.
개봉당시 관심이 있었는데 놓쳤다.
영화를 대부분 영화관에서 보기 때문에 놓친 영화를 vod등을 찾아서 보진 않는다. 이번에 볼 기회가 있어서 봤는데, 늦은 시간 관람을 시작해서 반 정도 보다가 다음날 봐야지 했는데 중간에 멈출 수가 없었다.
영화를 보고 기록을 남기는 것을 거의 하지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데 영화 ‘박화영’은 꼭 기록을 남겨두고 싶었다.
영화는 보기가 너무 힘들었다.
거침없는 장면들과 어떠한 꾸밈도 없는 가감없는 현실 그대로의 날것의 모습들이 힘들었는데, 이상하게 몰입이 되어 중간에 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자꾸 애타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다.
화영아, 화영아..
이제 그만 현실을 직시해, 라고 말해 주고 싶었고,
내가 영화를 중간에 중단하지 못한 이유도 화영이 ‘이건 아냐’라고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겠지, 그런 모습이 나오겠지를 마냥 기다려서였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결코 오지 않는다.
화영은 엄마에게 ‘엄마도 엄마같은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한다. 무슨 사정이 있는 것인지,
그리고 화영의 친구는 화영을 이용하기만 하고 이걸 마냥 받아주는 화영에게는 무슨 사정이 있는 건지.. 이 사정들이 궁금해지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러한 서사는 전혀 중요하지 않구나. 지금 화영의 현실과 모습들만으로 충분하구나.
그녀에겐 ‘엄마’의 존재가 결핍되었고 그로 인해 이 세상에서 자신을 받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현실이다. 본인이 엄마, 그리고 가족의 결핍이 있는 친구들에게 ‘엄마’역할을 하며 산다. 그것이 본인을 이용한다는 것조차 구분 못할 정도로 본인이 수행해야 할 역할이라 받아들인다.
화영에겐 엄마가 있다.
차라리 ‘엄마’가 없었더라면 그 결핍을 받아들이기가 수월할텐데, ‘엄마’는 있는데 ‘엄마’가 결핍되었다. 이 결핍을 극복하는 방법이 너무 극단적이다.
본인은 엄마의 역할이지만 현실은 이용당하는 수단일 뿐이다. 파국적인 현실에서 조차.
문득, 누구나 어떤 종류의 결핍이 있고 어떻게든 극복을 하든 굴복을 하든지의 방법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화영의 결핍은 너무 처연했고, 아프고 아프다. 그 결핍을 채우는 방식은 더 아프다.
단 한명이라도 그녀에게 마음의 손을 내밀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