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2020

86. 하이데라바드의 추억

feat. 사랑의 불시착

by 자작공작

스토브리그에 이어 사랑의 불시착 정주행을 끝냈다. 처음엔, ‘역시, 스토브리그보단 이게 내 취향인데..’

했는데 보다보니 ‘어랏.. 꽤 익숙한데...’

스토리는 다르지만(뭐 스토리 맥락은 거의 같다) 윤세리와 리정혁 캐릭터가 별에서 온 그대의 천송이와 도민준과 다르지 않았다. 윤세리의 화려한 집도 천송이의 화려한 집을 연상시키고...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게 아니지만 아주 간략히 드라마에 대해 말하자면, 북한 병사 4인방과 윤세리직원은 마치 일곱난장이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스토리를 구성하다 보니, ‘어떻게든 그들을 남으로 오게 해야 해’ 했을 것이고 거기서 나온 발상이 ‘군인 체육대회’였을것이다.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아무리 극이라지만 너무 부자연스럽다. 장혜진의 연기는 오래전 프란체스카에서 박희진 연기를 계속 연상시켜 추억 소환을 시켜 주었다.

드라마 방영시에 전혀 보지 않았고, 그래도 드문 드문 듣는 말들은 있어서 난 윤세리가 사고로 스위스에 떨어지는 줄 알았다. 그래서 처음에 패러글라이딩을 할 때, ‘아니, 이렇게 스위스까지 날아간다고?, 말이 되?’ 했는데, 당연히 말이 안 되니 북한까지만 갔다. 그리고 당연히 주 촬영지가 스위스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드라마를 보다보니 오래된 추억(라떼는 말이야를 시전하는 느낌이지만..)이 떠올랐다. 직장생활을 꿈꾸며 가졌던 로망중의 하나가 국외출장이었다. 이 로망은 정말 강렬했다. 첫 번째 이직을 한 이유도 해외 사업분야를 할 것이고 전임자가 지난 1년 간 거의 지구 두바퀴 정도는 돌았다는 것이 결정적이었다.그러나 입사와 동시에 그 프로젝트는 재계약이 되지 않았다. 해외는 커녕 국내 출장도 없었다. 두 번째 이직에서 난 국외출장을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정말 원없이 국외 출장을 다녔다. 인생이란 이런식인 경우가 참 많다. 기대하면 주지 않고, 기대하지 않으면 주고... 아니, 결국 강한 열망에 응답해서 이뤄지는 것일까?

10번에 8번은 출장지가 스위스였다. 그래서 내심 사랑의 불시착을 더 기대했었는지도..


입사하자마자 출장을 가야 했는데, 장소가 인도 하이데라바드였다. 이 도시에 다시 가 볼 일이 있을까 싶다. 내 생에 첫 출장 도시.

국제기구 대응의 업무를 했었고 4년 주기로 열리는 총회가 있었다. 첫 출장이라 기대도 되었는데 너무 갑작스러워(입사하고 itu란 국제기구가 있는 줄 처음 알았는데 총회라니요?) 긴장도 많이 했다. 출장 동행자들이 다 좋은 분들이라 출장이 원만하고 무사히 마무리 되었다.

총회 기간은 2주였는데, 난 2주차에 가게 되었다. 가서 알게 된 사실이 북한대표단도 있다는 것이었다. 국가 이름 알파벳 순서로 좌석이 배정되어 있는데, 북한 국가 이름과 좌석이 보였다. 회의장에서 북한 대표단을 본 적이 없지만 회의장 건물이나 식당을 다니면서 누가 북한대표단인지는 알았다. 이렇게 북한 사람을 보다니 너무 신기했다. 예전에는 국제회의서 만나면 간단히 인사라도 했다는데 내가 출장을 다니던 시기는 냉랭했던 시절이었다. 식당 먼 발치에 있는 북한대표단의 모습을 보기도 했는데, 문득 그들도 한국대표단을 인지하고 멀리서 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마치 의식적으로 서로 마주치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았다. 회의장 내에서 북한대표단을 마주치진 않았는데 북한대표단 자리에 노트북은 놓여 있었다. 누가 일러주지도 않았지만 의식의 흐름대로 나도 뭔가 조심스러워 바로 그 앞에는 가지 못하고 회의장을 우회하는 척하면서 스쳐 지나가봤다. 분명 브랜드 노트북제품이었는데 지금은 브랜드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화의 마지막 날에는 저녁만찬이 있다.

거기서 북한대표단이 다른 나라 대표단들과 사진을 찍고 셀카도 찍는 모습을 봤다. 내가 그 동안 북한을 너무 폐쇄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러면서 꽤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때, 그 장소에서 모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유일한 사람들인데 소통은 커녕 마주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 각 국 대표단이 와 있는 자리라, 서로 모르더라도 스쳐 지날때마다 인사 정도는 하는 분위기였음에도..


회의기간에 회의장과 숙박호텔로 노선별로 지정셔틀이 운행되는데 저녁 만찬시 그 노선체계가 없어지고 호텔들을 순환했나보다. 버스가 도착하면 순서대로 버스를 탑승했다. 버스를 탑승하는데, 제일 앞 좌석에 앉아 있는 북한대표단과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버스 안쪽으로 들어갔는데, 순간 너무 깜짝 놀랐었다. 그 동안 북한이 너무 낯설었나보다. 내가 ‘북한국적’을 가진 북한 사람을 처음봤던 기억이다.


북한이 그렇게 폐쇄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니, 내가 외국 어딘가를 거닐때 북한 사람을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겠다.


평양을 방문해보고 싶다.

외국에는 평양여행 패키지도 있다고 한다.

난 통일이 되기 전에는 절대 갈 수 없는 조건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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